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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참정권칼럼

[한겨레] 헌재 ‘참정권’ 실마리를 풀어라

 

 

 2007년 06월 17일 (일)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16487.html


    
 
  ▲ 김제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바둑에서 수순이 중요하듯 일이 이뤄지는 시기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외국민 참정권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선고가 바로 그렇다.
헌재는 현재 재외국민이 제기한 위헌소송을 심리 중이다. 2004년 일본 동포, 다음해 미주 동포들이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은 공직선거법에 문제가 있다며 위헌소송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재외국민 280만명이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늦어도 이달 말까지 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 재외국민들은 애가 타지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차와 국회 입법 절차 등의 문제로 월말까지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다. 헌재의 결정은 이런 답답한 국면을 풀어줄 힘을 갖고 있다.

동포사회는 지난달 말 선고 기일에 위헌 결정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했으나 무심한 헌재는 답이 없이 지나쳐버렸다. 만약 6월 이후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버스 지나고 손들기’ 격이 될 것이다. 오히려 재외국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 헌재 재판관들은 좋은 일 하고 욕먹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 전조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일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소속 동포기자들과 재외국민참정권연대 회원 30여명이 헌재 정문 앞에 모여 “늑장선고 각성하라”고 외쳤다. 재외동포들이 헌법기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는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대회에 참석할 수백명의 한인회장들이 대회를 거부하고 헌재와 국회로 달려가 항의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기뿐 아니라 선고 내용도 중요하다. 지난달 10일 열린 헌재 공개변론에서는 재판관 9명이 소송대리인과 정부 관계자 등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판관들은 단기 체류자뿐 아니라 장기 체류자인 영주권자들에게까지 부여할 것인가에 큰 관심을 표했다.

단기 체류자는 편의적으로 유학생·주재원 등 국내에 주민등록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선거법상 선거인 명부는 주민등록을 근거로 작성되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는 기술적인 문제가 적다. 그래서 선관위는 전부터 이 방안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소송 담당 변호사에 의해 이런 구분이 위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주민등록법상 국내에 거주하지 않으면 주민등록이 말소되므로 ‘주민등록이 있는 국외거주자’란 말 자체가 모순이며 이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지적이다.

‘선거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에 사는 재외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하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수십년간 입국금지 ‘형벌’을 받은 재외동포 등의 사례로 볼 때 국외거주자도 사실상 국내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한다면 ‘헌법 불합치’ 또는 ‘단순 위헌’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 불합치’는 입법부에 법개정 준비기간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단순 위헌’이 나온다면 즉시 법을 개정해야 한다. ‘단순 위헌’ 결정이 나와야 비로소 110만명의 국외 주재원, 유학생, 외교관들과 170만명에 이르는 영주권자까지 포함한 재외국민들이 올해 대선 투표에 참여할 길이 열리게 된다.

이처럼 언제 어떤 결정이 나오느냐에 따라 280만 재외국민 투표권의 향방이 결정된다. 동포사회가 목을 빼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이유다.

김제완/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