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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언론현황취재

한국현대사와 함께한 ‘자유의 목소리’

한국현대사와 함께한 ‘자유의 목소리’

[동포언론현황취재 -북미주편] 워싱턴 미국의소리 한국어방송 한인섭국장

워싱턴=김제완기자  |  oniva@freechal.com

승인 2005.06.15  00:00:00

▲ 워싱턴 미국의소리 한국어방송 한인섭국장 

인디펜던스 애비뉴 330번지에 위치한 미국의소리 방송국을 찾았던 4월초 워싱턴은 벗꽃이 만발해 화사하게 거리가 장식돼 있었다. 미국의 소리 건물은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마침 한국어방송 직원들은 실내공사때문에 짐바브웨방송과 함께 2층의 임시거처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일하고 있었다. 책임자인 한인섭국장은 어수선한 사무실 책상 사이로 기자를 이끌어 국장실로 안내했다.

한국장은 미국의 소리에서 근무하기 위해 71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뒤 10여년만인 85년에 국장으로 승진한 뒤 20년동안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의 소리를 위해 일한 기간까지 더하면 근 40년을 한길로 가고 있다. 한국어 방송의 상징적인 존재인 그의 이력을 쫒는 것은 이 방송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과 다름없을 듯하다.

36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공군 근무를 마치고 65년부터 주한미국대사관 공보원에서 방송담당관으로 일했다. 월남전이 일어나자 미국의 소리 월남 특파원으로 나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69년 닉슨독트린때 닉슨대통령의 동남아 방문과 미드웨이에서 열린 미국-베트남 정상회담에도 동행 취재했다.

미국에 건너온뒤 그의 취재현장은 70년대 남북 대결의 현장이었던  유엔과 한국관계 청문회가 열린 미의회등이었다. 83년 사할린 KAL기 사건도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한다.
한국나이로 올해 70인 한국장은  아직도 현직에서 근무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그의 능력때문이라기보다 미국의 정년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정년이 없어 일할수 있을때까지, 일하고 싶을때까지 (as long as you can work, as long as you want work) 일할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은퇴를 해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큰 프로젝트 하나는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작년 통과된 북한인권법으로 대북한방송을 강화시키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다음은 한국어방송 국장실에서 갖았던 질의 답변이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을 동포방송이라고 할 수 있겠나.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미국정부의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남북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라는 점에서 동포방송이라고 할수 없다. 그러나 기자들을 한국대사관 출입기자단에도 미 국무부의 한국기자 대상 브리핑 때에도 넣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KBS에서 주최하는 동포방송대회에는 참가하라는 초청이 온다. 지난해에는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는 재외동포기자대회에도 참가했다. 이외에도 각도시의 통신원을 통해서 매주1회 미주동포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국어방송의 역사는.
“미국의 소리는 2차대전중에 개국한 이래 한국의 현대사의 질곡을 같이 해왔다. 42년 2월 개국과 동시에 독일어방송을 시작한 뒤 8월에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다. 현재 43개언어방송이 있지만 한국어 방송은 가장 오래된 방송중 하나로 꼽힌다.  일제시대에 단파라디오로 2차대전 전황을 알렸으며 이승만박사가 이 방송을 통해 국내 동포에게 직접 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박사의 육성방송을 인터넷www.voanews.com /korean 으로 들을수 있다. 4.19와 5.16 유신 그리고 신군부 집권과 광주사태등을 지켜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으로 전파를 쏘았다.”

-그동안 한국에 끼친 영향은.
미국의 소리는 해방후부터 71년 까지 아침 6시30분에 국내 라디오방송이 중계했다. 유신이 시작하면서 중단됐는데 기독교방송만이 73년까지 방송을 이어갔다. 당시 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기독교방송 담당자가 방송이 끝나고 나서 수신상태가 좋지 않아서 중단한다고 했었다. 그뒤 다시는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납치사건과 관련된 정국 경색이 이유였다. 그뒤에는 단파라디오를 통해서만 미국의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억압당하고 있을 때는 우리방송이 자유의 소리였을 것이다.

-미국의 소리는 그 이름에서 보이듯 미국정부의 입장을 전하는 홍보방송이 아닌가.
“42년 방송을 시작할 때 제일성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을 다함께 전하겠다고 했다. 항상 진실만을 전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것이 아직까지 유효하다. 우리는  미국에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내보내지 않는다. 최근에 이라크전을 보도하면서 부시정부의 입장과 다른 보도가 나가기도 했다.”

-한국어방송 보도 원칙은.
“모두 세가지이다. 객관적인 보도, 미국의 실상에 대한 가감없는 보도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등이다. 이중 세번째 것은 논설(에디토리알)로 현재 나가는 43개언어 방송이 같은 내용을 번역해서 내보낸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정부의 의견이라고 방송전후에 밝히고 있다.”

-어느 기관 소속인가.
“소속기관이 여러차례 바뀌었다.  전시에는 '워 인포메이션' 소속이었으나 전후 국무부 소속으로 그뒤 53년부터는 공보처(USIA)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99년 방송위원회(BBG) 소속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오늘 준비하고 있는 방송내용은 어떤 것인가.
“오늘은 일본인들이 캄보디아 학살지역을 개발해 관광지로 만든다는 소식과 이라크 전쟁 소식 북한의 조류독감 소식등이 나간다. 저녁 방송은 다양하다. 미국은 지금(USA NOW...)이라는 코너와 탈북자 소식, 북한의 창등이 편성돼 있다. 북한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방송시간은.
“한국시간으로 아침 저녁에 한번씩 방송한다. 아침 5시부터 6시까지 저녁 10시부터 12시까지등 3시간을 내보낸다. 이중 50%는 재방송이므로 하루에 1시간 30분을 제작하는 셈이다. 요즘은 단파라디오보다 인터넷으로 듣는 사람이 많아져 방송시간의 의미가 적어졌다. ”

-직원 숫자는.
현재 정규직 12명 계약직 5명등이 일하고 있다. PD 아나운서 기자가 따로 있지 않으므로 일인 3역을 해야한다.”

-자유아시아 방송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전혀 독립된 방송이다. 자유아시아 방송(RFA)은 라디오프리유럽 방송이 모델이 됐으며 지난 96년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북한 때리기가 주임무이며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루 4시간 방송하고 기자는 15명정도가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