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있는곳에 ‘아씨’가 있지요”

[초대석] 글로벌 식품 유통기업-‘아씨’ 이승만 회장

김제완기자  |  oniva@freechal.com 

승인 2005.06.01  00:00:00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르는 것이 무엇일까. 혈연이나 언어외에 입맛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김치나 된장찌개를 즐겨 먹는 사람은 누구나 한국인이라는 말도 있다. 과거에는 외국생활중에 김치를 먹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중국시장에서 배추 비슷한 푸성귀와 중국산 젓갈을 구해다 만들면 김치 비슷한 김치가 만들어진다. 외국생활중에 그것조차 즐겨 먹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 애틀랜타 매장 카운터 앞에 선 이승만회장. 아씨식품의 1천600명 직원을 이끌고 한국식품의 세계화에 나섰다. 

그런데 미국에서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품회사 몇개가 나타난 뒤부터 동포들의 식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씨식품과 왕식품 등이 그것이다.  아씨식품은 지난 3월21일 애틀랜타 지점을 개설했다. 메릴랜드에서 시작해 뉴욕 LA 필라델피아 버지니아등에 이어 열한번째 매장이다. 아씨의 본부가 위치한 메릴랜드 버지니아에는 5~6개의 매장이 있다.

26개국서 수입 30개국 수출

아씨식품의 CEO인 이승만 회장은 불과 열흘전에 오픈한 매장을 혼자서 둘러보고 있었다. 기자는 이회장을 불러세우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깐깐한 인상의 이 회장은 기자가 내미는 본지를 한참 들여다 본 뒤에 인터뷰를 수락했다. 매장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자리를 직원식당으로 옮겨가며 계속했다. 인터뷰하는 중에도 드릴로 나사를 박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매장 한쪽에 한국의 먹자골목같은 푸드코너를 만들고 있기때문이다.

이 회장은 미국 여러 도시의 매장관리는 동생이 하고 자신은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도매업무를 담당한다고 말한다. 26개나라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다시 30여개 나라로 수출한다. 이 모든 일을 직원 1600명과 함께 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인이 있는 곳에 아씨가 있다.
매장에 내놓은 일부 식품은 가격이 한국보다 싼 것같았다. 이 회장은 구입원이 국제적이기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세계 곳곳의 식품가격을 파악하고 있어 가장 가격이 싼 지역의 물건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것. 예를 들어 참깨는 인도에서 오고 수산물은 중국 태국 홍콩등에서, 그리고 참기름은 타이완에서 들어온다. 현미는 미국 것을 사용한다. 가격이 좋고  품질이 좋으면 세계 어느나라에서든 찾아가서 가져온다.

물론 한국에서 오는 물건이 가장 많아서 전체의 40%를 점한다.  한국에서 오는 물건도 대량구매하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가져올수 있다.  다만 운반비용이 소요되므로 한국과 비슷하거나 약간 비싼 정도에 가격이 형성된다.

아씨에서 취급하는 물건의 가짓수는 이마트보다 더 많다. 식품분야만 보면 한국의 대형 마트의 경우 종류가 500개에서 1천종이지만 아씨는 2만종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재벌급 유통업체도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갖춰놓지 못한다.

취급품목 이마트보다 많아

아씨가 애틀랜타에 매장을 오픈하고 나서 동포들이 다들 살맛이 났다고 한다. 아씨가 최저가격으로 가격을 선도해나가자 기존의 식품가격이 따라서 낮아지고 있기때문이다. 기자와 동행한 애틀랜타 교포 홍종철씨는 쌀 1킬로그램 짜리를 10달러 이하로 구입하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쉽지않은 이민생활중에 우리음식이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에 이 회장은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아가 교포들을 위한다는 어느 사회단체보다도 그의 회사가 더 동포들을 돕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한 듯이 보였다.

이 회장은 식품의 포장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그 덕에 한국식품 포장 기술이 발전했고 아씨하면 물건 좋고 포장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김치를 병에 넣어도 기포 때문에 깨지지 않는다. 김치는 워낙 많이 나가기 때문에 메릴랜드에 있는 김치공장에서 직접 제조해 각도시에 있는 매장에 공급한다.

식품의 특성상 신문광고 수요가 많은 그는 한때 워싱턴에서 수년동안 동포신문을 직접 발행하기도 했다. 이 경험때문에 광고전략에도 빈틈이 없다.

성균관대 학생회장 출신

애틀랜타매장을 오픈하고 나서 손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첫번째 주에는 한국신문에 두번째주에 중국신문에 광고를 냈다. 지금은 한국인과 외국인 고객의 비율이 7:3정도이다.   

그는 한국인시장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그가 취급하는 상표도 각나라마다 다르다. 간장을 예로 들어봐도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입맛이 각기 다르다. 그래서 물건도 다를 수밖에 없어 브랜드도 중국 일본시장용을 별도로 만들었다. 중국 브랜드는 이회장의 ‘이’와 중화의 ‘화’를 붙여서 ‘이화푸드’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런식으로 일본에는 ‘하나’ 브랜드, 태국에는 ‘쓰리엘레판’등을 만들었다.  

▲ 뉴욕 플러싱에 있는 아씨 플라자 정문 야경
 
이 회장은 38년생으로 4.19때 성균관대 정치학과 재학중에 학생회장을 지냈다. 당시 데모꾼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4.19 주축멤버인 셈이다. 이승만정권 반대운동을 했던 이승만사장은 4.19때 공이 인정돼 한국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은 바도 있다. 데모 주동자답게 68년에 정치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왔다. 그러나 부인이 미장원을 하며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는 것을 보고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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