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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참정권칼럼

정지석변호사 / 보통선거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다

정지석변호사 / 보통선거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다 
 

 2009년 03월 28일 (토)  정지석   
 
 

다음은 정지석변호사가 3월30일 열리는 재외동포기자대회 세미나에서 발표할 토론문이다. 정변호사는 2004년 재일동포들의 의뢰를 받아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007년 6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아냈다. 위헌결정 한달전에 헌법재판소 주최로 열린 공개변론에서 헌법소원 제기한 변호사로서 참석해 동포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편집자 

정 지 석 (변호사/ 법무법인 남강)

보통선거 원칙이란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의 요소를 배제하고 성년자인 모든 국민이 선거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우리 헌법 제41조 1항은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제67조 1항은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고 규정하여,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 관하여 보통선거 원칙을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와 같이 대통령 및 국회의원은 국민의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인구의 6%를 차지하는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그 민주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바로 여기에 재외국민 선거권 문제의 핵심이 있다.

지난 2007년 6월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을 비롯하여 국민투표법, 주민투표법 등에서 재외국민 선거권, 투표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헌법상 선거권, 평등권 및 보통선거 원칙을 침해하여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위헌결정을 하였고, 이번의 법개정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였는데, 과연 법개정으로 인해 위헌상태가 해소되었는지를 살펴보려면 먼저 헌법재판소 결정의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을 요건으로 재외국민의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권 을 제한하는 것이 재외국민의 선거권(투표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보통선거 원칙에 위배되며, 마찬가지로 주민등록을 요건으로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주민투표권 행사를 위한 요건으로 주민등록을 요구하는 주민투표법도 국내 거주 재외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하였다. 요컨대 주민등록을 요건으로 하여 각종 선거나 투표에 참가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주민등록을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재외국민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여 선거권 및 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특히 권력기관 구성을 위한 선거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보통선거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보통선거 원칙이란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라는 민주주의 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4대 원칙 사이에도 우열이 있다는 점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즉 부재자투표 중 거소투표나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리투표와 같이 보통선거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직접선거나 비밀선거 원칙이 일부 후퇴할 수는 있지만, 보통선거 원칙은 다른 이유에 의해 후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발표자께서 지적해주신 문제점을 보면, (1) 공관에만 투표소를 설치하는 문제, (2) 우편투표나 인터넷투표를 허용하는 문제, (3) 선원의 선상투표, (4)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서 영주권자 배제, (5) 외국 거주 재외국민에 대해 국민투표 배제, (6) 선거인등록 절차에서 영주권자 차별, (7) 정당의 해외지부 설치 문제, (8) 대통령 선거 피선거권 문제, (9) 재외선거구제 도입 등이 있는데, 이번 개정된 선거법 등의 문제점에 관한 것과 향후 과제에 관한 것이 같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정 공직선거법, 국민투표법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영주권자에게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고 또 국민투표에서 국외 거주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이것은 개정 전의 법조항들이 재외국민의 선거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보통선거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지역대표가 아니고, 선거구를 지역으로 나눈 것은 국민의 의사를 골로루 대변하기 위해서일뿐 그 지역의 일꾼을 뽑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선거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영주권자에게도 선거권을 인정하면서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만 배제한 것은 국회 스스로 국회의원의 헌법상 지위를 지역대표로 격하시킨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재외국민 중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국민은 국외부재자 신고절차로, 영주권자인 재외국민은 선거인 등록절차로 이원화시킨 것도 문제이다. 우리 주민등록법상 30일 이상 거주지를 옮기면서도 주민등록 이전신고를 하지 않으면 주민등록을 말소하도록 되어 있고, 재외국민등록법상 90일 이상 일정 지역에 거주 또는 체류하는 경우에는 재외국민등록을 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재외국민 중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경우란 90일 미만의 단기체류를 제외하면 형식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말소되어야 하는 상태이다. 주민등록법상 관계공무원이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직권으로 그 주민등록을 말소하게 되어 있으므로, 국외부재자 신고를 하는 경우에도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그 신고를 받은 공무원은 그 사람의 주민등록을 말소할 의무가 생기는 것인데, 공직선거법에서는 거꾸로 부재자투표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국민의 위법상태를 기초로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거꾸로 재외국민등록제도에 대해서는 이번 선거법개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표면상의 이유는 현재의 재외국민등록부가 오류가 많고 실제를 전혀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을 들고 있지만, 그것은 재외국민등록제도가 그동안 재외국민에 대한 관리나 통제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 등록한 재외국민에 대해서 아무런 편익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재외국민등록부를 기준으로 선거권을 부여하게 된다면 그러한 문제도 많이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법을 잘 지키는 국민은 재외국민등록을 하고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꼬박꼬박 신고를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개정 선거법에서 재외국민등록제도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별도로 재외공관에 출석하게 하여 유권자등록을 받도록 하게 되면, 결국 재외국민등록법을 성실하게 따르고 있는 국민에 대해서 이중, 삼중의 불편을 주고, 이는 결국 선거참여를 막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 이번에는 국가가 국민의 위법상태를 조장하는 셈인 것이다.

국민투표법 개정에서 국내 거주 재외국민에 대해서만 투표권을 주도록 한 것은 국민투표를 한낮 주민투표로 격하시킨 것이며,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헌법소원에는 외국인에게조차 주민투표권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거주 재외국민에게 주민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민투표법 조항이 국내 거주 재외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국내 거주 재외국민에게 주민투표권을 인정하도록 주민투표법이 개정되었는데, 국민투표법 개정조항도 바로 이와 동일한 취지로 개정된 것이다. 우리 헌법상 국민투표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와 국가의 중요정책에 관한 국민투표의 2가지가 있는데, 국회는 이러한 중요한 제도에 대해 국민의 6%에 이르는 재외국민을 계속 배제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셈이다.

선거권을 주고도 그 행사를 매우 곤란하게 하는 것은 결국 선거권을 주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발표자가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를 든 것은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본다. 수십만이 거주하는 지역에 투표소를 공관 1개소밖에 두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에게 선거인등록시와 투표시에 두 번씩이나 공관에 오라는 것도 무리이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 투표소가 있는데도 3~40%의 국민이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국내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그저 헛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리투표의 위험 때문에 우편투표나 인터넷투표는 안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직접투표, 비밀투표의 원칙에 보통선거 원칙이 후퇴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

토론을 마치면서 본말이 전도된다는 말의 의미를 한번 되새기고 싶다. 우리 헌법은 국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국민의 선거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국회가 국민의 선거권에 대한 입법형성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에 앞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회는 국민의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는 규정의 의미를 새겨보아야 한다. 아주 단순한 삼단논법을 적용하면 결국 보통선거의 원칙이 훼손된 상태에서 구성된 국회는 헌법적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는 해석이 되는 것이며, 바로 현재의 국회가 그러하다는 논리가 된다. 그러한 국회가 다시 국민의 보통선거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하는 것, 아니 국회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국회는 해방 후 60년 이상 계속된 위헌상태를 조속히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재외국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 즉 보통선거권을 회복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