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국 LA의 동포언론사들을 찾아서

김제완기자  |  oniva@freechal.com

승인 2005.05.02  00:00:00 

하루 발행 지면  100쪽 넘어

▲ 미주중앙일보 김성찬편집국장

현재 LA에는 일간지 라디오 텔레비전이 각각 두개씩 있다. 일간지는 미주한국일보와 미주중앙일보, 라디오는 라디오코리아와 라디오서울, TV는 KBS-LA와 KTAN등이 있다. 이외에 주간지가 10여개 나오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www. joongangusa.com김성찬 편집국장은 중앙은 신문에만 매진하고 있어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쟁지인 미주한국일보가 신문과 TV 라디오를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미주중앙은 하루 발행 지면이 100면이 넘으며 편집국 기자도 50여명, 총직원은 200명을 넘는다. 한국의 웬만한 지방도시의 일간지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

하루에 평균 다섯 개 섹션이 나온다. 미주판, 본지, 안내광고, 특집1-2개등이다. 주말에는 일요시사와 주간중앙등이 더 추가된다. 노약자나 어린이는 무게때문에  신문 한부를 들고 있기도 힘겨울 정도다.  

김국장은 지난 3월 상무로 승진한 고계홍국장의 뒤를 이어 취임했다. 편집국장에 오르기전에 사회부장을 여섯번 경제부장을 두번이나 역임한 만년부장출신이다. 김국장이 밝히는 세가지 편집 방침은 다음과같다. 첫째 코뮤니티 화합 둘째 정치력신장 셋째 미국생활정보 제공등이다.

미국 주요도시 곳곳에서 한국 중앙의 경쟁이 치열한 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신문의 아성에 타신문들은 맥을 쓰지 못한다. 몇해전 뉴욕에서 조선일보가, LA에서는 동아일보가 두 번이나 실패했다. 작년에는 한겨레도 LA에서 고배를 들었다.  

이에 대해 김국장은 지난 30년의 역사의 힘을 과소평가한 결과라고 말한다. 조선일보가 한국에서는 일등신문인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한정된 광고시장을 두 신문사가 선점하고 있어서 새로운 매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

중앙일보는 미국에만 LA 시카고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뉴욕등 5개도시에서 지역판이 발행된다. 지사들과는 컴퓨터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각지사에서 취재해 올린 기사들을 자유롭게 공유한다. 특히 뉴욕이 세시간 앞서 있어 이 시차를 잘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황 사망기사는 뉴욕에서 번역해서 기사내면 엘에이에서 받아 쓸수 있다. 

최근 LA에서 남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세리토스에 새사옥을 마련하고 윤전기도 새로 도입했다. 이 인쇄기가 가동하면 오는 9월부터는 섹션면을 새인쇄기로 인쇄하게 된다.

미주중앙일보의 최근 특징적 현상중  하나는 한국의 본사출신 기자들이 과거보다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지사 전근이 아니고 퇴직하고 새로이 입사하는 형식이다. 본사와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간부사원 몇 명이 한국본사에 가서 4주동안 연수받고 오기도 했다.

김국장은 한국에서 고교졸업후 81년에 이민와 이곳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후 유니온뱅크를 거쳐 미주중앙일보에는 87년에 입사했다.

 DJ 아들 호화주택 특종 유명

▲ 코리아나뉴스 정채환발행인

지난 2003년 11월에 열린 제1회 재외동포기자대회중에 참가자들이 잊을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대회의 하일라이트였던 청와대 방문을 앞두고 세종로 코리아나호텔의 버스를 타는 순간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27명의 동포기자들중에 한명의 청와대 출입이 거부된 것이다.

미국에서 함께 온 일행들이 술렁거렸다. 이때 행사주최측인 한국기자협회 이상기회장은 진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양해를 구해 파국을 피해나갔다. 이사건은 이회장이 지난 1월 펴낸 '요즘 한국기자들'이라는 제목의 책에도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이때의 당사자가 코리아나뉴스 www. koreananews.com 정채환 발행인이다. 그는 DJ의 임기중에 그의 삼남인 김홍걸씨의 호화주택구입 문제를 집중보도해 당시 정권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런 기사에 분을 풀지 못했던 당시 청와대 비서관 윤아무개씨의 제지로 인해 김대중대통령 면담에서 제외된 것이다.

기자가 윌셔가 3130번지에 위치한 코리아뉴스의 사무실을 방문했을때도 이당시 사건이 화제로 올랐다. 정사장은 그때 청와대구경은 못했지만 자신의 특종을 국내외 기자들에게 홍보해주었다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일정소득도 없는 홍걸씨가 "언덕 위의 하얀집"같은 호화주택에서 사는 것이 동포사회에 큰 위화감을 조성했다면 취재 배경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집부근에 DJ의 측근인 조풍언씨가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는 심증을 잡고 취재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코오롱그룹 이동찬회장의 친자소송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이동구씨가 미국법정에 친자확인소송을 낸 것을 계기로 집중취재해 많은 관심을 얻었다.

60이 가까운 나이에도 정발행인은 지금도 매주 7꼭지 정도의 기사를 직접 작성한다. 특히 한국정치에 대한 그의 칼럼은 미주신문인협회 회원사들이 가져다 쓰기도 해서 미전역에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칼럼의 논조가 너무 보수적인 입장에 머물러있는 게 아닌가고 묻자, 정발행인은 단지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 지적을 하는 것이지 이념적인 잣대로 보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선한 이에게 깃이 되고, 악한 이에겐 매가 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붓"이 코리아나뉴스의 사시이다.


한국정부에 쌓인 불만 토로

 

 ▲라디오코리아 손태수회장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시청료로 운영하는 KBS가 현지동포언론사를 도와주기는 커녕 동포방송의 경쟁자로 나서고 있으며 동포들을 상대로 비디오 테이프 장사를 하고 있다. "

LA 코리아타운의 한복판인 윌셔가에 위치한 라디오코리아 www.radiokorea.com 회장실에서 만난 손태수회장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KBS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부터 퍼부었다.

최근에 KBS의 LA 자회사인 KTE가 방송을 담당하는 KBS-LA와 비디오판매를 담당하는 KBS-월드로 분화되어 적극적인 영업에 나선 것이 그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손회장은 민간 방송인 라디오코리아가 어떠한 지원도 없이 한국 정부와 KBS가 해야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회장은 또 한국에 가면 너희는 외국에 등록돼 있는 외국언론사라며 지원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여기서는 한국말로 한국사람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한국언론사로 취급받는다고 말한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동포언론의 이중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말이다.

라디오코리아는 89년부터 이장희씨가 만들어 운영해왔으나 전파임대료 인상 논란중에 손회장이 채널을  인수하고 뒤이어 이장희씨에게 라디오코리아라는 이름도 매입했다. 이로서 LA 동포사회의 명물 라디오코리아는 선장이 바뀐채 맥을 잇게 됐다.

그러나 이장희 전회장이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운영을 포기하는 원인이 된 높은 전파임대료를 내야하므로 방송국 인수 이후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아 보였다.

손회장은 KBS 비판에서 나아가 한국정부와 위정자들에게까지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들은 동포들을 이용하려고 할뿐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김정일이가 찾아와서 동포사회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지원하겠다면 북한을 지지하겠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표현은 보수적인 LA 동포사회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매우 강력한 것이다. 라디오코리아 보도 논조가 한국정부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신랄한데 비로소 그 배경중 하나가 이해될 것같았다.

라디오코리아는 기자10명을 포함해 본사에만 40여명 직원이 있고 워싱턴등 주요도시에 통신원과 특파원을 두고 있다.

 

지금도 ‘민국장’으로 불려 

  ▲ 피플뉴스 민병용발행인

민병용 피플뉴스 발행인은 지금도 '민국장’으로 불린다. 지난 80년대부터 미주한국일보 편집국장을 두차례에 걸쳐 6년이나 재임했기 때문이다. 이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민국장’은 월간으로 피플뉴스를 발행하는 본업보다도 미주한인인명사전 편찬과 이민역사박물관 건립에 더 큰 열정을 보이고 있다. 미주동포판 Who's Who라고 할 수 있는 '미주의한인들-미주한인인명사전'은 수년간의 작업 끝에 5월중순 서울에서 인쇄된다. 민국장이 직접 원고를 들고 올 예정이다. 

이 사전에 수록된 인원은 모두 2300명으로 이중 남가주만 1000명에 이른다. 이외에 북가주 180명, 뉴욕 178명, 워싱턴DC 149명, 시카고 112명, 하와이 63명등이다. 이외에 주요 공직자 60명 언론인 10명도 수록됐다.

이름 사진과 함께 경력 서훈사항등 객관적인 자료들이 소개돼 있다. 주류사회 진출자,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사업가, 한인사회 봉사한 사람들, 통일운동에 헌신한 사람, 변호사 회계사 예술인 등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록됐다. 책이 나온 뒤에는 인터넷에도 이 자료를 올릴 예정이다.

그가 추진하는 또다른 사업인 미주한인이민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다음 선거에서 제임스한 현 LA시장을 지원하고 있다. 그가 당선되면 박물관 부지를 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민국장의 30년 이민생활은 미주동포신문사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그는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69년 말에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문교부 유학시험을 통과해 73년 8월 미국에 도착해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던 74년 10월 미주한국일보가 창간되면서 기자의 길로 복귀한다.


본사출신의 기자가 이곳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장재구 회장의 호출을 피할수 없었다. 장회장은 일년만 와서 도와주고 다시 공부하라고 했다.  미주한국일보에서 그는 불과 수개월만에 차장이 되고 또 부장으로 고속승진한다. 그뒤 78년부터 2년간 첫번째 편집국장을 역임한다.   TV 방송국장 논설위원등을 거친 뒤에 88년 두번째 편집국장을 맡는다.

민국장이 재임했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한국일보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난 5년사이에 중앙일보가 급속히 영향력을 키워서 대등하게 따라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99년 5월 민국장은 캐나다한국일보 사장직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그는 퇴직후에도 천직인 기자생활을 계속해나간다. 99년 12월 위클리신문 '피플뉴스'를 창간해 1년동안 펴냈다. 그뒤 미주이민 1백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피플뉴스는 휴간됬다. 그후 지난해 11월 월간으로 복간했다. 피플뉴스지의 내용은 제목을 통해 짐작할수 있다. 전지면을 인물 소개에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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