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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칼럼

[경향]불법체류자 이기는 정부없다

 

 2004년 04월 23일 (금)  경향신문  1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0063268

미국 정부는 올해 초부터 외국인 입국자에게 지문날인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입국심사가 대단히 까다롭다. 워낙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일단 국경을 통과하고 나면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는 외국인들을 국경에서 통제하지 않는다. 1985년에 유럽 여러 나라들은 ‘센겐조약’을 맺어 국경을 없애버렸다. 국경이 없는 유럽 나라들은 공항에서 출입국 도장을 잘 찍어주지도 않는다. 무비자협약을 맺은 나라 사람들은 3개월 동안 마음대로 체류할 수 있다.

이런 조건 때문에 프랑스는 미국과 다른 독특한 외국인 관리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이 자국 영토에 들어오면 제 발로 경찰의 불법이민자 관리부서를 찾아오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에게 매달 30만~40만원 정도의 거주수당을 1년 동안 지불하기 때문이다. 파리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약 400명 있는데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이다. 이들이 파리에 도착하면 먼저 와있던 동료들이 어서 경찰에 가보라고 안내해 준다. 수당은 직업을 찾기 어려운 불법체류자에게 적지 않은 돈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같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불법체류자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회혼란을 수습하는 비용보다 싸게 먹힌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같은 기발하게 보이는 불법체류자 관리정책이 수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 관리들은 유념해야 한다. 사회적인 약자인 이들에게 엄격한 조치를 취하면 인권 차원에서 국내외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만 보자면 한국과 프랑스 정부는 어린아이와 어른과 같다.

불법체류자 문제에 관해서 세계 어느 나라나 통용되는 관례가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제나라 땅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들을 모두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는 있을 수 없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나라들은 평균 10년에 한번꼴로 사면령을 내려 이들을 사회에 편입시킨다. 이미 이 나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체제내에 끌어들이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도 깔려있다.

좌우의 구분이 뚜렷한 프랑스에서는 우파정부가 상대적으로 외국인에게 가혹한 반면 좌파정부는 우호적이다. 좌우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국인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좌파정권이 시혜적으로 이같은 조치를 해주지 않는다. 지난 97년 사회당의 조스팽 내각이 들어서자 불법체류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연일 합법화 요구 시위를 벌였고 급기야 파리 북쪽의 한 성당에 들어가 40여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다.

당시 조스팽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공권력과 법치의 권위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우파들이 주시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됐다. 인권운동가들과 정부의 싸움은 결국 정부가 두 손을 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결과 외국인 이민에 관한 새로운 법을 만들어 ‘상파피에’(서류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체류 허가 심사를 벌였다. 14만명 중 7만7천여명은 국내 체류를 양성화했으나 6만3천여명에 대해서는 체류 허가를 거부했다. 심사의 기준에도 인권이 적용됐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과 노약자가 우선됐다.

요즘 한국사회도 이 당시의 프랑스와 비슷하다. 불법체류자 숫자도 공히 10여만명이다. 한국은 그 중에 중국동포가 6만여명인 점이 다르다. 현재 법무부와 청와대, 총리실 등 정부 유관부서의 담당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심 중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관리들이 선진국에서 배울 것 중 하나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불법체류자 이기는 정부 없다는 사실이다. 사면을 공권력의 굴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정 수준까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곧 양보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바란다.

〈김제완/재외동포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