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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칼럼

[경향] 이민 새패턴 ‘두 나라 살기’


 

 2005년 02월 10일 (목)  경향신문  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0107007
 
 몇해 전 파리에 유학 중인 작가 권지예씨는 ‘니서울 니파리(ni seoul ni paris)’라는 말을 사용했다. 프랑스어의 부정전치사를 붙여 서울도 아니고 파리도 아니다라는 말을 만들어 유학생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파리에 있다가 방학 때 서울에 오면 2주가 안돼 번잡함에 지쳐 다시 돌아가고 싶고, 변화가 없는 파리에서는 활기있는 서울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말한다. 니니족은 양도시를 겉도는 사람인 셈이다.

그렇다면 즐거운 서울과 천국다운 파리의 장점만 취할 수는 없나. 최근 이같은 생활을 찾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사람들을 니(ni)의 반대말인 시(si)를 붙여 ‘시서울 시파리(si seoul si paris)’라고 하면, 서울도 좋고 파리도 좋은 ‘시시족’이 된다. 시시족은 두 도시를 생활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21세기형의 새로운 삶을 제시한다.

1990년대 이래 우리는 세계화시대, 인터넷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5년쯤 뒤면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로 파리와 서울을 6시간에 다니게 된다고 한다. 서울~부산의 차량 이동 시간에 불과하다. 나날이 공간과 거리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바뀌면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다.

‘두 도시 살기’를 구현하는 시시족이 본격 출현하면 이민의 개념도 바뀔 것이다. 과거에는 한 곳의 뿌리를 뽑아서 다른 곳에 심는 것을 이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포공항은 이민자들과 남은 친지들이 눈물바람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금 더 먼 곳으로 이사하는 정도의 의미만 갖게 될 것이다. 60년대 이래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사람이 되라고 한 외교부의 현지화정책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두 도시 살기’ 현상의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기러기 아빠도 한 가족이 두 도시에 나뉘어 산다는 점에서는 같다. 최근 역이민이 늘면서 가장만 한국에 와 생활하는 ‘뻐꾸기 아빠’도 마찬가지다. 둘 다 경제 문제가 존립의 전제다. 그러나 두 도시 중 한쪽에서 벌어 다른 한쪽에서 소비하는 의존형은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없다. 두 도시 생활은 서로 연관되면서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두 도시 살기가 새 생활 방식으로 정착하려면 먹고 사는 경제 외에도 이중언어, 문화의 차이 등 많은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김제완|재외동포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