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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기사

김영옥대령 활약상


김영옥대령 활약상

적군생포 전선 뚫어

김제완기자  |  oniva@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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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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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유럽전선에 참전한 김대령의 공적은 신화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먼저 프랑스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게한 공적은 다음과 같다. 김대령은 지난 1944년 미 육군 442연대의 100대대 작전장교로 전투에 참가했다.

    

 


 
▲ 프랑스 보슈산맥 인근의 마을성당. 성당문 옆의 동판에 김영옥 대령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이부대는 ‘끝장을 본다(Go For Broke)’를 모토로 한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됐으며 김대령의 당시 계급은 대위였다. 김대위는 이 부대를 이끌고 프랑스 동북부 브뤼에르, 비퐁텐느 지역을 독일군과 전투끝에 해방시켰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지금도 김대위라는 뜻의 ‘카피텐느 김’이 전설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마을 성당 문 옆에 붙어있는 동판에도 “100대대 영웅들중의 한 명인 김영옥 대위, 이 성당 문 앞에서 부상당했으나, 의무병과 함께 탈출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김대령에게 2차대전 최고의 영웅 칭호를 받은 공적은 따로 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결행되기 직전인 그해 3월, 김영옥 예비역 대령이 소속된 442연대 100대대는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서 안지오라는 항구도시에 상륙했다. 이곳은 2차대전중 최고의 격전지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여기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

연합군은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적을 생포해 정보를 얻어야 했다. 이때 김영옥대위가 자원해서 부하 네명을 데리고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로써 전선이 돌파되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상륙작전이 가능하게 됐다.

김대위의 활약이 이차대전의 터닝포인트로 이어졌다는 점때문에 각국으로부터 무공을 인정받았다. 이 공적으로 미국 특별무공훈장과 이탈리아 최고무공 훈장, 프랑스 십자무공훈장등을 받았다.

김 대령은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미군당국이 이차대전 참전자들에게는 한국전 참전을 제한했는데 굳이 우겨서 한국에 왔다고 한다. 1951~52년 미육군 7사단 31연대 제1대대장(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폭탄파편에 맞아 두 다리를 부상당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는 은성,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