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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이야기

한나라당 보수 논란,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니다

 2012년 01월 05일 (목)  김제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3752639

한나라당과 여권 전체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지난 수년동안 이어져 온 보수 진보 논란이 엉뚱한 곳에서 빅뱅이 이뤄진 것같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랄 수 있는 정강에서 보수를 빼자는 발언때문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정강정책·총선공약 분과위원장인 김종인위원이 4일 언론 인터뷰에서 “보수냐 중도냐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강정책도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나는 보수다’라고 찍고 가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2006년 개정된 한나라당 정강정책에는 ‘새로운 한나라당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 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의 발언에 전여옥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 하시지”라고 비판했다. 홍준표의원등 한나라당 의원뿐 아니라 자유총연맹등도 반대 성명서를 냈다.

김위원의 발언이 과연 한나라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 색깔 지우기인지 단지 보수라는 단어를 지우자는 것인지가 쟁점인 것같다. 전여옥 의원과 자유총연맹등이 반발하는 것은 보수라는 가치를 지우자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정책쇄신분과위원회 전체회의에선 "보수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위원도 `보수`라는 얘기를 하면 젊은층에서는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한나라당의 가치, 보수의 가치를 내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라는 단어를 던져버라자는 뜻으로 읽는다. 김위원이 어떻게 당의 강령 첫줄에 들어있는 가치를 부정할수 있겠나. 다만 당개혁에 불안을 느낀 친이계가 이 기회에 일떠선 것으로 보인다.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거론이 돼온 문제였다.
 
보수 용어의 문제는 보수진영에서 뿌리가 깊은 논란거리였다. 지난 2005년 조갑제대표가 "보수가 진보다"라고 말한 이후 2009년 박효종교수의 정명논란으로 이어졌다. 박교수는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진보 보수 대신 좌파 우파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2011년 양동안교수는 우파가 자신을 보수라 여기고 자신이 반대하는 쪽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정신착란이라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에서 보수로 변절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은 여전히 진보라고 말했다. 이 시대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만드는 것이 진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멍애를 지고 있나. 이걸 설명해보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영국의 귀족 지주 계급이 전통적 가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보수할 것이 없는 제3세계에서는 보수는 말자체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보존해야할 가치들을 잃어버린 나라도 마찬가지다. 조국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박정희도 보수주의자일 수가 없다.

김종인위원의 말처럼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 규정한 정당도 별로 없으며 이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몇나라밖에 없다. 보수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며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도 사용된다. 한국외의 세나라에서는 보수할 전통적인 가치가 남아있어 보수의 근거가 있지만 한국에선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당연히 우파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파 대신 보수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언어 관습상의 문제이다. 우파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좌파에도 설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6.25전쟁이후 우리사회에서 좌파는 절멸됐으며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말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좌파를 사용할수 없다보니 우파만 사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됐다. 그래도 명명의 대상인 실체가 있으니 대체품을 찾아야 했다. 이때 눈에 뜨인 것이 보수가 아니었을까. 보수는 진보라는 짝과 어울려 우파 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름대로 절실한 필요에 의해 태어났지만 그 과정에 사회과학적 검증이 빠져있었다. 보수는 우파의 여러 사조중 하나일뿐인데 이것이 대표선수로 등록이 되어버리니 혼란은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는 우파의 큰 흐름인데 보수주의라는 작은 그릇에는 담기지 않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도 이 문제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수가 보수라는 단어를 안 쓰게 되면 진보도 진보를 사용하는데 불편해질 것이므로 진보진영도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의 특산품인 진보-보수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도 따져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