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진보답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하나

ㅡ반기문의 진보적 보수주의 논란에 대하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172030005&code=990304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선언 와중에 불거진 진보 보수 논란이 화제다그는 불출마선언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직정적으로 심정을 토로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만났더니, 앉자마자 내게 '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 질문을 하더라. 이건 적절치 않은 질문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보수다. 그런데 그걸 구분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그런 부분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반기문은 진보냐 보수냐 라는 질문을 예상한듯 지난달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그의 대답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못한다. 개그맨 배칠수는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독재자 비교하며 조롱했다. 정치권도 시비를 건다. 이쪽과 저쪽을 가지려는 기회주의적 태도 아니냐. 역시 '기름장어'답다


보수논객 류근일씨는 반기문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라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슨 재주가 있기에 그럴 수가 있을까? 무슨 신비스런 주술이 있기에 사드배치 반대 탈미친중 개성공단 폐쇄 반대와, 사드 배치 찬성 한미동맹 강화 개성공단 폐쇄 지지 햇볕-퍼주기 반대를 아우르겠다는 건지, 정말 한번 구경이라도 하고싶다."


반기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진보냐 보수냐 나누나. 유럽에서도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보수당이라고 해서 그런 정책만 내놓고 하는 아니다." 진보적 보수주의는 윤여준씨가 이미 사용했던 용어이다. 그는 지난연말 교통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바탕이 보수주의자이지만 진보적 가치를 수용한다는 그런 뜻이다…” 


진보적 보수주의는 진보적 우파, 좌파적 우파, 중도우파라고 바꿔서 부를 있다. 이념의 종주국 서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중도우파이다. 중도우파란 우파이면서 좌파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가져다 쓰는 입장이다. 반기문과 윤여준 그리고 서유럽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일맥상통함을 있다. 이념의 세계를 논리만으로 접근하면 미망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사례를 몇가지 들어보자


표창원의원은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서 근거로 영국유학시절의 경험을 들었다. 영국에서 보니 보수주의자들이 정의를 말하더라. 그러니 정의는 보수의 덕목이고 정의를 주장하는 자신도 보수주의자이다. 이게 맞는 말일까.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전략적으로 쓰는 말로 보인다. 영국의 보수당과 보수주의는 오랜동안 중도화과정을 거치면서 좌파의 장점인 정의를 가져다 쓰고 있다. 백년전부터 쓰고 있어서 본래 누구의 것인지 저작권을 따지기도 어렵게 됐다. 이처럼 서유럽의 중도우파는 좌파의 장점 여러가지를 빌려다 사용한다


중도좌파도 마찬가지다. 홍세화씨는 관용을 말하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당의 강령에 관용이 들어있다. 그러니 관용은 좌파의 덕목인가. 프랑스의 극좌 공산당과 달리 사회당은 중도화과정을 거치면서 우파의 장점들을 가져다 쓰고 있다. 관용은 그중의 하나이다


우리사회는 남북 분단때문에 이념연구가 매우 뒤쳐졌다. 이념의 이중개념성 또는 중도수렴현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이런 몰이해는 현실속에서 거칠게 드러난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마찬가지로 진보는 진보답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한다. 이런 단순하고 직선적인 생각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진보 보수 논의구도를 헝클어 트리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적 보수주의는 자리가 없다


좌나 어느 한쪽으로 신념을 결정하면 이념의 회로를 따라 좌의 가치 또는 우의 가치만을 선택하는 태도가 일관된 올바름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극좌 극우이다. 류근일과같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말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는 뜻은 사드배치를 찬성하며 동시에 반대하는 정신병적인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드 배치에 찬성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동의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남성에겐 여성성이 여성에겐 남성성이 일부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 진보적 보수주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념의 혼란이 관념의 착종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에 개입해서 정치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념은 본래 복잡한 현실을 알기 쉽게 재단하는 잣대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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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 이해찬·정청래 '목숨 값' 받을 수 있나

[김제완의 좌우간에] 헬조선, 보수화된 민심이 정치판을 흔든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4358&ref=nav_search


친노의 좌장인 이해찬, 그리고 당의 '대포'로 알려진 정청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 탈락했다. 합법적 정변이라고 할 만하다. 새누리당의 진보파 유승민 의원도 역시 탈락 위기에 놓여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권력투쟁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보수화 경향이라는 잣대로 판단해 보려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미움받을 용기'로

이명박 정권 시기는 진보의 시대였다. 권력은 보수였지만 이에 반발해서 민심은 진보로 향했다. 당시 보수집권당이 서울시장과 구청장선거 등에서 연패했던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그때보다 더한 보수정권인데 민심은 이를 따라가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2012년과 2015년 사이에 더 보수화되었다. (...)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박근혜정부 3년간 중도진보에서 중도로, 중도보수에서 극단적 보수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표심의 역습>, 234쪽.

최근의 보수화 경향을 우리사회가 충분히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조사결과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서는 이 사실을 사회과학적 논증이 아니라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통해서 확인해 보려 한다. 베스트셀러는 동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도 밀리언 셀러나 장기 베스트셀러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진다. 2010년에 나온 <정의란 무엇인가>는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100만부 이상 팔렸다. 정의가 없는 시대에 정의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책의 제목만 보고 선뜻 책값을 지불했다.

그뒤 5년이 지나 <미움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51주 연속 판매고 1위로 역대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이 책도 제목 효과를 본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중시하는 이기적인 처세법을 가르쳐준다. 두권의 책 사이에 민심의 어떤 변화가 숨어있는 것일까.

<미움받을 용기>에 따르면 인간의 고민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정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남의 이목에 신경 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이목 때문에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느냐..."

이 책은 타인과의 연대를 포기하고 자기의 존재 안에 달팽이처럼 움츠러든 현실도피적인 사람들을 정당화해준다. 이같은 이기주의 경향이 지금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왜 진보에서 보수로 전환됐나

불과 몇해 사이에 시대정신이 냄비처럼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큰 흐름은 따로 있고 이것은 작은 흐름인 걸까. 이런 변화의 원인이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이명박 정부에서 정의가 사라졌다는 믿음 때문이라면 <미움받을 용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난 '헬조선'의 산물이다. 지난 연말 이 책을 다룬 <프레시안> 기사는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헬조선' 절망이 미움받을 용기 열풍 낳았다”. 기사에는 이런 언급이 보인다. "변혁을 기대하는 심리가 붕괴했다. 이제 스스로를 추스리는 데 사람들은 집중한다. 더는 사회에 바랄 게 없다는 정서는 '헬조선'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

헬조선은 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부숴뜨린다. 방어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이 먹잇감이 되고 있다. 연초부터 끊이지 않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죽음은 공동체 유지의 기초단위인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권이라는 삶의 질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헬조선'이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실제로 연옥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헬조선에 대한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이다.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회피 외면할 뿐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굴절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업으로 꿈과 희망을 잃은 '엔포세대' 청년들의 절규는 변혁의 에너지가 아니라 보수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2013년 출간된 오찬호의 책 제목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이 책에는 요즘 대학생들이 KTX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헬조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세월호 참사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전국민의 뇌리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국가가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그러므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재산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미친 전세값'으로 대변되는 민생의 악화도 사람들을 보수적으로 만든다. 경제는 장기 침체에 접어들고 있어 소득이 감소하는데도 주거비는 급증한다. 민생의 악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존을 우선하게 만든다. 생존이 위협받으면서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성향이 발동하고 있다.


민심의 보수화가 정치권을 격변 속으로 몰아넣어

4월 총선을 앞둔 공천 정국에서 더민주당 이해찬과 정청래의 목이 잘렸고 새누리당 유승민의 탈락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수화 현상이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도미노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 정치인들을 쓰러뜨렸다.

갑자기 나타난 보수화 현상은 변혁과 진보의 든든한 기지였던 호남의 절반을 무너뜨렸다. 호남 노년층에서 주로 나타난 보수화는 야당을 격변 속으로 몰아넣었다. 안철수 탈당과 국민의당 분당은 호남 보수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남의 전방위 공격에 기진맥진해진 문재인이 물러나면서 대응카드로 김종인을 불러들여 '비상대권'을 쥐어주었다. 새누리당 출신 보수인사를 초빙한 것은 보수의 공격에 진보가 손을 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종인은 정무적 판단이라며 이해찬 정청래를 공천 배제했다. 보수 흐름에서 시작된 일련의 변화가 더민주당내 좌파인 친노를 친 것이다.

이것을 김종인의 자의적인 결정이라고 보는 것은 시대 흐름을 눈여겨 보지 않은 결과이다. 더구나 김종인이 근 30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찬에게 당한 패배에 대해 복수를 한 것이라는 주장은 흥밋거리 가십에 불과하다. 문재인이 대권가도에 잠재적 경쟁자인 이해찬을 김종인의 손을 빌어 날렸다는 '차도살인'은 종합편성 채널의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소설일 뿐이다.

김종인에게 "짜르"와 같은 명칭이 붙을 정도로 막강한 힘이 생긴 이유는 그의 보수성향과 보수 흐름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때를 잘 타고 등장한 것이다.

보수 흐름은 새누리당도 비껴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이었던 유승민파도 공천 전쟁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이것을 당내 권력 싸움으로 해석하면 간단하다. 틀린 분석도 아니다. 그러나 조금 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더민주당과 공통점이 보인다. 새누리당내에서 왼쪽에 편재해 있는 그룹과 더민주당내에서 왼쪽에 서있는 그룹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한 독립적인 사건일까. 정치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시스템 아닌가.

최근 5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의 주요한 특징은 급격하고 동시에 은밀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도 예상못했을 정도로 진보의 시대가 갑자기 다가왔고 그것이 채 물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슬그머니 보수 흐름이 다가왔다. 정치는 출렁이는 바다위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요동친다. 이런 변화를 어느 정파가 잘 타고 넘어가는가에 따라 이번 선거와 내년 선거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는 새누리당이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진보시대가 왔음을 간파하고 곧바로 당색깔도 바꾸고 당강령에서 보수조항도 삭제하며 '진보 코스프레'해서 집권에 승리했다. "선거 기계"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들의 선거 능력은 더민주당보다 한 수위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떨까. 더민주당은 이해찬 정청래의 목숨값을 받아낼 수 있을까.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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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우파의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진보보수이야기 2015. 11. 15. 13:25 Posted by 세계로김

좌파 우파의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진보 보수 특집 백분토론을 보고
 

 2009년 05월 24일 (일)  김제완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흔히 선인과 악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선의나 악의만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다 있으며 어느 쪽이 더 많은가가 문제될 뿐이다. 좌우도 선악과 비교된다. 좌파는 좌파적인 것을 우파적인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사회에서 좌파는 좌파적인 것으로 일색화된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파의 경우도 같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가 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여러차원의 평가가 나오겠지만 노무현이 좌파냐 우파냐는 논쟁은 그 중심에 있다. 인간 노무현은 좌우를 6대4의 비율로 가지고 있으나 참여정부는 그보다 우가 좀더 많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이라크 파병처럼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선택이 다른 경우도 있으니. 그러나 비율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이글은 그 비율을 따지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우보다 좌가 많으면 좌파고 좌보다 우가 많으면 우파라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 차원의 논의로 넘어갈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같은 개념상 합의 미비로 모든 논란은 기초적인 혼돈의 덫에 걸려있다.

현재 노무현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오고 있는가를 보면 그 혼돈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수진영은 좌파정책 여섯가지만 보고 좌파라 주장한다. 이것은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규정의 근거가 된다. 진보진영은 우파정책 네가지만 보고 우파라 하면서 지지자들을 배반했다고 주장한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판단해버린다.

최근 방영된 문화방송의 백분토론에서도 이같은 혼선이 잘 드러났다. “보수 진보,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주제로 한 3부작 특집이었다. 토론자들중 한쪽은 사회양극화, 한미 FTA, 시장권력론, 아파트 원가공개 거부등을 들면서 이런 정권이 어떻게 좌파인가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변함없이 좌파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퍼주기,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 종합부동산세, 교육 3불정책, 좌경교과서등을 들어왔다.

두가지 상반된 주장이 동시에 옳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일반 시청자들은 어지럽다. 지지하는 쪽이 있는 시청자라면 같은 쪽의 토론자만 옳고 다른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토론자들이 각각의 당파성에 따라 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보수진영이 공격하는 좌파정책을 진보진영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반대의 경우는 찾기 어렵다. 사물의 반쪽만 보는 외눈박이들같다. 그래서 ‘황당개그’는 이어진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이념갈등이 심해진 이유를 한나라당과 우파가 “좌파척결”을 위해 이념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보수측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10년간 좌파가 집권했는데 어떻게 좌파를 척결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한다. 우파가 혁명이라도 기도했다는 것인가라는 뜻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좌파 우파가 비하적인 말이 아니다. 좌파정권이 두 번이나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하지 않았나.” 이제 당당하게 좌파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지난 10년 집권한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다 ‘짝퉁좌파’다”라고 대꾸한다.

진보쪽 토론자로 나온 박석운 손석춘 홍종학등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난 10년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파탄이지 진보의 실패가 아니라거나 진보가 집권해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진보의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기회가 오면 실력발휘하겠다고 벼르는 진보정책이 이미 참여정부에서 상당부분 실현됐다는 사실을 이들은 애써 외면한다. 무엇이 진보정책인가는 이미 잘 드러나있다. 보수가 좌파라고 비판하는 정책들이 그것 아닌가. 진보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들이 이미 실현된 진보정책에도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당대의 고수들이 모인 토론에서 창과 방패가 엇나간다. 한판 진검 승부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헛방이나 날리는 정면을 지켜봐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의 속성이 복잡한데 이처럼 엇박자를 내며 혼돈을 가중시키니 시청자들은 무관심이나 냉소에 빠지는게 당연하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이 토론이 담고 있는 풍부한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론이 보도한 것은 에피소드 하나였다. 사회자 손석희가 좌파냐 아니냐는 엉뚱한 것이다. 좌파 우파 개념규정에 대한 합의없는 토론에서는 앞으로도 이같은 일이 계속될 것이다. (10.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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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극우파에는 왜 민족이 없나

진보보수이야기 2015. 11. 15. 13:24 Posted by 세계로김

한국의 극우파에는 왜 민족이 없나 
좌와 우가 바로서야 선진국 진입가능하다
 

 2009년 05월 26일 (화)  김제완  
 
 
영국의 한 동포가 몇해전에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일하고 나서 사회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행사 사장인 그는 탐욕스럽게 운영해서 돈도 좀 벌었다. 그런데 왜 이런 생뚱맞은 말을 한 것일까. 그는 대학생인 아들이 둘 있었는데 외국인 며느리를 보는 것을 두렵다고 했다. 영국동포사회에서 한국인 출신 짝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국내와 여러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동포자제들 짝짓기 운동을 구상했다. 그가 실제로 행동에 옮겼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같은 절실함은 몇해전에 외교부 산하기관인 재외동포재단의 사업으로 실현됐었다.

이처럼 한민족은 단일민족 혈통을 지키려는 국수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수만명으로 늘어났다. 며느리를 맞는 시부모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다수 국민들도 영국동포의 마음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외국인 어머니 슬하에 있는 2세들이 겪고 있는 모국어에 대한 혼란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럽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위의 영국동포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재외동포관련 활동을 해온 필자에게는 원인이 무엇인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한국처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왜 이같이 민족 정체성의 훼손을 방관하는 일이 일어나는가.

외국인 며느리는 혼기를 넘긴 농촌총각 문제를 해결하는 불가피한 존재들로 인정하는 것일까. 외국인 노동자는 일정기간 일하고 돌아가는 계절이민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외국인 며느리는 영주거주할뿐 아니라 2세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없다.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지난 2008년 연간 결혼자중 14%가 외국인과 결혼했다. 이 수치에는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 3%도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남성의 국제결혼이 11%이고 동남아 여성과 결혼하는 농촌총각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농촌의 외국인 며느리가 40%이며 숫자는 지난해의 경우 1만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한국여성은 짝을 못찾고 독신으로 남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최근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거주 여성의 경우 36%가 "결혼은 안해도 그만"이라고 조사에서 답했다고 한다.

한국여성들이 자국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잘 알려진 대로 육아의 어려움이다. 농촌총각의 문제는 여성의 이농때문이다. 낮은 생산성을 문제삼아 탈농을 방관한 정부가 문제다. 그렇다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사회운동이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독신으로 남지 말고 자국총각을 선택하라는 의식계몽운동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사회운동뿐 아니라 국회에서 거론되는 장면을 보기도 어렵다.

고작 농업의 생산성을 이유로 농촌을 소외시키고 농촌총각을 양산시켜서 얼마나 국가경제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 그 댓가로 한민족의 혈통이 흐려지는데도 남는 장사라고 보는 것일까.

오히려 외국인 며느리들을 우리 문화속으로 동화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다문화운동이 정부지원을 받아서 활발해지고 있다. 참 너그러운 국민들이다. 국제결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관대해졌다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도 보이지만 믿기 어렵다. 이들과의 동거가 불가피한 마당에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자는 취지로 작성된 기사들로 보인다. 타민족 출신도 한민족에 편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열린민족주의가 학자들사이에서 제기됐지만 다수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을까. 

이런 때에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장 마리 르펜이라면 어떠했을까? 국민전선이 선거때마다 내세우는 단골 구호는 "프랑스인 먼저!” 즉 프랑스인우선주의이다. 그 배경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깔려있다. 프랑스에 이민노동자가 4백만인데 실업자도 4백만이어서 극우파들은 외국노동자들을 다 내보내면 실업율이 0%가 될 것이라고 선동해 표를 모은다. 르펜이 한국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좌시하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을 것이다. 게르만민족 순혈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는 독일의 네오나찌들도 혈통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저하지않고 일떠섰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극우파들은 무얼 하고 있나. 요즘 사회적인 발언권이 한껏 높아진 조갑제 지만원 이도형등은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하는 북한정권이나 지난 10년의 이른바 ‘좌파정부’를 비판하는 일에는 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를 들고나오는 모습을 볼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 현대사의 비밀이 있다.

극우의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경우를 살펴보자. 국민전선의 기본이념은 반공, 민족주의, 반이민정책, 강력한 국가, 전통적 가치 보호등이다. 우리나라는 이중에 반공과 강력한 국가만이 보인다.

한국의 우파에게는 왜 민족이 없나 하는 것은 미국에는 왜 좌파가 없나 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회를 특징짓는 의문이다. 한국의 전통보수로 불리는 극우파 또는 우파들은 원죄가 있다. 그들은 과거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을 했다. 친일은 다시 친미로 사대주의로 나아갔다. 그들은 이런 업보때문에 민족주의를 당당하게 펼치지 못한다. 한국 극우파의 특성중 또하나는 과거 권력에 깊이 참여해왔다는 점이다. 이같은 점도 국가주의적 특성 즉 반공이 강화되고 민족주의가 약화시킨 원인으로 보인다.

반대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점유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면서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겠다. 좌파가 우파의 덕목으로 알려진 민족주의를 선점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특징이다.

공산정권인 북한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민족분단 상황이 낳은 통일문제도 진보진영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유교적 전통등 우파의 특성들을 갖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 북한은 서구의 전통좌파의 눈에 보면 고개를 갸웃가리게 하는 ‘이단’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나 친북좌파로 알려진 송두율교수가 최근에 펴낸 책의 제목이 “만족은 영원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다시 숙제로 돌아가자. 민족주의가 우파가 아닌 좌파의 것이 되었다는 것은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열쇠이다. 좌파의 소유가 된 민족주의는 주로 통일문제에 적용될 뿐, 서구에서처럼 민족주의가 인종차별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좌파의 덕목인 평등주의가 쐐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며느리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할 민족주의자를 우파에서도 좌파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비로소 이해가 되지 않는가. 결과적으로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 원인을 보면 결코 안심할수 없다. 우리 사회 이념지형의 예외적인 특별성은 우리 의식도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하드웨어는 상당히 갖춰졌지만 지금 문제는 소프트웨어이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균형은 소프트웨어의 핵심이다. 이념의 왜곡은 정신균형을 크게 해치고 있다. 이념이 민족을 남북으로 분단시켰는데 뒤틀린 이념지형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 왜곡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글은 결코 외국인차별을 조장하거나 획책하는 목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외국인 며느리 문제를 통해서 왜곡된 이념과 왜곡된 민족주의 문제를 인식하자는 취지이다. (17.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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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15일 (목)  김제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sortKey=depth&bbsId=D101&searchValue=&searchKey=&articleId=3725511&pageIndex=1

어제 아고라 정치방에 올린 글입니다. 

김성식 정태근의원이 한나라당이 거듭나기 어렵다는 이유로 탈당하겠다고 말했다. 탈당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쟁점은 한나라당을 무너뜨리고 재건축할 것이냐 또는 골격은 유지한 채 리모델링할 것이냐이다. 어느쪽이 됐건 172석의 공룡정당 한나라당이 위기를 넘어 붕괴단계에 들어서 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장면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데자뷰)이 든다. 열린우리당의 침몰장면이 그것이다.

참여정부시기 과반의석을 얻었던 열린우리당도 지금으로부터 꼭 4년전 한나라당처럼 비참하게 붕괴됐다. 창당 주역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만류에도 당을 깨자는 사람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당시 대선후보 정동영의원이 총대를 매고 나섰다. 문제는 선거결과였다. 열린우리당 집권시기 몇해동안 당의 이름으로 치룬 재보궐선거에서 40전 40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선거를 통해 힘을 충전해야 하는데 선거만 했다하면 패하니 어떻게 하겠나. 정치인들에게는 자기 당을 깨야할 만큼 절실함이 있었다.

나는 그뒤로 한동안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과연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잘못했나? 집권당으로서 오류도 있었고 서투른 점도 많았지만 선거에서 전패를 당해야 할만큼 잘못 한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이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문제 아닌가. 민주주주의 훈련이 안돼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한국인 특유의 어떤 기질과 관련있는 것 아닐까?

지금 붕괴에 직면한 한나라당이 처한 조건은 내가 보기에 여야가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 열린우리당이 처한 상황과 같다. 지난해 5월 이전까지 서울시내 25개 구청장을 한자리도 빠짐없이 한나라당이 석권했다. 그런데 보수의 아성인 강남3구등을 제외하고 21개 구청장 자리를 민주당에게 일시에 빼았겼다. 한나라당 구청장은 자신이 무얼 잘 못했는지도 모르고 낙선했고, 민주당 후보들은 얼떨결에 구청장이 됐다.

지난해 지방선거에 이어서 올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한번 유권자들의 의사가 변함없음이 확인됐다. 시장후보였던 나경원 후보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중구에서도 적지않은 차이로 패했고, 홍준표대표도 자신의 지역구인 동대문구에서조차 큰 차이로 패했다.

유권자들의 이같은 투표성향으로 인해 정치권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후라이 판 위의 파전을 뒤집듯이 정치판이 뒤집혀진다. 제대로 익지 않은 채 뒤집혀져서 너덜너덜해 진다. 밥상에 올리기도 어렵게 됐다. 민주주의를 위한 황금율인 55대 45가 아니고 90대 10의 분할구도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겁에 질려 몸을 떠는 것이 이해가 된다. 스스로 당을 깨자고 주장하는 것도 그럴만하다. 그런데 도대체 유권자들의 이같은 쏠림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정치선진국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 비슷한 사례가 보인다. 90년대부터 20년여동안 집권세력이 국정을 잘 수행했건 아니건 간에 정권을 바꿔버려 정치 분석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제도가 고장난 것 아닌가, 또는 유권자들이 좌우만 주어져 있는 선택지에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해동안 나타난 양태와 비슷해보인다. 프랑스와 한국의 유권자들의 투표행태가 겉보기엔 유사하지만 그 원인도 비슷한 것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강준만 교수는 쏠림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한 정권교체가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사실 일본등 동북아시아 나라들은 정권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정치 후진국에 비하면 낫다고 해야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쏠림 현상이 정상적인 정당 정치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기보다 바람이 불기만 기다린다.

한국인 특유의 화끈한 성격이 원인일까. 잘못했다면 잘못한 만큼만 응징해야 하는데 한번 열을 받으면 완전히 패망에 이르게 하고 만다. 도대체 이런 특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농부가 밭을 탓하랴고 하면서 유권자를 탓하지 않는다. 선출직이 유권자를 비판하는 것은 자살행위이고 금기시돼 있다. 그러나 평론가 학자들은 말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이런 난폭한 투표행위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해 겨울 엄청추웠다. 1월 한달동안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간 시간이 불과 몇시간이었다. 비가 한번 오면 억수로 쏟아진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춥다. 이런 자연환경의 영향인 것일까?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자연환경의 영향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연구해서 누가 발표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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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주사파다

진보보수이야기 2015. 11. 13. 10:15 Posted by 세계로김

주체사상, 실체 알고 보면 별것 아니다 
2012년 05월 25일 (금)  세계로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10120525145307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알려진 황장엽이 2010년 10월 사망한 직후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었다. 진보는 반대, 보수는 찬성의 구도를 보였으나 우파 진영 일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반대론의 근거가 뜻밖이었다. 그가 남한에 와서도 주체사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발전, 파급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일반국민에게는 황당한 말로 들릴만했다.

이 당시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발전시키려 했던 의도가 강했다"며 "주체사상은 북한 인권 문제와 다른 문제로, 차라리 주체사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더 개선해 파급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혼란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보수우파 진영 일각에서 그가 주체사상을 왜 버리지 않느냐, 혹시 위장 전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는 강연이나 저술을 통해서 줄곧 '인간중심의 철학'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체사상의 별칭이다.

그가 남긴 저서에는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한의 청년들에게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가 말하는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철학은 고난에 처한 사람이 역경을 뚫고 목표에 이르게 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 준다. 그래서 북한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지배이념이 되었다.

주체사상을 막연히 북한의 독재를 합리화시켜준 괴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사갈시해온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말이다. 그런 것이라면 위험할 게 뭐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더구나 주체사상의 핵심인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말로 들린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하기가 어렵다. 주체사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통적 좌파의 세계관과 비교해 봐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뒤집으며 탄생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일정한 조건에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될 일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합리주의이다. 이에 비해 주체의 인간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면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신념의 인간이라 불린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3대요소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중 의식성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북한의 선전포스터에서 보이는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경구는 이 같은 특성을 잘 보여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FIFA 랭킹 꼴찌였던 북한은 랭킹 1위의 브라질에 대등한 게임을 펼친 것도 소위 주체축구의 힘이라고 선전했다. 2대 1로 패하긴 했지만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놀라운 힘의 원천인 의식성은 주체사상을 매우 독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주체사상의 이 같은 특성은 우파적 관념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80년대에 PD(민중민주 계열) 쪽의 비판을 받았고 유럽의 전통적 좌파에게 외면 받는 이유가 됐다.

이 같은 인간중심의 철학에 수령론, 유일사상 체계 등 정치적인 성격이 입혀져서 비로소 북한의 지배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의 원형인 인간중심의 철학만을 보면 남한의 지배이념과 다르지 않다. 인간중심의 철학에서 나온 "한다면 한다"와 남한의 경제발전 시기의 지배이념이었던 "하면 된다"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나. 통일시대에 남북이 함께 가져야할 이념이 이처럼 쉽게 발견된다는 것은 더없이 다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인민들도 '아이 캔 두이스트(I can do-ist)'이고 남한 국민들도 주사파이다.

    
  ▲ 통합진보당 김재연, 이석기 당선자  

통합진보당 파동 중에 이석기, 김재연 등 구당권파가 버티는 모습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당황해 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상식에 비춰보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여론이 불리할 때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전략을 써볼 만도 한데 그들은 무소처럼 밀고나간다. 도무지 정치를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놀라게 된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북한과 꼭 닮았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과의 대결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합리적으로 접근할 때 이해가 잘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자기들이 손해가 되는 일도 자초하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병법에 비춰보면 미국이 북한에 쩔쩔매면서 끌려 다닌 것은 당연했다.

이석기, 김재연 등이 지금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는 모습도 북한과 비교가 된다. 왜 진보진영에 손해가 되는 일을 그리고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일을 자초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은 바로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훈련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갖 난관과 어려움에도 맞서서 끝까지 버티며 마침내 목표한 바를 이뤄내고 마는 그런 모습이 그들의 로드맵이 아닐까. 그들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자료로 삼아서 북한의 주체사상이 어떤 것인지 학습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그것도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낭만적인 아이디얼리스트의 발상으로 보일 법하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5월12일 통합진보당 사태를 주제로 한 KBS 심야토론에 나와서 한 마디 했다가 혼이 났다고 말했다. 평생 그때처럼 악명이 높았던 때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 토론에서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뿐 아니라 주사파 정당까지 한국정치에 들어 올 수 있다면서 이것이 한국정치에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야토론 게시판에 오른 시청자의 글 하나를 소개한다. "전국민이 수신료를 내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북한의 적화통일을 돕는 주사파를 인정해야 된다고? 이건 고발대상입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봄은 오듯이 북한이 아무리 싫다 해도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필자는 80년대 북한바로알기운동에 참여해서 북한 서적을 펴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차원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북한의 주체사상 별 것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것과 비슷하다. 실체를 잘 모를 때에 불필요한 공포심이 생긴다.

북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이석기, 김재연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누구와 통일하겠다는 것인가. 앞으로 원조 주사파와 통일하려면 유사 주사파쯤은 받아들일 체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번에 백신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김제완 세계로 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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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진실

진보보수이야기 2015. 11. 13. 10:13 Posted by 세계로김

통합진보당 파동의 원인 이해하기 
2012년 05월 12일 (토)  세계로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511114129&section=01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사건과 그뒤에 이어진 이정희대표의 새로운 모습에 온국민이 놀라고 있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진보정당 내에서 왜 이런 부정선거가 일어나는가, 게다가 명백해 보이는 부정선거에 왜 반성을 하지 않는가 하는 놀라움이다. 이 과정에서 총대를 맨 진보의 아이콘 이정희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파동의 주요한 특징은 당권파에 대한 공격이 난무할 뿐 그들 편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민한 정치 문제가 발생하면 학자 논객들의 입장은 늘 이쪽 저쪽으로 나뉘어 맞서게 돼있다. 그런데 지금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나누어 보면 일방적인 비대칭 구조이다.

당권파가 물러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면서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왜 버티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들만이 전해질 뿐 그들이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때리고 다른 쪽은 얻어맞는 가학증과 피가학증의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결과 총선에서 얻었던 당지지율이 반토막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이 균형잡힌 판단을 하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도 알려져야 하는 것 아닐까.

비례대표후보 선정을 위한 당원투표를 하는 정당은 통합진보당밖에 없다.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은 공천심사위원들이 모여서 순위를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다. 사실상 지도부의 각계파가 나눠먹기식으로 결정한다. 이러한 정치환경에서 통합진보당은 당원투표로 결정하는 진일보한 민주주의를 실시해왔다. 이번 파동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다보니 생긴 진보의 숙명이라는 점이 알려진다면 당지지율이 그처럼 급전직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같다.

당내외의 빗발치는 비판에도 당권파가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이상 그들이 완강하게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부정선거 전부터 있었던 관행이다>

이의엽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은 5월3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서 사태의 원인으로 “기존의 잘못된 관행”등 몇가지를 말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이라면 과거에도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인가?"라고 날카롭게 되물었다. 이에 대해 이의엽은 아이쿠 실수 했다라는 듯이 말을 얼버무렸다.

이런 것이 그들의 딜레마이다. 오래된 관행이므로 정체성의 일부인데도 대중에게 당당하게 말을 못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반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로 그들의 입장에 서보면 말하기가 아주 난처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자칫 그들 입장을 설명하는게 그들을 욕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그러나 이제는 점잔은 사람들 앞에서 때가 낀 배꼽을 드러낸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할 때가 됐다. 당권파들이 이미 점수를 너무나 많이 잃어서 더 잃을 것도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동일 IP로 대리투표 했다는 사실도 그들의 배꼽이다. 대학생 당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강의 때문에 친구에게 대신 투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한 친구가 두세명의 친구들 이름에 서명까지 하고 투표를 한다. 선거관리인도 동지적 관계이며 서로 알고 지내는 당원이므로 묵인한다. 그러나 정부보조금을 받는 공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거인명부 즉 당원명부를 공개하라는 유시민대표의 요구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혹시 당원중에 정당활동이 금지된 공무원 신분의 당원이 포함돼 있기때문이 아닐까. 다른 정당이 중앙선관위 위탁선거과에 일임하는 것과 달리 자체관리해온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렇든 아니든 간에 이런 판단을 할수 있다. 선거관리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인데 이들은 훈련받지 않은 아마추어였다. 부실 선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들에는 불법 요인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어 거론하기조차 조심스럽다. 반박논리를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다. 당구에 비교하면 큐걸이가 너무 나쁘다. 이정희대표는 이런 난처함을 노무현의 상황과 비교해서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야유뿐이었다.

송두율교수는 언젠가 자신의 역할은 북한의 언어를 서방의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박한 사투리를 세련된 표준어로 바꿔서 말하는 일이란 것이다. 진보당 당권파의 입장을 설명해주는 “언어”가 필요하다. 이글에서 그런 언어를 찾아보려 했다.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정치의 주체를 구분하면서 극우 온건우익 온건좌익 극좌라는 네가지 축을 설정했다. 이들중 극우와 극좌등 극단주의자들은 권위주의적이며 민주주의의 규칙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리에게는 조갑제나 어버이연합등 한국의 극우파들이 보이는 행태를 통해서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파는 본능적 직정적이어서 이런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이론이 강한 극좌파는 상대적으로 이성적이어서 이런 특성이 감춰져 있을 뿐이다.

보비오 이론으로 설명하려면 당권파를 극좌파로 규정해야 하는데 이것도 난처한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유권자 정서에 비춰보면 극좌파로 규정되면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을 것같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뿌리를 찾아보면 80년대 극우정권에 맞서 극좌에 자리를 잡은 것은 사실이다. 그뒤에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우경화를 거듭해서 지금 극좌와 중도좌의 사이에 서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당원들이 모두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초심을 간직한 사람들이 당내에서 힘이 세다. 이 연장선에서 말해보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쉽게 말하면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으로 독재를 하겠다는 말이다. 모순어법으로 말하자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나쁜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목표의 정당성이 수단을 정당화해준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훼손이 이뤄진다.

오사카 경법대 양관수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세상은 투명하고, 정직하고, 상식적 수준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비합법적 지하투쟁을 하던 수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다. 과거에 통용되었던 음습한 공작수법은 단절해야 한다.”

과거 러시아혁명 시기에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은행강도를 해서 자금을 징수했다거나 일본좌파는 비행기 납치도 거행했다. 당권파 주요 인사들의 기억에 이와 같은 사실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양교수의 발언은 이런 기억조차 지워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당권파의 강경한 버티기를 엔엘의 특성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오랜 동안 엔엘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몸으로 체화된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피디는 어떤 국면에서 될 일이 있고 안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될 일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간다. 이에 반해 주체사상파인 엔엘은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판단하면 타협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밀어붙인다.

당권파가 병법의 기본인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세고취화(勢高取和)와 같은 유연한 전술을 구사 못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이념적 구분에 따른 규정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당권파 이해를 위한 참고자료로 보면 될 것같다.

당권파의 이런 여러 가지 특성은 당내에서 패권주의로 나타났고 이것을 몸으로 겪어온 사람들은 피디쪽이다. 그들은 이번과 같은 일을 겪을 때마다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봉합해왔다. 그런데 새로이 한 솥밥을 먹게 된 식구들이 문제였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너무나 놀랍고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진보당내 민노계와 국참계의 동상이몽>

이번 파동은 국회의석을 한석도 얻지못한 국민참여당계의 반격으로 시작됐다. 부산지역의 국민참여당계 지역위원장의 문제 제기가 도화선이 됐다. 이정희 대표는 비례대표 여성순위 1번과 2번의 결정과정에서 그리고 남성순위 2번과 3번이 바뀌는 결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 두 경우 모두 국민참여당계 후보가 뒤로 밀렸다.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있었던 참여당계 당원들에게 당내 질서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몇몇 당원들이 작심하고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은 진보신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여당을 끌어들여 당세를 넓히려고 했다. 이들에게 국민참여당은 정치적인 이용대상이었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 얻은 13석중 대부분을 당권파가 차지했다. 국민참여당의 진보통합에 반대해온 당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독자노선으로 나갔어도 2010년 지방선거 당시의 당지지율 5%대를 유지했다면 비례의석 2-3석을 얻었을 것이다. 이 주장이 근거가 있다면 민노계와 마찬가지로 국민참여계도 욕심이 문제라고 할수 있다.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 진보통합에 나섰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당권파는 리버럴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당원 개인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 당의 정당한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국민참여당 시기에 이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결국 엉뚱한 데서 일이 터질 개연성이 있었다.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있는 두그룹은 지금 분당이라는 파탄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자가 대의가 아닌 실리를 위해 결합되었으므로 실리를 못챙긴 쪽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참여계 수장인 유시민대표의 입장에서는 분당이 부담스럽다. 당내외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통합했는데 불과 여섯달만에 참담한 실패로 종결이 되면 정치적 책임이 너무 무겁다.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킨다는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사태가 파탄으로 끝나서 분당이 된다해도 해산된 진보신당의 당원들이 유시민과 손을 잡을 것같지도 않다. 진보신당이 끝까지 통합진보당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레프트와 리버럴이 함께 하면 안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지붕 세가족인 엔엘 피디 리버럴등이 모두 작은 집을 한 채씩 장만해서 제 식구들끼리 오손도손 살면 어떨까. 그리고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모여서 연대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풍파가 일어날 일이 없을 것같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진보진영에서는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지금 진보통합당이 깨지면 우리사회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기때문이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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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자 안철수

진보보수이야기 2015. 11. 13. 10:12 Posted by 세계로김

 2012년 04월 17일 (화)  김제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3895394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가장 큰 약점은 국민 애송시가 적다는 점이다. 김소월의 시가 쉽고 편하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오는 것과 비교된다. 고은의 초기 시는 특히 관념적 사변적이어서 읽기 어렵다. 그의 시중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시귀를 꼽는다면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이다.

아름다운 첫사랑 그러나 대부분 깨지고 마는 가슴아픈 사랑의 과정이 이 한마디에 담겨있다. 그 핵심은 미지의 상대에 대한 환상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열망과 희망을 일방적으로 투사해서 실물대 이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좋아하는... 그러다가 실체를 접하고 나서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실망한다. 누구나 젊은 시절 이런 슬프고 서투른 사랑 한번 해보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국민적으로 이런 연애를 하고 있다. 그 상대는 안철수교수이다. 그가 국가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국가적 의제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지 검증이 되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인물이라는 참신성이 기대감을 잔뜩 높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관념적 이상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모두 집적해서 안철수에게 투사하고 있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더니 그가 오랜 동안의 구애를 받아들여서 마침내 만남을 허락할 것같다. 어제 기사를 보면 안교수가 6월경이면 등판할 것이라고 한다. 그가 대선에 나선다면 검증과정에서 환상의 베일이 무참히 벗겨질 것이다. 그리고 사회과학적인 지식도 이해도 경험도 없는 그리고 관념적이며 무능한 그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안교수의 최근 발언이 이런 짐작이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진보 보수 이념이 아니라 상식 비상식이 중요하다. 진영논리에 기대지 않겠다. 정당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찍으라. 그의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이 그에 열광하고 지지하는지 짐작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왜 그렇게 싸우냐 좀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정치인들이 싸우는 걸 보면 애들 보기 창피하다. 젊잖은 사람도 국회에만 들어가면 왜 사람이 망가지나. 이건 정말이지 정치가 무언지 모르는 말씀이다.

정치가 사회갈등을 수렴해서 대신 싸워주지 않으면 이해당사자들이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야 한다. 사회비용이 훨신 비싸게 먹힌다. 사회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불가피하다. 그리고 아무리 다양한 갈등이라도 그 내용을 분류해보면 대부분 진보 보수로 나눠진다. 그래서 문명국의 정치는 예외없이 좌우로 나뉘어 대립한다.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여서 반세기이상 싸우는 이스라엘같이 특수한 조건에 있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내부에는 시오니즘정당과 사회주의정당으로 좌우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지 않은가.

안교수는 늘 새로운 것을 탐식하는 대중들의 허위의식에 영합해서 나타났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것은 늘 서투른 것으로 결과되기 마련이다. 백마타고 멋지게 나타나는 왕자님은 결혼앞둔 처녀에게 뿐 아니라 정치판에서도 찾기 어렵다. 김병준교수는 메시아는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안철수현상은 비극으로 끝날 것같다. 국민들도 허탈해지고 안철수 자신도 망가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데자뷰가 있지 않았나. 기업경영 잘 하던 유한킴벌리 문국현사장을 끌어내어서 뭔가 대단한 게 있는 양 포장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이번에는 안철수인가. 선거때마다 이런 인물들을 필요로 하는 한국정치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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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05일 (목)  김제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3752639

한나라당과 여권 전체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지난 수년동안 이어져 온 보수 진보 논란이 엉뚱한 곳에서 빅뱅이 이뤄진 것같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랄 수 있는 정강에서 보수를 빼자는 발언때문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정강정책·총선공약 분과위원장인 김종인위원이 4일 언론 인터뷰에서 “보수냐 중도냐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강정책도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나는 보수다’라고 찍고 가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2006년 개정된 한나라당 정강정책에는 ‘새로운 한나라당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 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의 발언에 전여옥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 하시지”라고 비판했다. 홍준표의원등 한나라당 의원뿐 아니라 자유총연맹등도 반대 성명서를 냈다.

김위원의 발언이 과연 한나라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 색깔 지우기인지 단지 보수라는 단어를 지우자는 것인지가 쟁점인 것같다. 전여옥 의원과 자유총연맹등이 반발하는 것은 보수라는 가치를 지우자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정책쇄신분과위원회 전체회의에선 "보수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위원도 `보수`라는 얘기를 하면 젊은층에서는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한나라당의 가치, 보수의 가치를 내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라는 단어를 던져버라자는 뜻으로 읽는다. 김위원이 어떻게 당의 강령 첫줄에 들어있는 가치를 부정할수 있겠나. 다만 당개혁에 불안을 느낀 친이계가 이 기회에 일떠선 것으로 보인다.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거론이 돼온 문제였다.
 
보수 용어의 문제는 보수진영에서 뿌리가 깊은 논란거리였다. 지난 2005년 조갑제대표가 "보수가 진보다"라고 말한 이후 2009년 박효종교수의 정명논란으로 이어졌다. 박교수는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진보 보수 대신 좌파 우파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2011년 양동안교수는 우파가 자신을 보수라 여기고 자신이 반대하는 쪽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정신착란이라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에서 보수로 변절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은 여전히 진보라고 말했다. 이 시대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만드는 것이 진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멍애를 지고 있나. 이걸 설명해보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영국의 귀족 지주 계급이 전통적 가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보수할 것이 없는 제3세계에서는 보수는 말자체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보존해야할 가치들을 잃어버린 나라도 마찬가지다. 조국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박정희도 보수주의자일 수가 없다.

김종인위원의 말처럼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 규정한 정당도 별로 없으며 이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몇나라밖에 없다. 보수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며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도 사용된다. 한국외의 세나라에서는 보수할 전통적인 가치가 남아있어 보수의 근거가 있지만 한국에선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당연히 우파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파 대신 보수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언어 관습상의 문제이다. 우파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좌파에도 설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6.25전쟁이후 우리사회에서 좌파는 절멸됐으며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말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좌파를 사용할수 없다보니 우파만 사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됐다. 그래도 명명의 대상인 실체가 있으니 대체품을 찾아야 했다. 이때 눈에 뜨인 것이 보수가 아니었을까. 보수는 진보라는 짝과 어울려 우파 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름대로 절실한 필요에 의해 태어났지만 그 과정에 사회과학적 검증이 빠져있었다. 보수는 우파의 여러 사조중 하나일뿐인데 이것이 대표선수로 등록이 되어버리니 혼란은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는 우파의 큰 흐름인데 보수주의라는 작은 그릇에는 담기지 않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도 이 문제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수가 보수라는 단어를 안 쓰게 되면 진보도 진보를 사용하는데 불편해질 것이므로 진보진영도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의 특산품인 진보-보수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도 따져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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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실패가 주는 역설적 교훈... 진보시대에는 진보정권이 들어서야
2012년 02월 14일 (화)  세계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7158

보수의 시대가 있고 진보의 시대가 있다. 보수의 시대는 국민 다수가 보수를 원하는 시대이고 진보의 시대는 국민 다수가 진보를 원하는 시대다. 대개는 보수의 시대에는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진보의 시대에는 진보정권이 들어선다. 진보정권이 힘을 다하고 한계를 드러내면 보수의 시대가 오고 보수정권이 들어선다.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나사못처럼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뒤틀며 앞으로 진전한다. 나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 이같은 역사 발전의 순환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노무현이 집권하기 직전 프랑스에서는 조스펭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내각이 집권했다. 프랑스 국민은 좌파대통령 미테랑의 14년 집권에 지쳐 오른쪽으로 선회할 것을 절실히 원했다. 그 결과 미테랑의 임기가 끝날 즈음인 1993년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사회당은 참패했다.

힘있게 집권한 우파정권은 그러나 집권 후 국민들에게 점수를 크게 잃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던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3% 이내로 맞춰야 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했다. 이전의 좌파정부는 세금을 많이 걷고 많이 베풀었으나 우파정권은 세금을 많이 걷고 베풀어주지 않았다. 민심이 돌아서자 시라크는 1997년 의회해산 조기 총선거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때의 선거에서 우파가 패해 리오넬 조스팽이 이끄는 좌파내각이 들어섰다. 대통령은 우파가 내각은 좌파가 담당한 이른바 동거정부였다.

이때부터 프랑스 정치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됐다. 우파정부가 요구되는 우파의 시대에 좌파내각이 들어선 것이다. 사회당 내각은 상당부분 우파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경제가 좋아져서 실업율이 한자리 수로 내려갔다. 조스펭의 인기도 한동안 고공행진했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조스펭에게 국민들은 궤멸적인 패배를 안겨줬다. 1차선거에서 극우파에게 밀려 3등을 한 것이다. 다음날 조스펭은 정계은퇴하고 낙향했다. 좌파가 좌파답지 못하고 우파정책을 쓴 것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2002년 조스팽이 패했던 해에 노무현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지금 와서 보면 참여정부도 조스팽 내각과 같은 운명의 도정에 놓여있었다. 노무현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참여정부는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다며 괴로워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외환경이 좋았으며 이에 발맞춰 경제발전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기치를 들고 집권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과가 있었으나 보수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아파트원가 공개 거부,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등 보수정책을 사용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고 보수를 기웃거렸다. 결국 조스팽에 이어서 노무현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다. 필자가 아는 조스팽은 노무현과 같은 연배로 정직하고 고지식한 성정도 비슷했다.

이제 한국사회는 또다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국민들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부터 뚜렷하게 의사를 보여주고 있다. 전면적 무상급식과 단계적 무상급식이 맞부딪친 몇 차례 선거에서 번번히 무상급식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무상급식은 유럽에서도 북유럽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려운 급진적인 정책이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뚜렷한 의사표현에 지난 2년 동안 치러진 선거마다 패배했다. 광역선거에서 대부분의 시도지사 자리를 내줬으며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개를 빼앗겼다. 이전선거에서는 25개 모두 석권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민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보수정권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당강령에서 보수를 삭제하려고 했으나 전통 보수진영의 반발로 인해 논의가 중단됐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 54%가 보수삭제에 찬성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까지 바꿨다.


국민들이 집권세력에 느끼는 실망감은 이런 것이다. 수출이 잘 되고 경제상장이 되면 아랫목의 온기가 곧 윗목까지 전해올 것이라고 믿었다. 낙수효과니 떡고물이니 하는 말을 믿었지만 그게 허당이란 것을 알게 됐다. 양극화는 더 심해져 재벌과 대기업은 곳간에는 외화가 그득한데도 서민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덕분에 국민들 다수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성장보다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국제 환경을 봐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최근 한 신문의 기사에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라는 제목이 붙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진보시대의 도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박근혜는 오래전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보시대의 보수대통령이 될 것이다. 노무현이 능동적으로 보수정책을 썼듯이 박근혜는 진보정책을 써야 한다. 그는 벌써부터 당강령을 새로 만들면서 진보적인 색채로 물들이고 있다. 요즘 언론은 '새누리당 좌클릭'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자크 들로르 이야기를 붙여본다. 다시 지난 1990년대 중반 프랑스의 상황이다. 들로르는 당시 유럽대통령 격인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쳐 국민적인 신망이 높았다. 사회당은 인기가 없었지만 사회당 출신 들로르는 여론조사에서 우파의 시라크보다 늘 앞섰다. 이때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들로르는 충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우파의 시대에 좌파 대통령이 되면 순조로운 역사의 순항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나는 정치인에게 정권 획득은 숙명이고 무조건 선이다라는 세간의 말이 옳지 않음을 알게 됐다.

보수가 좌클릭 쇄신하고 강령 바꾼다고 진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진보시대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순조로운 역사 발전과 국운의 순항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조스팽과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권은 정치세력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국민들은 엄청 피곤해진다.

덧붙이는 글 | 참여정부가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무현은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그 이유를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사례가 프랑스의 조스팽정부에서도 나타났는데 그것을 타산지적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맞는 진보의 시대입니다. 이때 또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노무현 정부처럼 시대와 정권이 서로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혼돈을 국민이 겪어야 합니다.

김제완 기자 oniv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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