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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참정권 기사

[2007참정권운동] 4.참정권과 이중국적의 뿌리는 정체성과 현지화

4. 참정권과 이중국적의 뿌리는 정체성과 현지화 
 

 2007년 12월 29일 (토)  세계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법치주의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권위와 강제력을 갖는다. 현행법 아래에서는 헌재의 결정을 불복할 방법은 매우 제한돼 있다.

헌재는 지난 6월 위헌결정을 통해 여러 논란을 종식시키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서 반대하고 회의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이 목소리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작용해서 법안통과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재외국민 참정권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인회장은 미국정부가 뽑는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로 선거결과에 불복해 미국법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터에 본국 선거권을 주면 동포사회가 더욱 소란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떠나온 나라를 쳐다보느라 발 딛고 사는 나라 현지화에 방해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동포사회에 필요한 것은 참정권이 아니라 이중국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란 속에 동포사회를 이해할 중요한 코드가 숨어 있다. 필자는 그것을 끄집어내어 공론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재외동포들 각 개인에게 내밀하게 작용하며 동포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그것은 ‘정체성’과 ‘현지화’이다. 이 글에서 참정권과 이중국적의 충돌을 정체성과 현지화라는 담론을 이용해 설명해보려 한다. 충돌의 내용은 이중국적이 참정권보다 우선한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론이다.

외교통상부의 재외동포정책담당자는 지난 11월 외교부 주최 세미나에서 이중국적과 참정권은 함께 추진해야 하는 것이며 서로 분리해서 사고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 역시 이중국적이 참정권보다 앞선다는 주장의 변용이거나 외교적으로 분칠해서 또는 수사적으로 위장해서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재외국민 참정권이 이중국적을 포함한 다른 동포정책들을 해결할 지렛대로 사용될 수 있다.

이중국적과 참정권이 각각 독립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은 재외동포 숫자로 설명할 수도 있다. 700만 재외동포 중 400만 명은 현지국적자이어서 존재론적으로 이중국적과 관련이 있다. 나머지 300만 명은 한국국적의 재외국민인데 이들에게는 국내 참정권이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지난 95년 김영삼대통령이 빠리를 방문했다. 당시 열렸던 동포간담회에서 그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 주재국에서 존경받는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지화에도 성공하라는 당부였다.

그 당시 동포신문 기자로서 이 소식을 전했던 필자는 오랫동안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가치가 동시에 구현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적어도 1만여 명 인구의 프랑스 동포사회에서는 김대통령의 요구를 실현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두 가지 요구 중 뒤의 것에 무게가 실려 있는 핵심이고 앞의 것은 치장용 멘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다. 현지화정책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외교부 동포정책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현지화와 정체성의 문제는 상시적으로 동포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 이중국적과 참정권이라는 외피를 쓰고 우리에게 등장했다. 현지화에서 이중국적이, 정체성에서 참정권이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지화의 끝에 거주국의 시민권에 도달하는데 이때 한국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이들에게는 이중국적이 절실한 과제로 떠오른다.

정체성이라는 용어는 국내 거주자에게는 별로 사용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정체성 문제를 생활 속에서 겪을 기회도 거의 없을 것이다. 단지 영어공부하면서 텍스트에 종종 등장하는 'identification'이라는 외래어를 통해서 인식할 뿐이다.

반면에 복수의 문화권에 놓여있는 이민자들에게 이 말은 존재 문제의 근원이 되는 말이다. 여기에 혼돈이 오면 존재가 균형을 잃어 정신적 육체적 일탈에 빠질 수 있다. 한 인간 존재 내에서 두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고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계속되면 존재에 균열이 오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한인이민사회에서 태어난 ‘어글리 코리안’이란 말의 원천과 근거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출신 이민자에게 정체성의 내용에는 그가 성장기를 보낸 지역에서 겪은 정서와 문화 등 여러 경험을 담고 있다. 이 정체성을 압축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재외국민 참정권을 꼽을 수 있다. 그러므로 본국 투표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정체성을 확인하고 강화시키는 상징적인 행위가 된다. 현지화 논리에 의해 묵살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