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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이야기

좌파 우파의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좌파 우파의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진보 보수 특집 백분토론을 보고
 

 2009년 05월 24일 (일)  김제완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흔히 선인과 악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선의나 악의만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다 있으며 어느 쪽이 더 많은가가 문제될 뿐이다. 좌우도 선악과 비교된다. 좌파는 좌파적인 것을 우파적인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사회에서 좌파는 좌파적인 것으로 일색화된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파의 경우도 같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가 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여러차원의 평가가 나오겠지만 노무현이 좌파냐 우파냐는 논쟁은 그 중심에 있다. 인간 노무현은 좌우를 6대4의 비율로 가지고 있으나 참여정부는 그보다 우가 좀더 많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이라크 파병처럼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선택이 다른 경우도 있으니. 그러나 비율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이글은 그 비율을 따지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우보다 좌가 많으면 좌파고 좌보다 우가 많으면 우파라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 차원의 논의로 넘어갈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같은 개념상 합의 미비로 모든 논란은 기초적인 혼돈의 덫에 걸려있다.

현재 노무현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오고 있는가를 보면 그 혼돈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수진영은 좌파정책 여섯가지만 보고 좌파라 주장한다. 이것은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규정의 근거가 된다. 진보진영은 우파정책 네가지만 보고 우파라 하면서 지지자들을 배반했다고 주장한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판단해버린다.

최근 방영된 문화방송의 백분토론에서도 이같은 혼선이 잘 드러났다. “보수 진보,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주제로 한 3부작 특집이었다. 토론자들중 한쪽은 사회양극화, 한미 FTA, 시장권력론, 아파트 원가공개 거부등을 들면서 이런 정권이 어떻게 좌파인가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변함없이 좌파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퍼주기,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 종합부동산세, 교육 3불정책, 좌경교과서등을 들어왔다.

두가지 상반된 주장이 동시에 옳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일반 시청자들은 어지럽다. 지지하는 쪽이 있는 시청자라면 같은 쪽의 토론자만 옳고 다른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토론자들이 각각의 당파성에 따라 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보수진영이 공격하는 좌파정책을 진보진영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반대의 경우는 찾기 어렵다. 사물의 반쪽만 보는 외눈박이들같다. 그래서 ‘황당개그’는 이어진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이념갈등이 심해진 이유를 한나라당과 우파가 “좌파척결”을 위해 이념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보수측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10년간 좌파가 집권했는데 어떻게 좌파를 척결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한다. 우파가 혁명이라도 기도했다는 것인가라는 뜻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좌파 우파가 비하적인 말이 아니다. 좌파정권이 두 번이나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하지 않았나.” 이제 당당하게 좌파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지난 10년 집권한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다 ‘짝퉁좌파’다”라고 대꾸한다.

진보쪽 토론자로 나온 박석운 손석춘 홍종학등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난 10년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파탄이지 진보의 실패가 아니라거나 진보가 집권해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진보의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기회가 오면 실력발휘하겠다고 벼르는 진보정책이 이미 참여정부에서 상당부분 실현됐다는 사실을 이들은 애써 외면한다. 무엇이 진보정책인가는 이미 잘 드러나있다. 보수가 좌파라고 비판하는 정책들이 그것 아닌가. 진보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들이 이미 실현된 진보정책에도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당대의 고수들이 모인 토론에서 창과 방패가 엇나간다. 한판 진검 승부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헛방이나 날리는 정면을 지켜봐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의 속성이 복잡한데 이처럼 엇박자를 내며 혼돈을 가중시키니 시청자들은 무관심이나 냉소에 빠지는게 당연하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이 토론이 담고 있는 풍부한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론이 보도한 것은 에피소드 하나였다. 사회자 손석희가 좌파냐 아니냐는 엉뚱한 것이다. 좌파 우파 개념규정에 대한 합의없는 토론에서는 앞으로도 이같은 일이 계속될 것이다. (10.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