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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이야기

한국의 극우파에는 왜 민족이 없나

한국의 극우파에는 왜 민족이 없나 
좌와 우가 바로서야 선진국 진입가능하다
 

 2009년 05월 26일 (화)  김제완  
 
 
영국의 한 동포가 몇해전에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일하고 나서 사회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행사 사장인 그는 탐욕스럽게 운영해서 돈도 좀 벌었다. 그런데 왜 이런 생뚱맞은 말을 한 것일까. 그는 대학생인 아들이 둘 있었는데 외국인 며느리를 보는 것을 두렵다고 했다. 영국동포사회에서 한국인 출신 짝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국내와 여러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동포자제들 짝짓기 운동을 구상했다. 그가 실제로 행동에 옮겼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같은 절실함은 몇해전에 외교부 산하기관인 재외동포재단의 사업으로 실현됐었다.

이처럼 한민족은 단일민족 혈통을 지키려는 국수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수만명으로 늘어났다. 며느리를 맞는 시부모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다수 국민들도 영국동포의 마음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외국인 어머니 슬하에 있는 2세들이 겪고 있는 모국어에 대한 혼란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럽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위의 영국동포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재외동포관련 활동을 해온 필자에게는 원인이 무엇인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한국처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왜 이같이 민족 정체성의 훼손을 방관하는 일이 일어나는가.

외국인 며느리는 혼기를 넘긴 농촌총각 문제를 해결하는 불가피한 존재들로 인정하는 것일까. 외국인 노동자는 일정기간 일하고 돌아가는 계절이민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외국인 며느리는 영주거주할뿐 아니라 2세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없다.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지난 2008년 연간 결혼자중 14%가 외국인과 결혼했다. 이 수치에는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 3%도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남성의 국제결혼이 11%이고 동남아 여성과 결혼하는 농촌총각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농촌의 외국인 며느리가 40%이며 숫자는 지난해의 경우 1만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한국여성은 짝을 못찾고 독신으로 남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최근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거주 여성의 경우 36%가 "결혼은 안해도 그만"이라고 조사에서 답했다고 한다.

한국여성들이 자국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잘 알려진 대로 육아의 어려움이다. 농촌총각의 문제는 여성의 이농때문이다. 낮은 생산성을 문제삼아 탈농을 방관한 정부가 문제다. 그렇다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사회운동이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독신으로 남지 말고 자국총각을 선택하라는 의식계몽운동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사회운동뿐 아니라 국회에서 거론되는 장면을 보기도 어렵다.

고작 농업의 생산성을 이유로 농촌을 소외시키고 농촌총각을 양산시켜서 얼마나 국가경제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 그 댓가로 한민족의 혈통이 흐려지는데도 남는 장사라고 보는 것일까.

오히려 외국인 며느리들을 우리 문화속으로 동화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다문화운동이 정부지원을 받아서 활발해지고 있다. 참 너그러운 국민들이다. 국제결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관대해졌다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도 보이지만 믿기 어렵다. 이들과의 동거가 불가피한 마당에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자는 취지로 작성된 기사들로 보인다. 타민족 출신도 한민족에 편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열린민족주의가 학자들사이에서 제기됐지만 다수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을까. 

이런 때에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장 마리 르펜이라면 어떠했을까? 국민전선이 선거때마다 내세우는 단골 구호는 "프랑스인 먼저!” 즉 프랑스인우선주의이다. 그 배경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깔려있다. 프랑스에 이민노동자가 4백만인데 실업자도 4백만이어서 극우파들은 외국노동자들을 다 내보내면 실업율이 0%가 될 것이라고 선동해 표를 모은다. 르펜이 한국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좌시하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을 것이다. 게르만민족 순혈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는 독일의 네오나찌들도 혈통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저하지않고 일떠섰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극우파들은 무얼 하고 있나. 요즘 사회적인 발언권이 한껏 높아진 조갑제 지만원 이도형등은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하는 북한정권이나 지난 10년의 이른바 ‘좌파정부’를 비판하는 일에는 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를 들고나오는 모습을 볼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 현대사의 비밀이 있다.

극우의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경우를 살펴보자. 국민전선의 기본이념은 반공, 민족주의, 반이민정책, 강력한 국가, 전통적 가치 보호등이다. 우리나라는 이중에 반공과 강력한 국가만이 보인다.

한국의 우파에게는 왜 민족이 없나 하는 것은 미국에는 왜 좌파가 없나 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회를 특징짓는 의문이다. 한국의 전통보수로 불리는 극우파 또는 우파들은 원죄가 있다. 그들은 과거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을 했다. 친일은 다시 친미로 사대주의로 나아갔다. 그들은 이런 업보때문에 민족주의를 당당하게 펼치지 못한다. 한국 극우파의 특성중 또하나는 과거 권력에 깊이 참여해왔다는 점이다. 이같은 점도 국가주의적 특성 즉 반공이 강화되고 민족주의가 약화시킨 원인으로 보인다.

반대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점유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면서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겠다. 좌파가 우파의 덕목으로 알려진 민족주의를 선점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특징이다.

공산정권인 북한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민족분단 상황이 낳은 통일문제도 진보진영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유교적 전통등 우파의 특성들을 갖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 북한은 서구의 전통좌파의 눈에 보면 고개를 갸웃가리게 하는 ‘이단’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나 친북좌파로 알려진 송두율교수가 최근에 펴낸 책의 제목이 “만족은 영원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다시 숙제로 돌아가자. 민족주의가 우파가 아닌 좌파의 것이 되었다는 것은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열쇠이다. 좌파의 소유가 된 민족주의는 주로 통일문제에 적용될 뿐, 서구에서처럼 민족주의가 인종차별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좌파의 덕목인 평등주의가 쐐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며느리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할 민족주의자를 우파에서도 좌파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비로소 이해가 되지 않는가. 결과적으로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 원인을 보면 결코 안심할수 없다. 우리 사회 이념지형의 예외적인 특별성은 우리 의식도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하드웨어는 상당히 갖춰졌지만 지금 문제는 소프트웨어이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균형은 소프트웨어의 핵심이다. 이념의 왜곡은 정신균형을 크게 해치고 있다. 이념이 민족을 남북으로 분단시켰는데 뒤틀린 이념지형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 왜곡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글은 결코 외국인차별을 조장하거나 획책하는 목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외국인 며느리 문제를 통해서 왜곡된 이념과 왜곡된 민족주의 문제를 인식하자는 취지이다. (17.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