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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이야기

좌파 우파, 진보 보수라는 덫

2009년 04월 30일 (목)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2483.html

좌파 우파 진보 보수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우리나라 지식계의 ‘덫’이다. 여기에 걸려들면 논의의 실타래가 쉽게 엉켜버린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가 이달 초 정명(正名) 토론회에서 “한국 좌파, 과연 진보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관심 대상이 됐다. 박 교수의 주장은 단순명쾌하지만 그 배경은 복잡하다. 무엇보다 좌파 진보 등의 개념 정의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또는 오바마가 좌파인가 우파인가”라는 기초적인 논란조차 분명하게 종결시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논란에 참여한 어떤 평자는 좌파 우파로 이 세계를 구분하는 데에 회의를 표하며 논의의 전제를 부정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의 저서 <좌파와 우파>가 이 분야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안내를 따라가 보면 “좌우라는 메타포는 인류의 지성이 발명해낸 지구의 특산물”이라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프랑스 혁명 중에 탄생한 좌우는 지난 두 세기 이상 인류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구실을 해 왔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좌우는 나누고 구분하고 판단하는 속성 때문에 복잡다기한 사회현상들을 재는 유용한 잣대의 기능을 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민족 분단의 원인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늘 사회 분란을 야기하는 골칫거리다.

언뜻 보기에 좌파와 우파는 단지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고, 진보 보수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좌우는 고정적인 개념인 데 반해 진보 보수는 상대적이다. 좌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들의 사상이나 현재 프랑스 좌파의 이념이 크게 다르지 않다. 좌는 현실과 물질 정의 등을, 우는 이상과 영혼 자유 등을 중시한다.

이에 반해 진보 보수는 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진보는 기득권 세력과 지배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그로부터 자유로우려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진보라는 그릇에는 좌뿐 아니라 우도 담길 수 있다. 현재 남미의 진보는 좌파이고 러시아의 진보는 우파이다. ‘개혁’도 진보와 유사한 위상에 놓여 있다. 진보는 박 교수의 지적처럼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여기까지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진보는 좌와 우 중 어느 쪽의 것인가. 쉬운 예를 들어보자. 만약 지난 10년 집권한 이른바 ‘좌파 정권’이 10년 더 지속돼 좌파가 지배이념으로 공고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비로소 좌파는 보수가 되고 우파가 진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 한국 좌파는 진보가 아니라는 성급한 주장이 나온 것일까. 정치 권력의 교체에 이어서 시민사회 권력도 교체하겠다는 우파의 도발일까. 박효종 교수와 우파들이 진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뺏어와야겠다면 무모한 욕심이다. 진보란 긍정적인 뜻을 담은 수식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정의에 따라 규정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좌우 대립이 지나치게 격렬하고 분열적인 한국 사회에서 박 교수같이 합리적 우파로 알려진 사람들이 할일이 적지 않다. 진보가 아니라 좌파가 옳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말도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좌파라고 고백하는 것이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말이다. 그랬을 때 박 교수 주장에 진정성이 얻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에게 존경받는 우파, 우파에게 존경받는 좌파가 얼마나 될까.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좌우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