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완 ('포럼 진영을 넘어' 연구위원)

1. 정치대립의 진단과 처방

선진국의 정치는 좌우의 대립으로 움직인다. 수십년간 전란중인 이스라엘도 국내정치는 좌파 노동당과 우파 민족주의당이 대립하고 있다. 정치세력간의 좌우 대립구도는 정상적인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친” 대립과 갈등이다. 이 지나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임성호와 채진원은 국민은 중도수렴하고 있는데 정치권의 이념양극화가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진단에 대한 처방으로 채진원은 ‘중도정치’를 제안한다. 그는 논문과 언론기고를 통해 중도정치의 가치를 활발하게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의 개념은 학계에서 정립돼 있지 않다. 두분은 자신들의 의견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다음과 같이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민주국가가 겪고 있는 양극적 갈등 격화와 거버넌스 저하가 일반유권자 사이의 사회적 양극화 때문인지 정치엘리트들의 정치적 양극화 때문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관련해서 치열한 학문적 논쟁이 진행되어왔지만 어느 한쪽으로 귀착되고 있지 않다(Fiorina 2005, Abramowitz 2012). 현실에선 아마 양자가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후자에 초점을 맞췄다.” (임성호 2016)

채진원은 “중도가 어떤 개념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채진원 2016a, 89)라고 말한다. 필자는 두분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몇가지 쟁점과 함께 대안도 제시한다.

2. 진단을 둘러싼 쟁점 :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도 이념 양극화

"국민은 중도수렴, 정치권은 이념 양극화"의 관점은 한국 정치보다 미국 정치를 분석할 때에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에 등장한 민주당 버니 샌더스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권의 이념적 양극화현상을 잘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는 미국과 달리 정치권뿐아니라 국민도 양극화되고 있다. 증명할 근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념 양극화는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산물이다. 구조화된 경제 양극화와 지속적인 저성장은 국민의 이념 분포를 양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국민의 양극화는 2002년 2012년의 대선에서 문재인과 노무현의 득표 결과와 박근혜와 이회창의 득표결과를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203040세대는 문재인 지지가 늘었으며 5060세대는 박근혜 지지가 늘었다. 연령대에 따른 진보 보수 이념 양극화 현상이다.

21세기 들어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중에 ‘강한 개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화된 주체는 좌우 양쪽의 구성원들을 배타적으로 만들어 대립을 격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채진원은 윤성이(2006)의 분석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의 이념갈등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부풀려져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더보수'와 '덜보수'가 대립하는 구도인 한국정치 상황이 만들어낸 착시현상이다. 여야가 모두 보수여서 그 차이를 지표로 표기하면 크기가 커보이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는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는 “숨은 표”와 같은 것이 있다. 박완서의 소설 “부처님 근처”(2012)는 우리사회에서 이념갈등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잘 보여준다. 동족간에 이념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특유한 현상들이 남아있다.

3. 처방과 관련한 쟁점 : 중도 개념 정의를 둘러싼 혼선

채진원은 중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치적 의미의 중도와 중도정치는 불교의 중도(中道), 유교의 중용(中庸)과 유사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중(中)은 가운데라는 뜻이 아니고, '정확하다, 올바르다'라는 뜻으로 바를 정(正)자와 같은 의미다. 불교의 중도는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 중도란 지나침과 모자람의 양극단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판단력과 균형적 태도를 가지는 중용적 삶의 태도다.” (채진원 2016a, 33)

한마디로 말하면, 중도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올바르다. 언뜻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중도개념 정의가 여러 혼선을 일으킨다. 채진원은 EAI(동아시아연구원)의 데이터(2011.2)를 인용해 중도수렴을 입증하지만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선 보수(6-10점)로 평가한 비율이 44.0%로 가장 많았지만 중도 5점을 선택한 응답자도 36.2%에 육박했다. 한나라당 지지층중 진보(1-4점)를 선택한 비율은 19.7%에 그쳤다. ... 민주당 지지층에서 5점 중도를 선택한 비율은 41.7%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은 39.7%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스스로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은 18.6%에 불과했다.”(채진원 2016a, 113)

양당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중도 응답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중도주의자여서 중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중도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당연히 그 당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지지한다. 그들에게 옳은 것은 중도이다. 이런 심리적 기제가 중도를 과대 표현하게 만든다.

채진원뿐아니라 국민 다수가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가 봐도 진보 성향인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이사장은 몇해전 조합원들의 질문을 받고 그의 매체가 중도라고 대답한 바 있다. 불편부당을 지향하므로 중도라고 생각한 것같다.

채진원은 중도에 대한 개념규정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나타나는 혼란의 사례들을 찾아봤다. 민심은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형태로 움직인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진보 중도 보수가 평시에는 3:4:3, 선거나 특별한 사안 발생시에는 4:2:4의 형태를 보인다. 평시에 중도라고 대답했던 여론중에 절반정도가 선거를 앞두고 양쪽으로 분화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중도층의 절반은 중도가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

고정관념을 흔드는 구체적인 자료도 발견할 수 있다.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제2부는 중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러 실험과 취재를 통해 "중도파는 중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EBSTV 2012.10) 사회학자 송복은 논문에서 "보수와 진보가 있을 뿐 중도는 없다"고 말했다.(송복 2005).

4. 대안 제시 : 레이코프의 중도와 중도의 현장

“사형은 존재해야 하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을 오직 조금만 죽이거나 중간 정도만 죽일 수 없다. 낙태는 합법적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중도적으로 낙태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결코 중간적인 것은 없다. 자신을 ‘중도파’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중도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이슈 영역에서는 보수적이며 다른 이슈영역에서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주의자로 보인다.” (레이코프 2007, 39)

중도는 없지만 중도는 있다. 이런 아포리즘을 꺼내든 것은 중도가 우리의 통념과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버클리대 교수 조지 레이코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하나의 사안에 대해 중도적인 입장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다른 사안에는 보수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이 중도파라고 말한다. 그가 사용하는 용어인 “부분적 진보”는 보수주의자가 일부분 진보적 입장을, “부분적 보수”는 진보주의자가 일부분 보수적 입장을 갖는다는 데에서 나온 개념이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중도우파 중도좌파와 다를 것이 없다. 상대방의 장점을 차용하는 것이므로 상대 이념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가 전제된다. 이 지점에서 중도는 정치대립 완화에 기여한다. 필자의 대안은 이것이다.

중도를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것으로 규정하면 현실정치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워진다. 반면에 중도좌파 중도우파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여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정우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개원 심포지엄에서 노무현이 왜 한미FTA를 추진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실토했다.(2015.8)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그의 발언은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레이코프의 기준을 적용하면 노무현은 중도주의자였으며 그중에서도 “부분적 보수” 즉 중도좌파였다. 이정우가 중도에 대한 인식을 가졌다면그처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승민과 이종걸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원내대표를 했다. 이때 여야 합의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승민은 친박과 대통령에 맞서서 경제민주화와 함께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진보적 주장을 했다. 이종걸은 친노패권에 맞서서 문재인 당대표 시기에 한달동안 당무거부하며 맞섰다.
이들은 각각 보수, 진보 정당에 소속됐지만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려했고,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당내 강경파에 맞서야했고 그때문에 크고 작은 고초를 겪었다. 중도파가 숙명적으로 겪게되는 고난이다. 이 두명의 정치인도 중도정치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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