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1일 국회에서 "정치대립구도 완화를 위한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오후 1시40분부터 두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주최했지만 "진영을 넘어"의 회원들 다수가 참가했다. 이재교대표를 비롯해 채진원교수 조원용교수 김제완 연구위원등이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등으로 참여했다.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환영사로 시작됐습니다. 정의장은 이번 총선 결과 3당체제가 만들어져 다행이라며 앞으로 다당제로 가기 위해 중대선거구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진영을 넘어 회원인 이명우 국회의장 정무수석이 대동했습니다.

임성호 입법조사처장은 "정당내 정파문제 : 현상과 극복방향"의 제목으로, 채진원교수는 "남남갈등에서의 정치적 양극화와 중도정치"하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에는 조원용 한양대 교수, 김제완 포럼 진영을 넘어 연구위원, 이현출 건국대교수,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참여했다.

채진원교수는 발제에서 남남 갈등과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천안함 엔엘엘등 진보 보수 갈등사례를 들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역설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채교수는 갈등 대립의 원인 세가지설을 ㅈ[시했다. 첫째 위로부터의 편향성이 동원되고 있다는 제이콥슨의 시각 둘째 아래로부터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 세번째는 피오리나의 이론으로 사회전반의 양극화는 없으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효과라는 주장을 들었다.

토론에 나서 안병진 교수는 채교수와 입장이 다르다고 밝히며 유권자의 극단성이 문제라고 말했다. 극단성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면서 엘자형 경제전망을 배경으로 들었다. 이런 기반에서 참주선동가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완 연구위원은 중도 개념에 대해 학계에서 정립된 의견이 없다면서 채진원교수의 중용, 가운데를 의미하는 중도개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안으로 조지 레이코프의 부분적 보수, 부분적 진보 개념을 제시하며 이것은 유럽의 중도좌파 중도우파와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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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완 ('포럼 진영을 넘어' 연구위원)

1. 정치대립의 진단과 처방

선진국의 정치는 좌우의 대립으로 움직인다. 수십년간 전란중인 이스라엘도 국내정치는 좌파 노동당과 우파 민족주의당이 대립하고 있다. 정치세력간의 좌우 대립구도는 정상적인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친” 대립과 갈등이다. 이 지나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임성호와 채진원은 국민은 중도수렴하고 있는데 정치권의 이념양극화가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진단에 대한 처방으로 채진원은 ‘중도정치’를 제안한다. 그는 논문과 언론기고를 통해 중도정치의 가치를 활발하게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의 개념은 학계에서 정립돼 있지 않다. 두분은 자신들의 의견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다음과 같이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민주국가가 겪고 있는 양극적 갈등 격화와 거버넌스 저하가 일반유권자 사이의 사회적 양극화 때문인지 정치엘리트들의 정치적 양극화 때문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관련해서 치열한 학문적 논쟁이 진행되어왔지만 어느 한쪽으로 귀착되고 있지 않다(Fiorina 2005, Abramowitz 2012). 현실에선 아마 양자가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후자에 초점을 맞췄다.” (임성호 2016)

채진원은 “중도가 어떤 개념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채진원 2016a, 89)라고 말한다. 필자는 두분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몇가지 쟁점과 함께 대안도 제시한다.

2. 진단을 둘러싼 쟁점 :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도 이념 양극화

"국민은 중도수렴, 정치권은 이념 양극화"의 관점은 한국 정치보다 미국 정치를 분석할 때에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에 등장한 민주당 버니 샌더스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권의 이념적 양극화현상을 잘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는 미국과 달리 정치권뿐아니라 국민도 양극화되고 있다. 증명할 근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념 양극화는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산물이다. 구조화된 경제 양극화와 지속적인 저성장은 국민의 이념 분포를 양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국민의 양극화는 2002년 2012년의 대선에서 문재인과 노무현의 득표 결과와 박근혜와 이회창의 득표결과를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203040세대는 문재인 지지가 늘었으며 5060세대는 박근혜 지지가 늘었다. 연령대에 따른 진보 보수 이념 양극화 현상이다.

21세기 들어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중에 ‘강한 개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화된 주체는 좌우 양쪽의 구성원들을 배타적으로 만들어 대립을 격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채진원은 윤성이(2006)의 분석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의 이념갈등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부풀려져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더보수'와 '덜보수'가 대립하는 구도인 한국정치 상황이 만들어낸 착시현상이다. 여야가 모두 보수여서 그 차이를 지표로 표기하면 크기가 커보이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는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는 “숨은 표”와 같은 것이 있다. 박완서의 소설 “부처님 근처”(2012)는 우리사회에서 이념갈등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잘 보여준다. 동족간에 이념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특유한 현상들이 남아있다.

3. 처방과 관련한 쟁점 : 중도 개념 정의를 둘러싼 혼선

채진원은 중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치적 의미의 중도와 중도정치는 불교의 중도(中道), 유교의 중용(中庸)과 유사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중(中)은 가운데라는 뜻이 아니고, '정확하다, 올바르다'라는 뜻으로 바를 정(正)자와 같은 의미다. 불교의 중도는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 중도란 지나침과 모자람의 양극단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판단력과 균형적 태도를 가지는 중용적 삶의 태도다.” (채진원 2016a, 33)

한마디로 말하면, 중도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올바르다. 언뜻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중도개념 정의가 여러 혼선을 일으킨다. 채진원은 EAI(동아시아연구원)의 데이터(2011.2)를 인용해 중도수렴을 입증하지만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선 보수(6-10점)로 평가한 비율이 44.0%로 가장 많았지만 중도 5점을 선택한 응답자도 36.2%에 육박했다. 한나라당 지지층중 진보(1-4점)를 선택한 비율은 19.7%에 그쳤다. ... 민주당 지지층에서 5점 중도를 선택한 비율은 41.7%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은 39.7%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스스로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은 18.6%에 불과했다.”(채진원 2016a, 113)

양당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중도 응답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중도주의자여서 중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중도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당연히 그 당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지지한다. 그들에게 옳은 것은 중도이다. 이런 심리적 기제가 중도를 과대 표현하게 만든다.

채진원뿐아니라 국민 다수가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가 봐도 진보 성향인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이사장은 몇해전 조합원들의 질문을 받고 그의 매체가 중도라고 대답한 바 있다. 불편부당을 지향하므로 중도라고 생각한 것같다.

채진원은 중도에 대한 개념규정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나타나는 혼란의 사례들을 찾아봤다. 민심은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형태로 움직인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진보 중도 보수가 평시에는 3:4:3, 선거나 특별한 사안 발생시에는 4:2:4의 형태를 보인다. 평시에 중도라고 대답했던 여론중에 절반정도가 선거를 앞두고 양쪽으로 분화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중도층의 절반은 중도가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

고정관념을 흔드는 구체적인 자료도 발견할 수 있다.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제2부는 중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러 실험과 취재를 통해 "중도파는 중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EBSTV 2012.10) 사회학자 송복은 논문에서 "보수와 진보가 있을 뿐 중도는 없다"고 말했다.(송복 2005).

4. 대안 제시 : 레이코프의 중도와 중도의 현장

“사형은 존재해야 하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을 오직 조금만 죽이거나 중간 정도만 죽일 수 없다. 낙태는 합법적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중도적으로 낙태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결코 중간적인 것은 없다. 자신을 ‘중도파’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중도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이슈 영역에서는 보수적이며 다른 이슈영역에서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주의자로 보인다.” (레이코프 2007, 39)

중도는 없지만 중도는 있다. 이런 아포리즘을 꺼내든 것은 중도가 우리의 통념과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버클리대 교수 조지 레이코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하나의 사안에 대해 중도적인 입장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다른 사안에는 보수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이 중도파라고 말한다. 그가 사용하는 용어인 “부분적 진보”는 보수주의자가 일부분 진보적 입장을, “부분적 보수”는 진보주의자가 일부분 보수적 입장을 갖는다는 데에서 나온 개념이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중도우파 중도좌파와 다를 것이 없다. 상대방의 장점을 차용하는 것이므로 상대 이념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가 전제된다. 이 지점에서 중도는 정치대립 완화에 기여한다. 필자의 대안은 이것이다.

중도를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것으로 규정하면 현실정치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워진다. 반면에 중도좌파 중도우파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여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정우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개원 심포지엄에서 노무현이 왜 한미FTA를 추진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실토했다.(2015.8)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그의 발언은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레이코프의 기준을 적용하면 노무현은 중도주의자였으며 그중에서도 “부분적 보수” 즉 중도좌파였다. 이정우가 중도에 대한 인식을 가졌다면그처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승민과 이종걸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원내대표를 했다. 이때 여야 합의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승민은 친박과 대통령에 맞서서 경제민주화와 함께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진보적 주장을 했다. 이종걸은 친노패권에 맞서서 문재인 당대표 시기에 한달동안 당무거부하며 맞섰다.
이들은 각각 보수, 진보 정당에 소속됐지만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려했고,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당내 강경파에 맞서야했고 그때문에 크고 작은 고초를 겪었다. 중도파가 숙명적으로 겪게되는 고난이다. 이 두명의 정치인도 중도정치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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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억울하더라도…

[김제완의 좌우간에] 토론 방향을 호남 민심에 맞추자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3907&ref=nav_search 


"호남에서 친노 딱지 붙으면 죽음이다. 친노가 마마보다 무섭다. 십자가 밟기처럼 나는 친노가 아니다, 이렇게 말해야할 판이다."

강기정 의원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에 최근 영입된 오기홍 변호사는 광주에 있는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왜 하필 그 당이냐."

두 사람의 발언 모두 최근 시사 팟캐스트에서의 고백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의석의 5분의 3인 180석 또는 3분의 2인 200석까지 얻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제1야당의 분당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분당의 이유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이지만 그의 결단은 호남 민심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나 국민의당이 아니라 호남 민심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위의 생생한 사례에서 보이듯이 호남 민심의 변화는 분명하다. 문제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가이다.

원인을 두고 진보 언론에서 식자 간에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시점을 보면 결코 사변적인 토론이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 4월 총선의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2000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선거구가 30개에 이른다. 선거 현장에서 야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도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한번 선거 벽보를 붙이면 여간해서 떼어내기 어렵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날아가는 화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식자들이 토론을 통해서 제공해줘야 한다.

지켜볼수록 피곤해지는 영남 패권 논란

올해 초부터 <프레시안>과 <한겨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자 간의 집중 토론 주제는 영남 패권이다. 호남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돌아선 것이 친노의 영남 패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김욱 교수의 책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펴냄) 출간이 계기가 됐다.

나는 이 토론 주제는 잘못 설정된 프레임 위에 서있다고 보고 토론자들에게 논점 전환을 요구한다. 영남 패권 논리는 호남 민심을 이해할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도 그것에 사생결단하듯 올인하는 토론자들의 태도는 잘못됐다고 본다. 토론을 지켜볼수록 피곤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토론이 유용한 것이 되려면 호남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갈등도 완화되고 새로운 전망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장은주, 정희준 교수와 김욱 교수의 토론 또 김의겸 <한겨레> 기자와 김욱 교수의 토론은 지나치게 격렬하다. 진실의 언어는 그렇게 거칠지 않다. 호남 민심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격렬함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런데도 호남 민심을 둘러싼 논란이 블랙홀처럼 영남 패권으로 빨려드는 이유가 무언가.

김욱 교수의 문제 제기 방법이 너무나 공격적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남 패권주의자라는 말조차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나아가서 전두환의 영남 패권과 동일시하는 김욱 교수의 발언에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이성적인 토론이 되지 못하고 창과 창이 맞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만 들린다.

격렬함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토론자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동안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했던 영남 패권 주장이 지금 와서 폭발적인 힘을 갖는 이유는 호남 민심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의 격렬함은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민심이란 것이 바다와 같아서 영남 패권이라는 이유 한 가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호남 민심 폭발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도 일면적 진실을 전면화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국면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영남 패권이 호남 민심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은 결과라면 나는 내부에서 찾아보겠다. 보수화, 모욕감, 당파성이란 세 개의 키워드로 설명해 보려 한다.

보수화-모욕감-당파성, 호남 민심에 접근하는 다른 길들

광주의 5060 세대가 종합 편성 채널 가운데 'TV조선'을 가장 많이 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론 조사를 보면 젊은 세대보다 50대 이상 세대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다. 2월 17일 <무등일보>의 광주 시민 여론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10/20대 55.7%, 30대 44.9%, 40대 40.5%, 50대 28.6%, 60대 17.5%로 나타났다. 20대에 비해 50대는 절반 수준이다. 종합 편성 채널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이런 현상을 놓고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 나왔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은 지난 1월 <김보협의 더정치>에서 이런 말을 한다. 지난 연말부터 호남 민심의 가치 지형 또는 호남 이념 지형을 조사해보니 눈여겨볼 변화가 나타났다는 거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여전히 호남이 다른 지역보다 진보적 색채가 월등히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호남 여론이 보수화됐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런데 딱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조금 다른 구석이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차기 대통령으로 진보적인 대통령을 원하는지 보수적인 대통령을 원하는지 이런 질문에는 반반이 나타나거든요. 호남이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대통령을 원한다. 이게 10년 전이면 상상하기 어려운 건데 이런 부분들도 나타나고 있거든요."

"성지에서 세속으로"라는 김욱의 발언에도 그런 함의가 숨어있다. 그동안 광주 정신이라는 대의에 따라 진보적 가치를 위한 투표를 해왔지만 이제는 세속적인 욕망을 감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들은 호남의 문재인 비판과 안철수 지지의 배경에 보수화 현상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광주 정신'에 의해 억눌려왔던 호남인들 일부의 보수 성향이 커밍아웃하는 것 아닐까.

추미애 의원에 대한 의문 한 가지.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유세 기간 중에 "좌동영 우미애"라는 말도 나왔을 만큼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런데 그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리고 노무현 탄핵에 나선다. 나는 이런 반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 당시 만났던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에게 직접 물었다.

김성호 의원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추미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에 연락하려고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 그의 참모들이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기가 셌던 그는 격노했고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다.

호남도 추 의원과 같은 모욕감을 느낀 것 같다. "호남 사람이 내가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 싫어서 찍었지"나 "호남 정치인들과 정치하기 참 힘들다" 등,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경위가 어떻든 간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한마디들이 호남 사람의 자존감을 다치게 했다. 이렇게 상처 주는 말들은 아주 오래 간다.

지난해 박지원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호남의 상처를 덧나게 했다. 김대중(DJ) 대통령이 신장 투석을 하게 된 것이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을 던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학적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에 호남 사람을 비하한 글이 있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도 자극적이다. 문재인의 부친이 양말 장사를 했는데 "전남 상인"에게 돈을 받지 못해서 사업이 망했고 그 때문에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호남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선한 인상의 문재인을 악마화한 것이 아닌가.

나는 <재외동포신문>에서 일할 때 기자들에게 이런 주문을 했었다. 복잡한 상황에서 국내 동포의 이익과 재외 동포의 이익이 부딪칠 때 재외 동포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보고 그 관점에서 기사를 써라. 그러면서 이것이 "재외 동포 당파성"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사회 전체를 보는 관점에서 보면 편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외 동포의 영향력이 워낙 적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당파성이란 파당성과 다름없는 말로, 사회의 여러 복합적인 상황을 오직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태도이다.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에서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다. 노동 계급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도 이런 방법론적 편향을 사용해왔다. 김욱 교수의 영남 패권 주장이나 '호남 자민련' 여론도 호남 당파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문재인, 호남 민심 치유 위해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 한다. 헬조선, 이생망이라 한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국민 일인당 소득이 감소했다. 자기 자식을 때려 죽이는 사건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어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끼를 잡아먹는다. 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 경제 민주화 등 진보 공약으로 집권해놓고 방향을 보수로 틀면서 국정이 난조에 빠진 것이다.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은 이 정부를 "전두환보다 못한 미친 정권"이라고 말했다. 이런 극언이 공감을 일으키는 시대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총선 압승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오로지 투표밖에는 무기가 없는데 그것마저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김욱 교수와 장은주, 정희준 교수에게 제안한다. 영남 패권 논란은 이제 중지하고 호남 정치와 정권 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을 찾아보자. 거슬러 올라가 복기해보면 뒤늦은 해법이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와 문재인 세력은 통합이 아니라 연대를 해야 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이 통합하고 다른 사람은 연대한다. 통합과 연대의 원칙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생각이 다르고 지지 세력의 입장도 다르다. 그러므로 해법은 연대에 있다.

3월 2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당을 향해 전격 통합을 제안했다. 입으로는 통합을 말하더라도 손으로는 연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통합한다 해도 당내에 '호남 동맹' 같은 그룹을 허용한다. 호남 정치 세력의 독립적인 지위를 인정해주고 권력 배분도 합의한다. 이를테면 한 지붕 두 가족 또는 계약결혼같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손을 잡고 박근혜 정부 심판을 외친다면 어떨까. 호남 민심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호남의 식자들이 연대를 위한 풍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주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의원은 다시 광주를 방문해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고의가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호남 민심에 상처를 주었다면 치유의 책임이 있다. 가깝게는 총선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 길게 보면 대선 승리를 위해서이다. 문재인 의원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항변할 사람들은 광주의 더좋은자치연구소 이정우 연구실장의 발언을 귀에 담아야 한다.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정서(반문재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더 확대된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tyio@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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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큰 길'이고 중도는 '좁은 길'인가? 

[김제완의 좌우간에·27] 황해문화 중도특집 비평 3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5.10.04 14:18:53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0163&ref=nav_search
 
윤성이 교수가 이념갈등의 원인을, 김진석 교수가 그 대책인 중도를 말했다면, 채진원 교수는 중도수렴의 실험에 대해서 김기협 선생은 해방기의 우리 역사 속에서 중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알려준다. 채진원 교수는 “중도수렴 확대 경향성과 그 과제”에서 중도수렴이란 양극세력이 가운데로 모이는 현상으로 일시적이 아니라 경향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가 이 글에서 예로 든 문재인과 유승민의 경우를 보자. 채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 본다.

채진원 김기협, 역사 속 중도실험의 사례 제시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유권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일련의 행보가 눈길을 모았다. 유 대표는 좌클릭 노선투쟁을, 문 대표는 우클릭 노선투쟁을 벌였다. 유 대표는 원내대표 취임부터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증세없는 복지론'의 수정을 시사했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 문 대표의 고군분투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문대표는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지난 3월 경기 김포의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말했다.

김기협 선생은 “해방기 중간파 노선의 재인식”에서 흥미로운 여론조사 한가지를 소개한다. 1946년 군정청 여론국에서 해방 1주년 맞아 실시한 해방공간 최대의 여론조사에서 중간파가 70%를 얻었다고 말한다.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자본주의, 전면 부정하는 공산주의등 두 극단을 거부하면서 제한된 범위의 사유권을 인정하는 절충적 이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건이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이 시작될 조건이었을 것이다.

김 선생은 이 글에서 역사속의 중도파 인물로 여운형이 아닌 윤길중을 소개한다. 그는 진보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고 7년의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혁신계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맞춰 행동했을 뿐이다. 조봉암에게서 인민위주 정치의 희망을 보았을 때에는 진보당에 참여했고,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을 때에는 신민당에 참여했고, 전두환 군사독재를 불가피한 일로 보았을 때는 민정당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의 역할을 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중도는 왜 인기가 없나
 
 중도 이론은 균형을 갖춘 교양인들의 생각이므로 그만큼 힘이 세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와 현실 속에서 나타난 중도파는 그렇지가 못하다. 유승민은 좌클릭으로 인해 찍혀나갔고 문재인의 우클릭은 충실한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여운형은 비참한 죽음으로 좌우합작운동의 실패를 드러냈고 윤길중은 변절자 또는 철새로 취급된다. 역사와 현실에서 나타나는 중도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같다. 중도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나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진석 교수에게 중도를 이론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기대했던 지인에게 중도운동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이때 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왜 큰 길을 놔두고 좁은 길로 가려고 하느냐. 중도가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큰 길이라는 생각에 균열이 일어났다. 사람은 많지만 조직화하기 어려운 대상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념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중도운동을 시작한다면 어디에서 동력을 얻을 것인가. 중도는 왜 당위적으로 옳으면서 현실에서는 힘을 잃는 것일까. 중도는 왜 인기가 없나.

중도가 인기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첫번째 이유는 역사는 편향의 에너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사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몸을 뒤틀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역사도 좌편향과 우편향을 거듭하면서 진전한다. 80년대 엔엘 피디라는 극좌이념은 당시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추진력 나침반 기치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당시 청년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당시 정부가 극우군사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좌파운동은 우편향 사회에서 존재의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려는 반발력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힘이 매우 크다. 역의 관계에 있는 우파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에 비해 중도운동은 그런 반발력 또는 복원력의 힘이 적다.

두 번째 이유로 오피니언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의 정치적 부자유를 들 수 있다. 그들은 대중을 위한 등대 또는 표식기 기능때문에 이쪽과 저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한다. 여간해서 중도를 택하기가 어려운 구도에 놓여있다. 송호근교수는 중용의 ‘시중의 논리’ ‘중심 이동의 미학’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진보 정권에서는 보수를 보수정권에서는 진보를 지향하겠다고 말했으나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사상적 철새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념갈등 극복 방안으로 첨언할 것은 교육과 소통이다. 국민들에게 이념갈등의 본질과 원인을 잘 알게 해주면 그만큼 갈등이 주는 억압이 줄어든다. 이른바 프로이트 효과이다. 이를 위해 중고 교과서에 좌우 이념에 대한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프랑스의 직장인들 점심시간은 2시간이다. 와인을 곁들여 점심을 천천히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수다를 즐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소통하지 않으면 극좌부터 극우까지 나뉘어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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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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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개념주의’에 도전하는 ‘복잡성의 중도’ 

[김제완의 좌우간에·26] 황해문화 중도특집 비평 2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5.09.28 00:04:40 


윤성이 교수의 글을 통해서 이념갈등의 원인을 찾아봤다. 그 원인들을 뒤집어보면 해답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황해문화 편집진은 그 해답의 총합이 중도라고 보는 것같다. 김진석 교수는 “기우뚱한 균형”,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등의 저서를 통해 중도에 대한 우리 시회의 인식을 넓혀왔다. 그는 이번 기고 “왜 중도를 두려워하는가”에서 “복잡성의 중도”라는 새로운 개념 또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통용되어온 버클리대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이중개념주의”와 구별되는 것으로 중도의 새로운 영역을 모색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황해문화 중도특집의 최대성과는 이것이다. 이 두가지가 어떻게 다르며 각각 어떤 효용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 논의를 따라가는 것은 중도 논란의 핵심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학자들이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게 돼버렸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례를 놓고 말하려고 한다. 아래의 레이코프교수의 글은 이중개념주의를, 그 다음 글은 김진석 교수의 복잡성의 중도를 설명한 인용글이다.

“많은 경우들이 예/아니오의 문제이지, 결코 척도가 아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형은 존재해야 하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을 오직 조금만 죽이거나 중간 정도만 죽일 수 없다. 낙태는 합법적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중도적으로 낙태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극 야생 야생동물 국가보호지역에서의 군사훈련은? 심지어 ‘적당한’ 훈련조차도 훈련이다. 결코 중간적인 것은 없다. 자신을 ‘중도파’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중도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이슈 영역에서는 보수적이며 다른 이슈영역에서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주의자로 보인다.” --레이코프 ‘프레임전쟁’ 39쪽

“안보 문제만 해도,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태도도 거부하고 동시에 '종북' 딱지를 무차별적으로 붙이는 태도도 거부하면서, 미국에 과잉의존하는 태도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상황에서 미군이 철수하기는 바라지는 않으며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국제정치 차원에서는 미국이 '깡패국가'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바로 미국이 국제적 권력을 통해 나름대로 평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복합적인 태도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김진석 ‘황해문화’ 2015 가을호 37쪽

 레이코프의 사형수에 대한 경귀는 중도 논의에서 자주 언급되어왔던 것이다. 그는 사형제에 부분적으로 찬성한다고 사형수를 조금만 죽이는 데에 찬성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단일 사안에 대한 입장은 찬성 아니면 반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강력한 논리에 복잡성의 중도가 도전한다.

두 가지를 잘 구별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레이코프가 언급한 사형제와 낙태, 북극에서 미군의 군사훈련등 세가지와 김진석교수가 언급한 사례들 즉 종북문제와 미군철수,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등 세가지를 더해 모두 여섯가지 사안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를 관찰해 보자.


논의가 더 복잡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두가지의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 통계학에서 사용되는 명목척도와 순서척도를 끌어온다. 명목척도는 어떤 개념의 고유속성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구분이 되는 기준이라면, 순서척도는 “많고 적음”에 따라 구분되는 기준이다.이중개념주의는 명목척도에 의해 복잡성의 중도는 순서척도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먼저 명목척도에 따라서 판단해 보자. 어떤 사람은 종북, 미군철수, 미국의 역할, 미군의 북극훈련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사형제, 낙태에는 진보적 입장을 갖을 수 있다. 4대2의 비율로 보수 입장이 많으므로 이런 경우 중도보수로 판단된다. 여섯개중에 다섯개 이상 보수적 입장을 가지면 극보수 또는 애국보수라고 할 수 있겠다. 

순서척도는 각각 개별 사안의 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대상으로 한다. 종북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종북성향을 거부하지만 무차별적으로 종북딱지를 붙이는 태도도 거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은 북한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소위 애국보수진영 인사들과 구별된다. 애국진영인사의 반북성향의 정도를 10을 척도로 했을때 9 정도라면 이 사람의 반북성향의 정도는 7 정도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복잡성의 중도는 단일 사안에 대한 판단 정도의 크기를 표시해 준다. 

표창원의 정의 홍세화의 관용 안철수의 상식에 숨은 혼란들 
 
 이중개념주의와 복잡성의 중도라는 용어는 다들 손사레치고 도망갈 만큼 낯설고 생경하다. 그러나 그 내용도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이 소중한 이유는 이념갈등의 혼란에서 벗어날 방법론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몇가지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서 이중개념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표창원은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서 보수는 정의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가 유학했던 영국에서는 그러하다. 프랑스 망명객 홍세화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면서 관용을 말한다. 그들은 정의는 보수의 가치이고 관용은 사회주의의 가치라고 말한다. 사회통념과 상반된 그들의 발언에 고개를 갸웃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유명인사들의 말에 속으면 안된다. 그들의 발언에는 착각이나 착시가 아니면 의도적 거짓이 개입돼있다. 왜 그런가. 영국 프랑스에서 좌파와 우파는 오랫동안 중도화과정을 거쳐왔다. 중도화란 상대의 장점을 일부분 가져다쓰는 방식이다. 영국 보수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좌파에게서 정의를 차용해 자기 것처럼 사용해왔으며 프랑스 사회당은 당의 강령에 우파의 미덕인 관용을 걸어두고 있다.

유럽좌파가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을 인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좌파의 덕목이 아님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남의 집에 오랫동안 기숙하고 있었지만 정의는 좌파가 관용은 우파가 제집이다. 표창원과 홍세화의 진술에서 혼란을 걷어낼 수 있게 해주는 방법론이 레이코프의 이중개념주의이다. 중도는 상대 이념의 장점을 인정하며 그것을 가져다 쓰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중도좌파인 프랑스사회당은 좌파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를 7대3 정도의 비율로 갖고 있고 중도우파인 영국 보수당도 좌파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를 3대7 정도 비율로 갖고 있다.표창원은 영국보수당이 갖고 있는 좌파적 가치를 홍세화는 프랑스 사회당이 갖고 있는 우파적 가치를 우연히 보고 그것을 말했던 것뿐이다. 그들이 왜 남의 것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거나 모른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서 우리사회에 만연한 이념갈등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중도는 단지 중립이 아니라 상대 진영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한가지를 붙인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 국면에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교육문제는 진보 가족문제는 보수, 이런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대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보 보수 구분은 효용을 잃었다. 상식 비상식으로 나눠서 봐야 한다. 그런데도 자꾸 세상을 진보 보수로 갈라서 보는 사람은 그런 구분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는 벌레다. 이중개념주의는 이런 발언이 무지의 산물임을 드러나게 해준다. 이런 언술에는 진보는 진보답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한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생각이 진보 보수 논의구도를 망치고 있다. 극좌 극우 이념이라면 그런 생각이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도좌파 중도우파에는 늘 상대의 것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남성에겐 여성성이 여성에겐 남성성이 일부 담겨있다. 안철수를 좋아했던 국민들은 그의 중도성향을 지지했던 것인데 정작 그 자신은 중도에 대해 매우 수준낮은 인식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김진석 교수가 제기한 과제로 다시 돌아가자. 이번 특집의 기획자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김명인 교수는 이렇게 평한다. 

 


“(김진석 교수는) 보수 진보의 진영논리를 넘어서고, 중도와 진보(또는 좌파)를 제대로 구별하는 것과 병행하여 '적극적 중도' '혹은 '복잡성의 중도'를 하나의 실천적 대안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황해문화 7쪽

 김명인 교수의 말처럼 복잡성의 중도가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중개념주의처럼 중도운동에 방법론적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필자의 생각을 밝힌다면, 복잡성의 중도는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상태여서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는 어렵다. 결국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복잡성의 중도는 햄릿의 멘탈리티이다. 고도화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단계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의사를 분명히 하라는 강요를 받게 된다. 그러면 밤을 새워서라도 고민을 하고 어느 쪽이든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그러므로 복잡성의 중도는 이중개념에 이르기 전에 거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김진석 교수도 “물론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릴 상황이 닥치면, 보수나 중도나 좌파적 결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어느 쪽으로든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까칠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이 적극적 중도가 된다고 믿는 것같다. 하지만 이런 까칠함이라는 에너지를 모은다고 사회운동에 이르게 할 정도의 동력이 될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복잡성의 중도의 생명력은 앞으로 김 교수가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달려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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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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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격차 크지 않은데 이념갈등 극심한 이유는? 

[김제완의 좌우간에·25] <황해문화> 중도특집 비평 1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5.09.26 00:21:50  
  
 
우리사회에서 이념갈등의 심각성은 한계치를 넘은 듯하다. 진보 보수 양극단 사람들이 사사건건 맞부딛치며 이 사회를 쥐락펴락 한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어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삶의 질은 높지 않다. 소득양극화와 함께 이념양극화가 그 이유일 것이다.

 <황해문화> 2015 가을호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서”라는 주제의 특집을 기획해 네편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들은 잘 짜여진 한편의 옴니버스 영화처럼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먼저 이념갈등의 증폭 원인 네가지를 윤성이교수(경희대 정치외교학)가 제시한다. 이 특집의 기획자는 이념갈등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중도라고 본다. 그래서 중도 연구의 권위자인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가 ‘복잡성의 중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이어서 중도수렴의 실험결과를 채진원 교수(경희대 정치외교학)가, 과거 해방기의 사례들을 김기협 선생이 소개한다. 

윤성이, 무엇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는가 

 윤성이 교수는 “무엇이 이념갈등을 증폭시키는가”에서 이념갈등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소개하고 이념 갈등 증폭의 원인 네가지를 제시한다. 

“여러가지 사회갈등 요인가운데 국민들은 이념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2014년 국민대통합위원회 '사회갈등 해소와 통합을 위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집단간 갈등이 가장 심각한 관계는 여당과 야당(평균값 4.54, 5점 척도)이 가장 높았으며, 보수와 진보 갈등이 4.32점으로 그뒤를 이었다. 한편 노사갈등(4.12), 빈부갈등(4.08) 그리고 영호남갈등(3.80), 새대갈등(3.64)은 이념갈등에 비해 갈등의 인식정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기간 어떤 갈등이 가장 심각할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9.3%가 이념갈등을 지목했고, 빈부갈등과 노사갈등은 각각 20.3%와 6.3%에 그쳤다.” --<황해문화> 2015 가을호 40쪽

윤 교수는 이념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 네가지를 꼽았는데 그중 첫째는 집단극단화이다. 미국 하버드대 선스타인 교수의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 집단극단화가 잘 설명돼 있다. 그는 아랍 테러리스트의 생성과정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면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집단 구성원들이 모여서 토의를 하고 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성향과 같은 방향을 유지하면서 더 극단화되는게 보통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생각하는 공간은 극단적인 운동을 키우는 토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온건한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은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에 반감을 품고 떠나게 된다. 이같은 패턴은 특정 시기나 문화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선스타인은 말한다. 미국 프랑스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풀뿌리 사회운동단체 내부에서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념갈등 증폭원인중 첫번째로 집단 극단화를 꼽은 것에 동의한다.

두번째 증폭원인은 정당정치이다.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고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이상으로 과장돼서는 안된다. 정치인은 사회갈등을 수렴해서 대신 싸워주는 ‘갈등 대행’ 임무를 맡고 있다. 싸움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사당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거리에서 피를 흘리게 된다. 그 싸움에는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그 정파를 지지하는 국민을 대변한다. 학자들이 정치권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책임전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세번째 이념갈등 증폭원인으로 “매개집단의 정치화”를 들었다. 매개집단이란 시민단체나 언론을 말하는데 정부와 시민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정치화되어서 선거과정에 개입하였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했다고 말한다. 매개집단인 시민단체의 정치화가 이념갈등을 증폭시켰다는 견해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윤 교수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약화시켰다고 말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뚜렌은 사회운동은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된다고 했다. 좌파정권에서 우파사회운동이, 우파정권에서 좌파사회운동이 활기를 띤다. 사회운동이 좌편향 또는 우편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균형잡기를 위한 것이다. 더구나 한국과 같이 정치적 모순이 심한 곳에서 시민운동이 정치와 구분되는 시민사회 고유의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한국사회 이념갈등 증폭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며 언론이 공론장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역기능을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최근 들어 정치화된 언론의 편집이 지지자들만을 위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종편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네명의 패널이 등장하면 한두명은 야당 성향 패널이 앉아있었지만 요즘은 네명이 모두 보수인 경우가 많아졌다.

네 번째 원인은 온라인 공간의 양극화이다. 뉴미디어로 인한 끼리 집단 현상은 우리 정치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온라인 공간에서 다른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 모두 이념 양극화와 사회 파편화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다. 보수는 보수끼리, 그리고 진보는 진보끼리 소통하고 뭉치면서 이념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자연히 이념갈등은 증폭된다. 이러한 매체환경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소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지적도 적절하다.

이념격차 크지 않은데 이념갈등 극심한 이유는

 윤 교수가 제시한 네가지 원인은 이념 진영간의 간격을 넓히는데 기여한다. 이것은 양진영의 이념격차가 크지 않음에도 이념갈등이 높은 한국적 특수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같다. 필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이념외적인 문제이다. 이념에 대한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무지와 오해가 그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런 갈등 양상에 대해서는 관련 학자 연구자들이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 언젠가 김호기 교수가 고백했듯이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이념문제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이념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극심해졌음에도 수준높은 연구논문을 찾기 어렵다.

대표적인 혼란의 사례가 진보 보수 용어 문제이다. 진보 보수 중에 보수는 족보가 있는 개념이지만 진보는 특히 진보주의는 학문적 뿌리가 없는 말이다. ‘진보-보수’가 쌍으로 사용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 사실이 동국대 홍윤기교수가 2002년 발표한 논문에서 밝혀졌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진보주의를 서양의 사회과학사전에서 찾아보니 항목이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말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생아처럼 태어나 사회과학 논의의 키워드로 자리잡은 진보라는 용어가 혼돈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0년대 중반경부터 언론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80년대에 등장한 좌파가 우리사회에 세력화하자 그들을 지칭하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학문적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이 용어는 어떤 마력을 갖고 있어서인지 너도 나도 선점하려는 대상이 되었다. 좌파 중도좌파 자유주의자 심지어 보수도 “진보는 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보쟁탈전이라 부를만하다. 현장을 들여다보자.

2012년 4월 진보대통합을 논하는 자리에 좌파의 대표격인 노회찬과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함께 앉았다. 노회찬이 우리와 함께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라고 했더니 유시민은 “아니 내가 진보인데요”라고 말했다. 봉숭아 학당같은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노무현과 유시민은 정치적 동업자였지만 노무현은 한번도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사실은 그의 비서였던 천호선이 필자에게 확인해주었다. 노무현은 늘 진보주의자를 자처했다. 이뿐 아니라 보수 이데올로그인 조갑제는 2005년 국민대 연설에서 “보수가 진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좌파 노회찬 자유주의자 유시민 중도좌파 노무현 우파 조갑제가 모두 자신이 진짜 진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의 진풍경인 진보쟁탈전은 한번 더 둔갑술을 부리는데 진보탈출 러시가 그것이다.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시도했던 진보대통합이 실패로 끝나자 국민들 사이에 진보혐오증이 퍼져나갔다. 통합진보당의 분당과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경기동부와 이석기 파동이 진보에 대한 실망감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너도나도 진보라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누군가 진보는 진부하다는 말도 남겼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신당은 노동당으로 개명했으며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당명에서 진보를 떼어냈다. 이어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통합진보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갑제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뉴라이트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만이 진보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현상들은 이념갈등을 희화화시키고 무질서의 도가니로 밀어넣는다. 국민들은 이념은 지긋지긋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갈등을 악화시킨다.

진보라는 가짜 월계관을 차지하기 위해 네 정파가 각축하는 모습을 필자는 사색당파를 패러디해서 "사색진보"라고 이름지었다. 이러한 혼돈은 엄밀하게 말해서 이념과 직접 관계없는 이념갈등 이전의 문제이다. 이념 자체가 복잡한 세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난해한데다 이에 더해서 중심용어와 개념의 혼란이 더해졌다. 이런 혼돈으로 인해 실생활에서 겪는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저녁에도 직장인 대학생들이 정치를 안주로 술을 마시다보면 진보라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들은 저마다 사색진보중 하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곧 말들이 얽혀서 다툼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보수 새누리당과 비교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진보라고 말하면 그게 무슨 진보냐 이런 식이다. 이런 다툼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고 피곤하게 만들뿐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현상이어서 국제 학계에 보고해서 공동연구에 나설 만하다. 진보 보수 양진영은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연구자들을 파견해서 진보 보수 용어에 얽힌 혼돈을 논의하고 새로이 개념규정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의 의견을 붙이자면 좌파는 왼쪽으로 진보하자는 사람들이고 우파는 오른쪽으로 진보하자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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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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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시대로의 진전 멈추지 않았다

김제완의좌우간에 2015. 11. 29. 17:58 Posted by 세계로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594

진보시대로의 진전 멈추지 않았다 

[김제완의 '좌우간에']<24> 18대 대선 세대별 투표성향 분석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2.12.26 15:29:00 

 
18대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에게 투표했던 48%의 국민들 사이에서 패배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은 지난 91년 민주화의 좌절 끝에 일어난 청년들의 자살을 연상케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세대별로 엇갈린 투표 때문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인터넷상에서 노인 무임승차 폐지 서명운동과 기초노령연금 폐지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3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좋은일만생긴다'라는 필명의 누리꾼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해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렸다. 대선 직후인 20일 시작한 서명은 최초 목표인 7천명을 넘겨 이틀 만에 9천31명이 서명했다.

이 누리꾼은 "노인들이 국민 복지에 대해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니 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해달라"며 "이래야 복지가 어떤 것인지 코딱지만큼이라도 느끼시려나…"라고 비꼬았다. 50~60대가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으니 이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세대 '갈등'은 5년 전의 현상이고 지금부터 5년은 세대 '전쟁'이 될 것"이라며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젊은 층과 노년층이 한정된 정부재원을 두고 싸워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세대 충돌의 원인을 데이터로 확인했다. 필자가 작성한 아래 두 개의 도표에는 16대 대선과 18대 대선의 세대별 유권자수와 투표율 등이 담겨있다. 이 도표들을 비교하면 몇 가지 의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2040세대는 10년 전보다 더 진보적인 투표를 했고 5060세대는 더 보수적인 투표를 했다. 세대 간의 이념 양극화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50대의 경이로운 투표율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님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이전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투표율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표작성자 주 : 화살표로 표시한 18대 대선의 투표율 득표율 증감은 16대 대선 투표율 득표율과 비교한 것임

50대 인구 두배로 늘어나 문재인 실점도 두배로

위의 도표 두 개를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2002년 총투표율이 70.8%일 때 50대 투표율은 83.7%였고, 2012년 총투표율이 75.8%일 때 50대 투표율은 89.9%였다. 이 두가지를 같은 조건에 놓고 비교하기 위해서 2002년 총투표율이 2012년과 같은 75.8%였다면 어떻게 될까. 50대 투표율도 늘어나 89.6%에 이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50대 투표율은 사실상 89.6%에서 89.9%로 늘어난 것이며 이것은 거의 같은 수치이므로 증감의 의미가 없다. 이보다 앞선 15대 대선때에도 50대 투표율은 88.9%였다. 50대는 이번 대선뿐 아니라 15대 16대 대선에서도 90% 가까운 투표율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호들갑스럽게 보도한 "경이로운 투표율 90%" "50대의 투표반란" "숨은 보수표의 출현" "묻지마 투표" "박근혜 몰표"등은 오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들이 통용되는 이유는 50대가 이번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작 눈여겨봤어야 했던 것은 50대 인구의 급증이다. 16대 대선에서 412만명이었으나 18대에는 778만명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투표율이 아니라 인구증가가 경이적이다. 50대 연령층이 하나 더 생겨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55년생에서 63년생까지의 베이비붐 세대가 온전히 50대에 편입된 데 따른 현상이다. 이러한 급격한 인구증가는 투표 결과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문재인은 50대 유권자로부터 37.4%를 얻어서 10년전 노무현후보가 얻은 40.1%에 비해 2.7% 줄었지만 득표수는 거꾸로 151만표에서 259만표로 108만표나 늘었다. 박근혜는 62.5%를 얻어서 이회창의 57.9%에 비해 4.6% 늘었다. 그러나 득표수는 218만표에서 433만표로 물경 두배가 늘었다. 여기가 바로 이번 대선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지점이다. 득표율은 불과 4.6%가 늘었는데 득표수는 두배로 늘다니... 언뜻 이해가 안되는 마술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50대연령층이 하나더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50대가 크게 집결해서 판을 뒤집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인구구성 변화에 따른 효과라는 사실이다.

50대 득표전투에서 박근혜는 문재인에게 174만표를 더 얻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6대에는 이회창이 노무현에 비해 67만표를 더 얻었으므로 실제로는 107만표가 더 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50대 몰표를 숫자로 환산하면 107만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종 승부는 108만표 차이로 갈라졌으므로 여기가 승부처인 셈이다.

인구가 두배 가까이 늘어난데다 같은 비율로 실점을 했으니 잃어버린 표도 두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뿐 아니라 언론이나 정치평론가들중에도 이 문제에 대해 경계주의보를 내놓은 사람이 없었다. 단일화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 이 사실을 지적하지 못한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도 모두 반성문을 써야 한다.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른 패착이 50대공략 실패였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부동산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피해자가 주로 주택 소유층인 50대인데도 그들의 좌절감을 위무해주는 정책이 없었다는 점이 먼저 꼽힌다. 그리고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친노세력이 노무현이 추진했던 한미FTA를 반대한 것이나 보수층의 안보의식을 건드린 이정희효과 등을 꼽을 수 있다.

진보 보수 이념양극화 : 2040 진보지지 높아지고 5060 보수지지 높아져

50대 이외 연령대의 투표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2040세대는 10년 전에 비해서 더욱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문재인의 20대 득표율은 65.8%로 노무현의 59%에 비해 6.8% 늘었으며 득표수는 270만 표에서 314만 표로 44만 표가 늘었다. 20대가 투표를 하지 않아 졌다거나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주장 등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의 30대 득표율은 66.5%로 노무현의 59.3%에 비해 7.2% 늘었으며 득표수는 351만 표에서 392만 표로 41만 표 증가했다. 40대의 득표율은 48.1%에서 55.6%로 7.5% 늘었으며 득표수는 287만 표에서 385만 표로 100만 표나 증가했다. 10년 전 40대 득표율을 보면 노무현 이회창 양후보가 거의 동률이었는데 비해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이 박근혜보다 11.5% 앞섰다. 40대는 2030과 5060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선거전문가들은 40대가 어느쪽으로 기우는가를 주시했다. 그렇게 볼 때 40대의 진보쏠림현상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진보시대로의 진전이 중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40세대와 반대로 5060세대는 10년 전에 비해 뚜렷한 보수성향을 보였다. 5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62.5%로 이회창의 57.9%에 비해 4.6% 높아졌다. 6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72.3%로 이회창의 같은 연령대 지지율 63.5%에 비해 8.8%나 높아졌다. 반대로 5060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10년전 노무현 지지율에 비해 각각 2.7% 7.4% 낮아졌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연령대에 따른 진보 보수 이념양극화 현상이다. 50대 돌풍, 안철수현상과 함께 이번 선거의 특징 세가지 중 하나이다. 이 사실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2040 세대는 진보시대로의 진전을 계속해왔다는 점이다. 경제활동 주역이며 사회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의 진보 투표성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이 사회가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0대가 10년 후에 얼마나 보수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50대가 10년 전에 노무현 이회창과 거의 같은 지지율을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40대가 문재인에게 11%의 지지를 더 보인 것은 특기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데이터만 놓고보면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 앞으로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하려면 보수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도표의 문제점 보정작업 필요하다

이 데이터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작성한 것이다. 그래서 두가지의 보정작업을 거쳐야 유효한 값을 갖는다. 여기서는 기술적인 문제와 자료의 미비로 보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먼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의 지지율에는 권영길의 득표율이 포함되지 않았다.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두 명의 진보후보의 득표를 더해야 야권 단일후보 문재인의 득표와 대조를 이루며 비교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권영길의 득표율 3.89%를 각 세대별로 어떻게 가산점을 매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은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권영길의 득표율만큼의 오차를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보정을 요하는 작업이 한 가지 더 있다. 도표에서 인용한 18대 대선의 문재인 박근혜 지지율은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이다. 출구조사 결과는 48.9%대 50.1%으로 격차는 1.2%인데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최종결과는 48%대 51.6%으로 격차가 3.6%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자료 사이에는 2.6%만큼의 오차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를 사용한 것은 중앙선관위의 연령대별 득표율 집계가 1-2개월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한 2.6%가 각 연령대별로 얼마만큼 가중치를 두어야 할 것인지도 전문가의 영역이어서 손을 댈 수 없었다. 다만 위 도표의 박근혜 후보 득표율에 이만큼을 더 더해야 실재의 값의 근사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은 3%정도 더 높아야 하며 18대 대선의 박근혜 후보 득표율은 2%정도 더 높아져야 한다. 어림잡아서 약 5% 이상의 오차가 발생한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이념양극화 현상이 위에서 지적한 것보다는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시간을 들여서 작성한 이 데이터의 가치는 이같은 오차로 인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50대의 90%에 가까운 투표성향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인구구성의 변화로 50대 연령층이 하나더 생겼다는 사실과, 이번 선거에서 새로이 나타난 세대간의 이념양극화 현상을 확인하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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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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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말해야 중도표 얻는다

김제완의좌우간에 2015. 11. 29. 17:53 Posted by 세계로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503

진보를 말해야 중도표 얻는다 

[김제완의 '좌우간에']<23> 대선 막판 승부처 부동층 공략 방법은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2.12.12 15:18:00 

 
10여 년 전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프랑스 사회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서로가 더 많이 안다면서 단편적인 지식들을 꺼내들었다. 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최고참 유학생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프랑스에 와서 선거를 몇 번이나 겪어봤나. 그 질문의 의미가 필자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평소에는 잔잔한 호수 같던 프랑스사회가 선거를 앞두고는 거센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밑바닥에 있는 오물들이 호수의 표면에 부유물로 떠오른다. 이때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그 사회의 실상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선거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프랑스 사회를 더 잘 알게 된다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우리 사회도 맨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신비주의 아우라에 가려있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의 본모습도 보인다.

유망했던 국면이 혼전속으로

한국사회는 진보를 향해 진전하고 있다. 지난 3년여 동안 치러진 선거에서 이 같은 민심의 흐름이 뚜렷이 나타났다. 2009년 경기교육감 선거를 시작으로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서 야당이 연전연승했다. 의석에서 뒤졌던 올해 총선에서도 야권정당 득표 총합이 여권정당보다 많았다. 전쟁이후 60년만에 진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같은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는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세에 안철수 현상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겼다.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못난 민주당"에 실망한 민심이 안철수에게 쏠렸다. 안철수는 지지자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새정치와 정치혁신을 말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고 구태에 젖은 정치권에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안철수의 충격요법이 금도를 벗어났다고 생각된다. 지난달 23일 사퇴 선언과 그 이후 보여준 그의 행보는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새정치와 정치혁신이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문재인이 6일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를 통해 그의 의지를 보이자 이날 오후에 나타나 "아름다운 단일화"를 완성했다. 가장 늦은 시간에 하루만 더 늦었어도 파탄날 것 같은 그런 시간에 그가 다시 등장했다.

바둑에서는 같은 수를 두더라도 수순이 틀리면 판을 그르치고 만다. 바둑을 잘 둔다는 그가 왜 이처럼 수순을 지키지 않은 것일까. 납득하기 어려운 안철수의 행보로 인해 대선국면은 요동쳤다. 진보를 향한 민심의 흐름에도 교란현상이 일어났다.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했다. 결국 여론이 박근혜 쪽으로 기울어진 뒤에야 그가 뛰어나왔지만 전력투구하는 것 같지도 않다. 정치평론가들은 안철수가 자기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권교체 실패라는 암울한 예감이 밀려온다. 지난 여름 유시민 지옥을 거쳤는데 이번 겨울에는 안철수 지옥을 겪게 되는 것일까.

안철수와 문재인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박근혜를 거뜬히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이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그런 물실호기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있다. 진보진영은 안철수의 심기가 불편할까 눈치나 보고 있다. 엊그제는 문 후보가 당선돼도 다음 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에 대해 거리를 둔 이 발언이 그의 지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가 흩뿌려 놓은 중도표를 다시 모으려고 진보진영이 모두 팔을 걷고 나섰는데 그는 왜 이런 초를 치는 말을 하는 것일까. 다분히 위악적으로 보인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의 수사 때문이다. 간을 너무 봐서 "간철수"라는 평을 들으면서도 말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고 한다. 어느새 착한 안철수는 보이지 않고 노회한 정치꾼의 모습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의 생각과 다른 평가도 있다. 김어준 총수는 안철수가 나타나 판을 흔들어주었고 역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주었으면 그걸로 그의 역할은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뒤에 판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문재인의 몫이다. 대선이 일주일 남은 지금 승부처는 부동층을 누가 잡는가이다. 그래서 안철수에 의존하지 않고 부동층을 잡는 방법을 논구했다.

부동층과 중도층은 어떻게 다른가

안철수의 지지층은 흔히 부동층 무당파 정치혐오층 또는 중도층이라고 불려진다. 이것들을 자세히 구분해보면 그 특성이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부동층은 자기 기준이 없어서 시류에 쉽게 휩쓸리고, 무당파는 지지정당이 없으며, 정치혐오층은 과대한 이상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중도층은 뚜렷한 개념이 있는 사람이다. 중도는 진보 보수와 대등한 자기 위상을 갖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논설실장은 최근 한 종편에 출연해 몰가치와 무정견이 중도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언론은 안철수 지지표에 포함돼 있다가 떨어져 나온 사람들을 "신부동층"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바로 중도층이다.

무당파 정치혐오층을 포함하는 부동층 그리고 중도층은 선거에 임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지난 4월 총선 투표율은 54.2%였다. 이번 대선에는 약 15%가 늘어난 70%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층은 이때의 15%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부동층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투표율이 70%라면 무투표율이 30%이다. 다시 말해 국민 열명 중 세명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부동층은 주로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가운데 표를 얻기 위해서는 부동표가 아니라 중도표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안철수 지지표인 이 중도표를 챙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안철수가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그에게만 의지해서 될 일이 아니다. 중도층 확보 방안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상반된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충돌에는 흥미로운 진실이 담겨있어 연구자의 의욕을 돋운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살펴보자.

중도표 확보방안 두고 상반된 두 가지 이론이 충돌해

첫 번째는 중도표 공략을 위해 가운데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요즘 종편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는 정치평론가들이 별다른 이론없이 수용하고 있다. 진보 보수가 각각 총집결해서 대회전을 벌이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양진영이 고정표는 이미 확보했다. 그러므로 중원으로 나가서 중도표 낚시를 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평론가들은 새누리당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이회창을 영입하고 자유선진당을 흡수하는 것이 중도표를 얻는데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고 말한다. 경제진보의 아이콘 김종인을 토사구팽시킨 것도 중도표 확보에는 악재라고 본다. 중도표를 잡으려면 자기들의 정체성을 내세우지 말고 가운데를 향해 좌클릭 또는 우클릭하라고 조언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타당해 보인다.

두 번째는 이와 정반대의 의견이다. 한국사회에 잘 알려진 버클리대 교수 조지 레이코프의 이론인데 때마침 지난 10월29일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2부에서 상세하게 소개됐다. 그는 중도표를 잡기 위해 가운데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프로의 제목도 "중도파는 중도에 있지 않다"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박근혜 '중도 전략', 레이코프 눈에는… 참조)

안철수는 이미 중도층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경제는 진보이고 안보는 보수이거나, 교육문제는 진보이고 가족문제는 보수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진보적 판단과 보수적 판단의 숫자가 엇비슷하다. 이렇게 진보 보수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때 팽팽하게 균형을 이룬 양팔저울 접시의 어느 한쪽에 작은 물건이라도 하나 더 얹으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중도표를 진보나 보수 쪽로 데려올 수 있다. 이것이 레이코프의 이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나온 언어로 설득하고 자신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야 한다는 것이 레이코프의 조언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이회창을 영입하고 자유선진당과 합당한 것이나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을 토사구팽시킨 것도 옳은 선택이 된다. 보수는 보수의 자원을 하나라도 더 많이 끌어모아야 한다. 그래야 중도표를 얻을 수 있다. 전적으로 이같은 영향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회창을 영입하고 김종인을 팽시킨 즈음부터 박근혜의 지지율이 올라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상반된 관점을 내놓고 있는 이 두가지 의견 중에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레이코프의 책들은 여러해 전부터 국회의원 보좌관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한국 정치판에서 검증을 해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일단 현실적인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다. 정치평론가들의 방법은 부동층을 끌어오는 데에, 그리고 레이코프의 방법은 중도층을 끌어오는데 유효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이코프의 방법이다.

문재인이 중도표 얻으려면 진보를 내세워야

필자는 레이코프의 이론이 과학적인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문재인은 중도표를 의식해서 자신의 정체성인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기를 주저하면 안 된다. 그것은 패망으로 가는 길이다. 중도파인 안철수에게 목을 매는 것도 레이코프 이론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가 움켜쥐고 있던 표는 어차피 진보 보수로 나뉘어질 표들이다. 중도유권자들에게 진보의 장점을 설득할 매력적인 언어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이 오늘 장거리 로켓을 쏘았다. 이에 따라 한반도와 주변국가들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으며 대선에도 다소간 영향을 줄 것 같다. 이 국면을 이용해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진보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하라. 종북세력과 반북세력이라는 지뢰밭 사이에 작은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평화시대 뿐 아니라 "북한특수"가 열린다. 북한의 우수한 저임금 노동력과 풍부한 자연자원에 남한의 높은 기술력을 결합시키면 경제도약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을 "제2의 중동특수"라는 언어로 말하자. 경제를 중시하는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먹힌다.

이런 일은 북한의 기피대상인 보수세력보다는 진보세력이 잘 해낼 수 있다. 진보세력만이 잘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열 가지 이상 찾아내 국민에게 제시하자. 그러면 이쪽저쪽을 재는 중도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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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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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통령' 박근혜가 그 문을 열게 되면… 

[김제완의 '좌우간에']<22> 기울어진 축구장, 후반전이 시작됐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2.11.28 11:57:00 

 
1. 한국사회 현단계의 모습

외국에 나가면 흔히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해외동포들은 요즘 조국의 발전을 보면서 대견해 한다. 그런데 국내에 와서 보면 다들 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처음으로 대선에 참여하는 재외국민들이 한 표를 올바로 행사하려면 국내사정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 지난 3년간의 한국정치사회 개론을 작성했다.

양극으로 치닫는 사회

한국사회는 각종지표를 보면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 1인당 GDP는 2만3천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무역규모는 수출 수입액을 합산한 것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한 국가는 전세계에서 9개국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소니 등 일본의 전자업체들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한국 핸드폰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한국상품이 지난해 131개에 이른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얻어 5위에 올랐고 LPGA 10위권에 한국여자 선수들이 절반에 이른다.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가 절정이다. 사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2위에 올랐다. 국내 어디를 가도 도로 건물들이 번듯하고 터널 교량 등은 최신공법으로 건축된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한 최초의 시대라는 말을 넘어서 이제는 단군 이래 가장 잘 나가는 시기라 불린다. 어떤 인류학자는 200년마다 국운 상승기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400년 전의 세종대왕 시기, 200년 전의 영정조 시기에 이어 지금이 그때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림자가 너무 짙다. OECD 나라 중에 1등하는 것을 모아보았다. 자살률, 노인빈곤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대학등록금 등이 1등이고 출산율,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GDP 대비 공공지출 등은 뒤에서 1등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ILO 가입국 중 1위이다. 복지수준은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자영업자 수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에 이어 4위이고 GDP 대비 가계부채는 영국과 1, 2위 다투고 있다.

이중에 가계부채는 올해 3분기 937조5000억 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역규모 1조 달러와 같은 수준이며 경제활동인구 1명당 40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은 여성들의 출산파업으로 이어져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OECD 통계는 영국의 장하준 교수가 지난 9월 국내 강연에서 정리해준 것이다. 우리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양극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통계가 웅변하고 있다.

이따금 만나는 해외동포 중에는 양극화라는 용어가 이해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판잣집도 없어졌고 거리에서 거지를 보기도 어렵다. 전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므로 부잣집이나 극빈층의 집이나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별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단단히 뿔이 난 국민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한국사회는 성장을 위해 일로 매진해왔다. 오른쪽으로만 치달았다. 시대가 오른쪽으로 가자고 했고 국민들도 동의한 것이다. 이때 흔히 듣던 말이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것이었다. 파이를 키우고 그 다음에 나누어 먹자고 하는 말에 다수 국민이 수긍했다. 너무 배고프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보리고개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화를 보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해전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이 사회에서 나는 왜 여전히 생활이 고달프고 행복하지 못한가. 왜 여전히 기득권층의 부패는 계속되고 사회정의는 실현되지 않는가. 지난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번역서가 100만부 넘게 팔렸다. 내용을 보면 직장인이 읽기 어려운 철학책인데 이처럼 팔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 제목이 주는 효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 지난해 2만3천 달러를 넘었다. 파이는 이만하면 충분히 커졌다. 그런데 파이가 커지면 나눠먹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위 낙수효과라는 트리클 다운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랫목이 따듯해지는데도 윗목에는 온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떡고물도 없다. 재벌기업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곳간에 그득 담아두고 있는데 서민들은 빚잔치를 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재벌 개혁을 겨냥한 경제민주화가 나오게 됐다.

경제성장을 1% 하면 일자리가 30만개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자는 56만 명인데 일자리는 30만 개이고 그중에서 취업자가 만족하는 일자리는 3만 개에 불과하다. 매년 대졸 실업자가 20만 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구조이다. 얼마 전 TV에 나온 삼성의 인사담당 부사장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능력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해외경험도 갖추고 있어서 글로벌 마인드나 영어실력 등이 우수하다. 앞 세대보다 능력이 뛰어난데도 취업을 못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잘 나가는데 왜 국민들은 불행한가.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외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밖에서 보면 대단히 발전된 나라인데 들어와서 보면 국민들이 불행하다고 말해 놀란다. 왜 그런가. 엄살인가. 전보다는 잘 살게 됐는데도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성장 일변도 발전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만 발전하다보니 생긴 왜곡현상이다. 오랫동안 오른쪽으로만 끌어당기니 몸이 뒤틀리고 있다. 이제는 왼쪽으로도 끌어주어야 몸이 바로 잡히고 앞으로 더 잘 나갈 수 있다. 일본을 눈여겨봐야 한다. 50년대 이래 보수우파 정당의 장기집권이 일본을 지금의 불균형상태에 빠뜨렸다. 우리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불균형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과 교육이다. 지난 80년대에는 주택공급률이 가구 수에 비해 현저히 미달했다. 남의 집에 방한칸 얻어 사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경기에 풀무질을 했고 여기에 돈이 몰렸다. 그 결과 건설경기가 살아났고 가장 짧은 시기에 다량의 공동주택이 공급됐다. 2002년에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섰다.

문제는 빛나는 성장의 후과이다.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파리와 뉴욕의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외식비, 택시비는 싼데 비해 주거비는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새로이 가정을 꾸려야 하는 30대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 전세값도 오르고 있어 주거권이 위협받고 있다.

교육문제도 부동산과 구조가 똑같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자원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을 경쟁력 있는 자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이들이 고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길러낸 우수한 인재들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한쪽으로만 치닫다 보니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이고 자살율도 가장 높다. 이민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첫 번째 이유가 아이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배출된 인력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 경쟁력 위주로 만들어낸 청년들이 정작 협력을 필요로 하는 팀제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가 있으면 이제는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주위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2. 한국정치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흔히 한국의 선거에서 진보 보수의 불균형을 기울어진 축구장에 비유한다. 진보가 한번 이기려면 천신만고 끝에 이기고 보수는 밥먹듯이 쉽게 이긴다는 것이다. 김대중이 집권할 때를 보자. 집권세력이 나라를 거덜낸 뒤에 치러진 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고서 2위 후보와 겨우 1.6%포인트인 39만 표 차이로 이겼다. 이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져서 보수표가 분산됐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2002년의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을 잡고서도 2위 후보와 2.3%포인트인 57만표 차이로 이겼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축구에서 후반전이 되면 선수의 위치가 바뀐다. 한국사회도 오랫동안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된 것일까. 지난 몇 해 사이에 게임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듯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모순이 충분히 누적되면 비로소 큰 변화가 온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변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 징후가 처음 나타난 사건이 바로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렸다

2009년 4월의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난데없이 무상급식이 나타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진보진영과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보수진영의 대립이었다. 무상급식 전면도입은 알고 보면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이다. 좌파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부모의 수입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소득이 많은 사람이 급식비를 더 낸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북유럽 나라밖에 없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왜 이슈로 떠오른 것일까. 당시 유권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만큼 발전했으면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것쯤은 국가가 해줄 수 있지 않나. 이런 요구에조차 토를 달고 되니 안 되니 하는 보수정당에 대해서 화가 난다. 국가보안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법이 발동한 것이다. 그 결과 무상급식을 내세운 진보성향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그 뒤로 무상급식이 이슈가 된 투표에서 여당은 판판이 패했다.

무상급식은 복지 문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의 GDP 대비 복지수준은 OECD에서 꼴찌에서 두번째이다. 이런 불균형의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갑자기 복지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탄식을 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을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니 갑자기 복지를 말하는 이 시대가 너무나 놀랍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복지문제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 좌파진영의 기획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마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나왔다는 말이다.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린 것이다.

진보시대로 한걸음씩 진군하다

새로운 움직임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1년 후인 2010년 6월의 지방선거이다. 여당은 이 당시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보수표를 결집시키려는 등 선거에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30대 유권자들이 오히려 화를 냈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들이 투표장에 줄을 섰다. 이들은 오히려 왜 북한을 잘 다루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했는가 따졌다. 2011년 북한의 1인당 GDP는 720달러로 남한의 2만 3,749달러에 비해 3%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에 비해서 국력이 수십배에 이르는데 왜 형님노릇 제대로 못하냐는 것이다. 이들은 고교와 대학생 시기를 진보정권 치하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한나라당은 광역선거에서 대부분의 시도지사 자리를 내줬으며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개를 빼앗겼다. 이전선거에서 25개 모두 석권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민들은 이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이 싫다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악수를 두었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반대카드를 꺼내들고 도박을 했다. 오세훈은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에 서있었는데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단지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신호로만 보였다. 그래서 그 변화에 저항했다. 그는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였다. 전면적 실시와 단계적 실시중 하나를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8월 24일 실시된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25.7%였다.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됐다. 오세훈은 이틀 후 시장직을 사퇴했다.

오세훈의 주장은 무상급식 반대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으로 하위 50%계층부터 차차 늘려나가자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 안이 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화가 나있었다. 석달 후인 10월26일 실시된 서울시장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고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이 당선됐다. 진보시대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면 올해 4월 총선에서 왜 민주당이 패한 것일까. 국민들은 진보시대로 가라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여론조사를 하면 매번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호에 취한 민주당은 개혁을 외면했다. 그 결과 당명까지 바꾸며 절치부심해온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역전승했다. 민주당의 무능이 민심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4월 총선은 야당이 패했지만 민심은 데이터로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의석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지만 득표수의 총합은 야당들이 얻은 표가 더 많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석수는 152석대 127석이었지만 여권정당 득표율과 야권정당 득표율은 48.2%대 48.5%였다. 4월총선이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대통령 선거였다면 결과가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진보시대로의 진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이번 대선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중도 부동표를 안고 있던 안철수 후보의 사퇴가 꼽힐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퇴한 이유를 놓고 언론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처럼 단일화협상 중에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분노해서 마음이 돌아섰을까. 양자간의 TV토론 중에 안철수의 대북정책이 MB정권과 같다고 말해서 상처를 받았을까. 유언비어 수준의 발언도 나왔다. 안철수 문재인의 비공개회담에서 서로 눈싸움하며 몇십분간 말이 끊기기도 하며 감정대립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이유로 사퇴했다고 말한다면 안철수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다.

안철수가 사퇴 결심을 한 이유를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단일화협상이 시작된 11월중순부터 사퇴 발표를 한 23일까지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 뿐 아니라 3자대결 여론조사에서 2-3위가 바뀌어 문재인에게 밀려났다. 이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이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좌석을 3천개 준비했지만 학생들이 5백명만 모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한 선택을 한 국민여론이 그를 하차시킨 것이다. 중도가 아니라 진보를 선택한 시대정신이 그를 물러나게 했다고 봐야 한다.

투표율 70%가 이번 대선의 승부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은 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선거를 보면 김대중이 당선될 때는 80.7% 노무현이 당선될 때는 70.8%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에서는 63%였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보면 대선에서 70%를 넘기면 진보후보가 유리하고 넘지 않으면 보수후보가 유리하다. 그래서 18대 대선의 승부처는 투표율이 70%를 넘길 것인가 여부라는 말이 나온다.

박빙의 양상을 보이는 이번 선거의 긴장감을 감안하면 투표율 70%는 넘을 것 같다. 만일 70% 투표율을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지난 4월 총선의 투표율은 54.3%였으므로 약 15%의 유권자가 새로 참여하게 된다. 15%이면 총유권자 4000만 명 중 600만 명이다. 이들 중에는 그동안 투표에 불참했던 수도권 유권자와 2030 유권자가 다수 포함돼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구도의 측면에서 보면 야당 필승국면이다.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실을 부각시키기를 꺼려한다. 보수 진보언론이 각각 자기 진영의 패배주의나 자만심을 경계하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지금 같은 선거 막바지에는 양 진영이 화력을 총동원하므로 혼전양상으로 보인다. 선거판을 정확히 읽으려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어 있는 큰 구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구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선거의 특징은 예측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선진국과 달리 한국 선거는 돌발변수가 많아서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선거를 잘 치루는 쪽이 또는 운이 따르는 쪽에 승리가 돌아간다.

▲ 재향군인회 창설 6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3. 60년만에 찾아온 진보의 시대

역사는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선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을 추동하는 힘은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다수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가치이다. 보수가 집권해서 성과를 거두다가도 그 한계에 이르면 진보가 요구된다. 진보정권도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면 보수로 바뀐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보수 이념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으나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보수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보수세력도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운다. 새누리당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해서 문재인의 공약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수세력도 진보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시기 한 신문의 기사에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기사 제목이 현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환경을 봐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진보시대의 도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마침내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열어갈 진보의 시대를 어떤 세력에게 맡길 것인가이다.

노회찬의원은 최근 필자와 같은 인식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진보의 시대를 열어갈 시기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시대의 개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다. 그러면서 노 의원은 87년 상황을 예로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한국사회는 오랜 군사독재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민주화 시대를 열어나가는 과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87년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했다. 그런데 군인출신 노태우가 당선돼 그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친구인 전두환을 유배보내야 했고 북한과 공산권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해야했다. 남북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런 진보적인 정책을 군사반란의 주모자인 노태우가 해냈다. 그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 같은 자기배반적인 일을 하다 보니 정체성의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자기 생긴 대로 살고 있는 전두환과 비교된다.

그런데 노태우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괴로워했던 사람이 있었다. 노무현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참여정부는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외환경이 좋았으며 이에 발맞춰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기치를 들고 집권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수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아파트원가 공개 거부,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 등 보수정책을 채택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고 보수를 기웃거렸고 이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을 잃게 됐다. 노무현이 지금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 역사의 순풍을 맞았을 테고 개인사적으로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시대를 여는 일을 보수에게 맡길 것인가

새누리당 박근혜는 오래전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해 대세론을 만들어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보시대의 보수대통령이 될 것이다. 민주화시대를 여는 일을 수행했던 군인출신 노태우와 같은 위상에 놓이게 된다. 노무현이 억지춘향 격으로 보수정책을 채용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진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 연초에 우리는 이미 예고편을 보았다. 보수정당이 당 강령에 있는 보수라는 말을 삭제하려고 시도해 파문이 일었다. 그 뒤에 계속된 좌클릭 행보로 보수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보수가 좌클릭하고 강령을 바꾼다고 진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로 진보시대를 여는 대통령의 자리에 보수인사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순조로운 역사 발전과 국운의 순항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노태우와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권은 그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국민은 피곤해진다.

정치인들은 흔히 집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 자신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국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불려나와 복무할 뿐이다. 지금 국민은 진보를 호출하고 있다. 22만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한국정치사회를 이해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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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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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김제완의좌우간에 2015. 11. 29. 17:49 Posted by 세계로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283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김제완의 '좌우간에'] 고비용 재외선거의 해법은 우편투표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2.11.14 14:36:00    
  
 
2009년 1월 한파가 몰아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작은 방은 열기로 가득 찼다. 외교통상통일위원장실 옆 소회의실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렸다. 1월15일부터 일주일마다 세 차례에 걸쳐 열린 회의에서 재외선거와 해외부재자투표 관련조항이 규정된 공직선거법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음달인 2월5일 재외국민투표 관련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됨에 따라 230만에 이르는 국민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72년 유신과 함께 해외부재자투표가 중단된 이래 37년 만에 주권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 통과된 법은 여러 가지 미비점 때문에 반쪽짜리 법이라는 평을 들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투표방법이 어려워 여우 집에 초대받은 두루미의 우화에 비유됐다. 이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우편투표였다. 우편투표는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실시방법이 간편해서 재외국민은 누구나 원하고 있으며 투표 참여율도 크게 늘릴 수 있다. 투표관리 비용도 가장 적게 먹힌다. 그러나 정치권과 관련 부처는 국가의 미래나 재외국민의 편의가 아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정치권의 목표는 재외선거 무력화

먼저 정치권의 입장을 살펴보자. 재외국민이 보수적일 거라고 보았던 한나라당이 재외선거에 적극적이었고 민주당은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우편투표와 선거참여자의 범위 등 몇가지 쟁점을 두고 여러해 동안 대립해왔다. 그런데 줄곧 우편투표 추진을 공언했던 한나라당이 정개특위가 시작되고나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회의석상에서는 고성도 삿대질도 없었다. 여야 간사는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었다. 권 의원은 육사 장교에서 특채된 유신 사무관 출신이고 강 의원은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출신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예상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쟁점사항에 대해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이 타협을 해나갔다.

오랫동안 국회에서 서로 견원지간으로 대립해온 그들이 막판에 쉽사리 합의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세 차례의 특위 회의를 지켜봤던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처음 실시하는 선거에서 새로이 진입하는 230만의 유권자들이 어디로 튈 것인가. 재외국민의 성향이 보수적일 것이라고 예상은 됐지만 투표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일이다. 실제로 지난 4.11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 표가 더 많이 나왔다. 이러한 불가측성을 내다보고 미리 두려움을 느꼈던 양당은 재외선거인들의 참여를 최소한으로 하자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지난 15대 대선은 39만 표차, 16대 대선은 57만 표 차로 결정났다. 그런데 재외선거와 해외부재자투표 유권자의 숫자를 보면 경상북도만한 선거구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야 정당은 재외유권자가 선거에서 캐스팅보터가 되지 않을 만큼 무력화하기 위해 그 방법으로 우편투표 도입을 배제키로 했다.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에 대한 정치권의 배신행위이고 공작정치에 다름없다.

법 통과직후 재외선거법이 "홍준표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어이없게 했던 홍준표 의원은 미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우편투표 반대를 공언하고 다녔다. 선거의 3원칙중 하나인 비밀투표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외교부와 중앙선관위의 고위 관리들이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그들에겐 의원들의 자문에 응하는 것보다 소속 부처의 입장을 전달하고 관철하는 일이 더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면 외교부와 선관위의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외교부는 우편투표를 주장했지만

외교부는 업무적으로 재외국민을 관할하고 있어 재외선거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역선관위 위원장을 "공관장이 맡는다"는 조문을 "맡을 수 있다"로 바꾸기 위해서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 한 줄의 법조문의 차이가 현장에서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 나온 재외동포대사는 이때 적극적으로 우편투표를 주장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영국의 사례를 회심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경영하느라 일찍이 자국민이 해외에 진출했고 재외선거에 대한 노하우가 많았다. 프랑스는 우편투표를 실시하다가 부정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70년대에 중단했었다. 영국은 이런 부정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유권자등록을 할 때 ABCD중 하나에 체크를 한 뒤에 그 문자를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서 투표할 때 다시 그 문자에 체크하도록 했다. 개표시에 두 가지 문자가 맞는지 대조하여 우편투표의 최대 약점인 대리투표 등 부정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방지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의원들이 그만 하라고 눈치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외교부 대사는 끈질기게 우편투표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정개특위 위원들의 선의는 그의 말을 들어준 것까지였다. 이 시점에는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우편투표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외교부가 나서서 우편투표 제도 도입을 주장한 것은 재외국민을 어여삐 여겨서가 아니었다. 재외선거가 실시되면 각 공관에 설치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공관장이 맡고 외교관들이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선거업무에 문외한인 그들은 이 업무를 부담스러워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우편투표는 해외유권자와 국내 선관위가 직거래하는 방식이어서 외교부는 손 안대고 코풀 수 있게 된다.

최대의 경사를 맞은 선관위

중앙선관위는 사업시행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받는 일이 목표였다. 차관급인 사무차장이 나서서 자리를 지켰으며 회의장 밖에는 국과장급 직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선관위는 창립 이래 최대의 경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업무특성상 해외 근무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선관위 직원들에게 해외주재관 50여개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사적체도 일거에 해결될 것이다. 재외선거 문제의 야전지휘관 격이었던 선거국장은 국회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의원들 뿐 아니라 동포단체 대표들을 만나며 상황을 주도해나갔다. 그는 선거법 통과 뒤에 선관위 역사상 최대의 경사를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의 길을 달렸다.

선관위의 입장은 지난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인 이 회의에서 추가투표소 설치에 올인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재외국민은 50개주에 걸쳐 살고 있지만 투표소는 공관이 있는 10개 도시에만 설치돼 있다. 비행기 타고 와서 투표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주요도시에 추가투표소를 설치하자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해외파견 직원 배정과 함께 추가예산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이메일을 통한 유권자등록이 허용됐을 뿐 추가투표소는 통과되지 않았다.

우편투표에 대한 선관위의 입장은 이중적이었다. 우편투표가 세계적인 대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해외업무가 적어지므로 내부적으로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속셈을 발설하지는 못했다. 우편투표를 하게 되면 유권자들 본인이 적지 않은 국제우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좋아하겠느냐는 초치는 말이 흘러나왔다.

2009년 1월의 정개특위 법안심사소위는 이처럼 정치권과 유관 부처들간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하나라도 더 유리한 법안을 얻어내기 위해 각부처가 기를 쓰고 매달렸다.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극성맞게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던 미주한인 단체장들은 이때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소위에서는 왜 재외국민 대표들을 부르지 않은 것일까. 여야가 이미 결론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 큰 당사자가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해서 유신 사무관 출신의 노회한 여당 간사와 삼민투위원장 출신 야당 간사가 역사에 남을 작품을 무사히 만들어낸 것이다.

법이 통과된 직후 필자는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사후약방문이었다. 우편투표, 추가투표소, 선상투표, 재외선거에 국회의원 지역구투표, 국민투표 등 다섯가지가 법안에 빠진 것을 지적했다. 이 당시 재외선거를 주제로 KBS 라디오 열린토론이 방송됐다. 권경석 의원과 강기정 의원 대학교수 한사람과 함께 필자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의 자격으로 출연했다. 이날 토론에서 여야 의원은 한목소리로 통과된 법을 옹호하고 나섰다. 쟁점 법안이 통과되면 야당이 미진한 사항에 아쉬움을 표하는 전례와 사뭇 달랐다. 야당을 영어로 하면 오포지션 파티 즉 반대당이다. 반대를 하지 않는 야당에 맞서 반대토론을 해야 하는 구도였다.

재외선거를 둘러싸고 정부 부처들과 정치권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동안 재외국민의 주권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이 됐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 선거이다.

반쪽짜리 법의 결과는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 선거

10월 20일 재외국민 유권자등록을 마감한 결과, 전체 재외 유권자 223만 3695명 가운데 22만 3557명이 참여해 10.01%의 등록률을 기록했다. 지난 4월 총선 때의 등록률 5.57%보다 두배가량 늘었다지만 여전히 저조한 수치다. 언론은 사설과 기사 칼럼 등을 동원해서 낭비성 투표라고 질타했다. 연합뉴스는 10월21일자 기사에서 재외선거 등록율이 낮아서 "실효성 논란이 재점화"됐다고 썼다. 서울신문 10월23일자 사설은 "고비용 재외국민선거 이대론 안 된다"는 제목을 붙였다. 동아일보는 "재외국민선거,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박명호 동국대 교수의 기고를 게재했다.

서울신문 사설은 지난 총선 때의 전례를 볼 때 이번 대선에서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10만 명을 웃도는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대선이 초박빙 승부로 가더라도 변수가 될 수 없는 숫자이다. 재외유권자 표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이번 선거에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자는 여야 정치권의 의도는 성공했다.

선관위는 파리 날리는 해외투표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예산을 챙겼다. 해외 각지에 파견된 재외선거관 55명의 인건비를 포함해 대선 관리비용으로 책정된 예산은 265억원이다. 투표자 수를 기준으로 내국인 1표 행사에 드는 비용이 1만원가량인 반면 재외국민 1표에 드는 비용은 어림잡아 30만원 남짓된다.

재외선거를 둘러싼 게임에서 정치권도 승리했고 선관위도 승리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냈다. 패한 쪽은 재외국민이다. 재외국민들은 국내동포들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진다. 면목이 서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세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권리만 주장한다는 지탄을 받아왔다. 왜 이런 법이 만들어진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어 답답해한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금 세 명의 대선 후보들이 재외국민을 위한 공약을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각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복수국적을 위한 국적법 개정, 주민등록증 또는 재외국민증 발급, 재외국민보호법 제정 등 현안문제들이 망라돼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은 재외선거법에 대한 이들 후보들의 입장이다. 정치권이 재외국민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바로 공직선거법 개정인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첫 번째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것이 된다. 선거법 재개정이 공약의 첫 번째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재외국민 공약 여섯 개중에는 선거법 개정이 보이지도 않는다. 박근혜 캠프 인사들이 재외국민 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재외국민 공약 중 하나로 "실질적 참정권 행사를 위한 투표 인프라 개선"을 명시했다. 우편투표가 키워드인데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우편 또는 인터넷 등록 및 투표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개선"을 약속했다. 이것이 정답이다. 과거에 자신들의 손으로 지은 죄업을 스스로 씻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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