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큰 길'이고 중도는 '좁은 길'인가? 

[김제완의 좌우간에·27] 황해문화 중도특집 비평 3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2015.10.04 14:18:53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0163&ref=nav_search
 
윤성이 교수가 이념갈등의 원인을, 김진석 교수가 그 대책인 중도를 말했다면, 채진원 교수는 중도수렴의 실험에 대해서 김기협 선생은 해방기의 우리 역사 속에서 중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알려준다. 채진원 교수는 “중도수렴 확대 경향성과 그 과제”에서 중도수렴이란 양극세력이 가운데로 모이는 현상으로 일시적이 아니라 경향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가 이 글에서 예로 든 문재인과 유승민의 경우를 보자. 채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 본다.

채진원 김기협, 역사 속 중도실험의 사례 제시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유권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일련의 행보가 눈길을 모았다. 유 대표는 좌클릭 노선투쟁을, 문 대표는 우클릭 노선투쟁을 벌였다. 유 대표는 원내대표 취임부터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증세없는 복지론'의 수정을 시사했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 문 대표의 고군분투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문대표는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지난 3월 경기 김포의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말했다.

김기협 선생은 “해방기 중간파 노선의 재인식”에서 흥미로운 여론조사 한가지를 소개한다. 1946년 군정청 여론국에서 해방 1주년 맞아 실시한 해방공간 최대의 여론조사에서 중간파가 70%를 얻었다고 말한다.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자본주의, 전면 부정하는 공산주의등 두 극단을 거부하면서 제한된 범위의 사유권을 인정하는 절충적 이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건이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이 시작될 조건이었을 것이다.

김 선생은 이 글에서 역사속의 중도파 인물로 여운형이 아닌 윤길중을 소개한다. 그는 진보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고 7년의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혁신계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맞춰 행동했을 뿐이다. 조봉암에게서 인민위주 정치의 희망을 보았을 때에는 진보당에 참여했고,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을 때에는 신민당에 참여했고, 전두환 군사독재를 불가피한 일로 보았을 때는 민정당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의 역할을 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중도는 왜 인기가 없나
 
 중도 이론은 균형을 갖춘 교양인들의 생각이므로 그만큼 힘이 세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와 현실 속에서 나타난 중도파는 그렇지가 못하다. 유승민은 좌클릭으로 인해 찍혀나갔고 문재인의 우클릭은 충실한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여운형은 비참한 죽음으로 좌우합작운동의 실패를 드러냈고 윤길중은 변절자 또는 철새로 취급된다. 역사와 현실에서 나타나는 중도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같다. 중도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나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진석 교수에게 중도를 이론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기대했던 지인에게 중도운동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이때 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왜 큰 길을 놔두고 좁은 길로 가려고 하느냐. 중도가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큰 길이라는 생각에 균열이 일어났다. 사람은 많지만 조직화하기 어려운 대상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념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중도운동을 시작한다면 어디에서 동력을 얻을 것인가. 중도는 왜 당위적으로 옳으면서 현실에서는 힘을 잃는 것일까. 중도는 왜 인기가 없나.

중도가 인기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첫번째 이유는 역사는 편향의 에너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사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몸을 뒤틀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역사도 좌편향과 우편향을 거듭하면서 진전한다. 80년대 엔엘 피디라는 극좌이념은 당시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추진력 나침반 기치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당시 청년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당시 정부가 극우군사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좌파운동은 우편향 사회에서 존재의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려는 반발력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힘이 매우 크다. 역의 관계에 있는 우파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에 비해 중도운동은 그런 반발력 또는 복원력의 힘이 적다.

두 번째 이유로 오피니언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의 정치적 부자유를 들 수 있다. 그들은 대중을 위한 등대 또는 표식기 기능때문에 이쪽과 저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한다. 여간해서 중도를 택하기가 어려운 구도에 놓여있다. 송호근교수는 중용의 ‘시중의 논리’ ‘중심 이동의 미학’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진보 정권에서는 보수를 보수정권에서는 진보를 지향하겠다고 말했으나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사상적 철새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념갈등 극복 방안으로 첨언할 것은 교육과 소통이다. 국민들에게 이념갈등의 본질과 원인을 잘 알게 해주면 그만큼 갈등이 주는 억압이 줄어든다. 이른바 프로이트 효과이다. 이를 위해 중고 교과서에 좌우 이념에 대한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프랑스의 직장인들 점심시간은 2시간이다. 와인을 곁들여 점심을 천천히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수다를 즐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소통하지 않으면 극좌부터 극우까지 나뉘어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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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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