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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세계일보

[통신원리포트]佛 언어에도 여성파워 "실감"

http://www.segye.com/content/html/1999/12/15/19991215000127.html

입력 1999-12-15 14:58:00, 수정 1999-12-15 14:58:00
[통신원리포트]佛 언어에도 여성파워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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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계에 여성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언어의 여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어 맞춤법을 심의-결정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학술원)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12월4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배출해낸 우파정당인 '공화국연합'(RPR)의 총재에 처음으로 여성이 선출됐다. 당내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미셸 알리요-마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총재가 되겠다고 취임 일성을 터트렸다.
그는 이때 총재를 지칭하는 명사에 '프레지당트'라는 여성형을 사용했다. 인터뷰하는 기자에게도 '마담 라 프레지당트'로 불러주기를 요구했다. 현행 프랑스어 문법에는 대통령의 부인을 부를 때만 이같은 표현이 허용되며 총재는 남성형인 '르 프레지당'만을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 10월21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학술원 신임 원장으로 선출된 보수성향의 엘렌 카레르 당코스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직위 앞에 종전처럼 남성관사 'le'를 붙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임자인 모리스 드뤼옹의 충실한 후계자인 당코스가 이같은 요구를 한 것은 당연하다. 드뤼옹은 지난 4월 조스팽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불어의 여성화'경향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우려의 뜻을 전한 바 있다.
프랑스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역사상 여왕을 배출한 적이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여성의 참정권 허용이 이웃 나라들보다 훨씬 뒤늦은 1944년에야 이뤄졌다는 사실이 잘 말해 준다. 그러므로 여성이 고위직에 오른 사례가 드물었고,이 때문에 총재나 장관 등의 명사는 모두 남성형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야당 총재에 여성이 등극하는 '이변'이 나타난데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몇해동안 정치권의 우먼파워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세다. 97년 출범한 사회당 내각에는 여장부들이 줄줄이 포진하고 있다.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추진해 온 마르틴 오브리 노동장관과 맹렬한 기세로 사법개헉을 추진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기구 법무장관을 필두로 카트린 트로트만 문화장관,세골린느 르아얄 교육부장관,도미니크 부아네 환경장관 등 여성장관들이 핵심부서에 자리잡고 있다. 현 내각의 각료들 26명 가운데 여성은 8명에 달하며 대부분 언론의 인기정치인 여론조사 순위 리스트의 위쪽에 올라있다.
이같이 여성각료들이 괄목할 비중을 차지하다보니 그들 스스로 '장관'명사 앞에 여성관사 'la'를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전히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기준에 따르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여성형을 사용하기도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 책임자인 베르나르 까생은 최근 빠리 8대학의 정치학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그는 언론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직위를 칭할 때는 남성명사를,사람을 지칭할 때는 여성형을 절충적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프랑스어 용례가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하면 권위있는 프랑스어 사전인 로베르 사전에 오르고 그 다음 프랑스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알려진 프랑스 학술원의 통과를 거친 다음 문법으로 등재된다.
제도적으로 언어를 관리해야할 필요를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언어는 자체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어 사회 변화에 따라 변용하기 마련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우먼파워가 계속된다면 '마담 라 프레지당트' '마담 라 미니스트르'가 로베르사전에 정식으로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파리=김제완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