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5 / 조광동주간 '미제'의 시각 드러내
2008년 04월 08일 (화) 김제완
조광동 주간님 지난주에 보내주신 글은 잘 받아서 읽었습니다. 동포사회에서 존경받는 언론인 선배와 이런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된 것은 저에게 다시없는 행운입니다. 재외동포문제는 복잡하고 고유한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토론은 우연히 시작됐지만 쓸데없이 평지풍파나 일으키는 그런 저열한 것과는 다릅니다. 이 토론 주제는 참정권과 이중국적, 정체성과 현지화등의 문제이며 그것들간의 불일치에 관한 문제입니다. 동포사회에 뿌리깊이 잠복해있던 이 문제들을 끌어내어서 그 속성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조주간님께 다소 결례를 범하더라도 더욱 치열하게 토론에 임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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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워싱턴 한인회장 지냈던 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김원웅 국회의원이 몇해전에 워싱턴을 방문해 한인단체장 20여명과 만났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한 동포사회 여론을 듣기위해서였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한두명을 제외하고 모두다 반대 의견을 내놓아서 참정권을 추진할 의도를 가지고 왔던 김의원이 머쓱해졌다고 합니다. 한명숙의원도 언젠가 호주에 갔다가 참정권을 허용하면 동포사회가 분열되는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하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참정권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가고 묻는다면 저는 동포사회 내부의 이견을 꼽아야겠습니다. 이것은 참정권추진운동에 발목을 잡고 물타기를 했을뿐 아니라 국내의 반대론자들에게 반대할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그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지요. 참정권이 도입되면 동포사회의 위상이 높아져 다루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 외교부는 동포사회 내의 부정적 여론을 침소봉대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했습니다.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지난해 10월 외교부 주최 동포정책세미나에서 참정권과 이중국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참정권을 먼저 얻어서 그 힘으로 이중국적을 실현하자는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열린우리당과 대통합신당도 자당에 불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동포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당략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지난해 대선에 재외국민이 참여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은 열린우리당의 지연작전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도 같은 입장에 서서 참정권을 부여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우려된다며 신중히 도입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공언하면서 참정권되찾기운동에 엇박자를 놓았습니다.
이정도 되면 조주간님과 의견을 같이하는 세력의 힘이 더 센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난해 12월 대선 참여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정권 찬성론자와 신중론을 내세운 사실상의 반대론자들의 생각의 거리는 너무나 넓었고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벽을 느낄뿐이었지요. 그러나 적전분열로 보일까 우려해서 그동안 비판을 가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조주간님의 공격적이고 도발적이었던 첫번째 글은 울고싶은 사람 뺨을 때린 격이었습니다.
한가지 확인을 해야겠네요. 조주간님은 재외동포국회의원만들기추진운동을 보고 격렬한 비판글을 쓰셨는데요. 혹시 부재자 투표권 찾기운동은 찬성하지만 국회보내기운동은 반대하신다는 것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토론의 범위는 매우 제한됩니다. 부재자투표권찾기운동이나 국회보내기운동이나 모두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 즉 참정권에 해당합니다. 저는 줄곧 참정권 되찾기운동을 해왔으므로 모순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국회보내기운동을 보고 평소의 생각을 터뜨리신 것같네요.
참정권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반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중국적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압니다. 그들은 조주간님과 같은 시민권자들이고 동포사회에서 영향력이 더 큰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는 투표권을 먼저 도입해서 이중국적을 추진하자는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더군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죠?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막무가네이고 대화가 잘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조주간님같은 분과는 대화를 할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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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간님께서 지난주에 보내주신 토론글의 가장 큰 문제는 논리가 보편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대단히 미국 중심적이어서 북한 용어를 차용하면 ‘미제’(미국제국주의)의 시각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의 대상은 170여개국에 나가 있는 300만명의 한국 국적자입니다. 미국동포사회는 가장 힘센 사회라해도 재외동포들이 거주하는 170개국중 하나일뿐입니다. 각나라마다 사정은 아주 다양합니다. 재일동포들은 3-4대에 걸쳐 투표라곤 한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세포에는 ‘투표 DNA’가 지워져 버렸을 것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들은 한국국적과 정체성을 동일시해서 귀화하면 재일민단에 가입할 수도 없었고 한국정부는 몇해전까지 재일동포 인구에서 제외해버렸습니다. 미국동포사회에서 보면 상상할수 없는 일입니다.
재외국민 참정권제도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1백년전부터 해외진출을 했던 서구열강에게 중요한 문제였고 선진국들이 이 제도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지금과 같은 지구촌시대에 이르러 인구이동이 심해지자 선진국뿐 아니라 전세계 93개국이 해외 부재자투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만 실시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주간님의 관점을 미제의 시각이라고까지 했지만 정작 미국의 제도와 관련도 없고 미국의 정신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은 것같군요. 외람되지만 제가 가르쳐드리지요.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독수리여권을 가지고 있는 해외 거주자가 모두 600만명이랍니다. 우리의 두배입니다. 제가 빠리에서 만난 미국인중에 프랑스영주자소지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으로 성공할 생각을 하지않고 본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요?
혹시 민주당 해외유권자모임 Democratic abroad에 대해서 아십니까. 지난 2월 수퍼화요일 선거에서 오바마가 11연승했을 때 11번째 투표구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51번째 주라는 해외투표구였습니다. 전세계 130여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민주당원 2만여명이 오바마와 힐러리중 누구를 선출할지 고민하며 인터넷과 팩스 우편등을 이용해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그중에 33개국에서는 투표소까지 만들었지요. 오는 11월이면 600만 미국인 재외국민들이 투표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중에 영주권자들이 적지 않을텐데 그들이 떠나온 조국의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하는 행위는 어떻게 보십니까?
만일 조주간님의 주장이 옳더라도 그 주장의 적용 범위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 사회에만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해외참정권을 실시하는 어느 나라에서도 영주권자는 참정권을 행사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취지도 영주권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투표부여범위를 정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주간님의 글에 보이는 또다른 오류는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를 분간 못한다는 점입니다. 잘못된 근거에서 출발하다보니 더욱 잘못된 발언으로 증폭이 됩니다. 제가 쓰신 글중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미국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이 왜 한국정치에 눈을 돌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 미국시민이 된 사람이 떠나온 모국에 도움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구걸처럼 보이고... / 국회의원을 만들어 미국시민의 무슨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 미국시민들의 권익을 한국정부가 보호할수도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 미국에 사는 미국시민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한국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하면 미국사회에서 눈총을 받고 의심받고... / 무슨 능력과 무슨 명분으로 미국시민이 한국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만일 제가 이런 주장을 했다면 김제완이 정신병자임에 틀림없고 이말이 틀린 것이라면 조광동이 그럴 것입니다. 둘중 하나는 정신병자가 되어야 하는 무서운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실례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7월 국내의 한 유력한 언론사에서 제가 활동하는 ‘재외국민참정권연대’를 ‘재외동포참정권연대’라고 수차례 보도해서 이를 정정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재외동포와 재외국민의 차이가 문제였는데요. 재외동포는 외국국적자 400만명과 한국국적자인 재외국민 300만명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만일 '재외동포참정권연대'라는 잘못된 기사의 표현을 그대로 둘 경우, 외국국적 동포들이 왜 한국의 참정권을 달라고 하는가 라는 정신나간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달동안 사장과 편집국장 앞으로 여러차례 공문을 보낸 끝에 가까스로 정정기사를 얻어냈습니다. 참정권되찾기 운동의 대상은 재외국민이지 미국국적자가 포함된 재외동포가 아닙니다.
조주간님은 미국의 영주권자는 시민권 대기자이고 그래서 이들도 시민권자나 다름없다는 것을 근거로 위와 같이 거칠게 말씀하시는데 백보 양보해서 그 점을 인정하더라도 미국의 한인사회에만 해당하는 논리라는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저도 프랑스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국적취득과 영주권은 별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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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사이에 인터넷으로 이어져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현재 유럽에서 개발중인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가 운항되면 서울과 LA는 불과 6시간대에 주파하게 됩니다. 과거에 서울 부산 가는 시간이지요. 지구촌시대 세계화시대에 외국에 사는 것은 민주주의 나라들이 헌법에 규정한 거주이전의 자유의 확대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서 증인으론 나온 동아대 방승주교수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처럼 급격히 생활여건이 변하고 있는 시대에도 조주간님같은 이민1세대들과 한국 외교부 관리들의 의식은 여전히 단단합니다. 그 나라에 가면 그나라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과거시대의 논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현지화정책의 영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을 하게 됩니다.
"한국인의 자긍심을 지키면서 거주국에서 존경받는 시민이 되어달라." 지난 95년 프랑스를 방문한 김영삼대통령이 동포 간담회를 가졌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동포신문 기자로서 현장을 지켜보면서 이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두가지의 대립된 가치를 어떻게 동시에 구현할 수 있을까. 마치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 되라”는 말로 들립니다.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요? 오랫동안 이 문제는 저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조주간님과 토론을 하면서 여간해서 어느 한쪽이 설득당할 것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 되라"는 위의 말에 그 비밀이 숨어있는 것아닐까요? 조주간님과 저는 그중 하나씩만 붙잡고 있는 것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주간님께서 보내주신 앞의 토론글의 말미에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에 제 생각을 밝히겠습니다. 저의 운동방향 수정에 대한 충고와 사회운동과 정치와의 관계등에 대한 지적이었지요. 원활한 토론을 위해 하나의 토론글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역시 길어지고 말았네요. 조주간님의 건강과 건필 기원합니다.
김제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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