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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참정권 기사

[격렬토론4] 이경로 전 뉴욕한인회장의 주장

토론4/ 이경로 전 뉴욕한인회장의 주장  
 

 2008년 04월 05일 (토)  이경로  
 
 

     


  ▲ 이경로 전 뉴욕한인회장  
 

재외동포 참정권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내가 사는 미주의 경우, 거주지에서 정치력이 신장되기 위해서는 많은 동포들이 시민권을 받아야 하는데 영주권자들이 본국의 참정권을 갖게 되면 시민권을 갖지 않게 되므로 정치력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교적 논리 정연한 의견으로부터 미국에 왔으면 한국은 잊어버려야지 미련을 두고 그러느냐고 나무라는 투의 다소 무례한 주장까지의 반대의견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본국에 송금 등으로 기여하는 게 얼마인데 푸대접이냐는 본전생각으로부터 헌법에 명시된 당연한 권리라는 원칙적 찬성론이 있다.

이렇게 들으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렇게 들으면 저게 맞는 것 같다. 또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하면 이렇게 들으면 저게 틀린 것 같고 저렇게 들으면 이게 틀린 것 같이 들린다. 내 의견을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나는 양자가 다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너나없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고, 저마다의 지향점에 따라서 혹은 우선한다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뿐인 것이다.

굳이 네가 옳다 내가 옳다하고 핏대를 세우는 모양새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는 부초와도 같은 우리들의 처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서 처연한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민 와서 줄곧 미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중미, 남미, 아시아 또는 유럽등지의 사정은 잘 모른다. 때문에 미국 한인사회의 형편을 기준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 양해를 먼저 구하고자 한다.

주류사회 진입..  단체장이 되면 가장 먼저 내거는 공약사항이다. 그러나 언제나 내게는 책상에 앉아서 잠시잠깐동안에 찾아낸 공허한 구호처럼 들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은 누구나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자기에게 절실한 것은 누구에게든지 절실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자기가 계산을 하고 테이블에 앉으면 상대방도 계산을 하고 있다고 지나친 확신을 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개 눈에는 X 만 보인다는 말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주류사회 진입은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미국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1세들이 그렇게 되라고 윽박질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1세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인한 작은 성과는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누구도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충분한 결과를 얻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주류사회 진입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공허한 구호로 들린다. 틀린 얘기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 중요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지만 그 못지않은 중요한 일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완벽하게 미국시민이 되어라.

마찬가지 논리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되라는 대로 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간다. 등, 하교 길에 태극기가 게양되거나 하기될 때면 책가방을 길바닥에 내려놓고 엄숙한 부동자세로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던 나는, 지금도 태극마크만 보아도 가슴이 떨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그런 나에게 백만 불을 줄 테니 태극기보다 성조기를 보고 더 감동을 느끼라 한들, 또 나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어 한들 그리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영어가 부족하기에 한국 신문을 통해서 뉴스를 보는 동포들이 한국소식을 많이 접하고, 그러므로 한국으로부터의 탯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 주장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등 떠밀려서 미국시민이 되고 유권자가 되었다고 치자. 연설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고 누가 누구인지도 몰라서 옆에서 알려주는 대로 투표한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미국시민의 자세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축적된 지식기반이 없이, 성숙된 정치력이 없이, 그렇게라도 해서 억지로 얻어진다 해도 그 정치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러기에 진정 내 스스로 만족한 정치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허락하는 한은 누구든지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본다. 그러한 개개인의 소중한 권리행사를 자신의 논리를 앞세워 잘못된 것이라며 멀쩡한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지는 말도록 하자. 일전에 다른 지면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미주한인사회는 시민권자, 영주권자, 단기체류자 그리고 서류미비자가 공존하는 사회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들을 하나의 공통분모로 엮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위험하기 짝이 없고 무모한 발상이다. 어떤 분이 말한 대로 아예 뿌리를 옮겨서 이민을 온 사람도 많겠지만, 그러나 생활의 형편에 따라 이민을 오긴 했어도 마음과 생각이 고국산천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미국생활을 하면서 미국에 동화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나중의 이야기인 것이고 어찌어찌 될 것이니 지금부터 마음을 잡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을 헌법재판소에서 인정했으면, 그래서 영주권자들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진다면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를 반대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영주권자들을 투표도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정치적 유랑자로 내모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뜩이나 정치를 그 어떤 스포츠보다 더욱 즐기는 우리 한민족인데 말이다.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 지구촌시대... 우리가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국에도 이제 수십만에 달하는 외국인 또는 외국계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그들의 조국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대서 당장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국경의 의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고 그러한 흐름은 갈수록 심화되어질 것이다. 미래사회의 경쟁단위는 국가단위가 아니라 민족단위가 될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든, 아프리카에 살든 전 세계의 한민족이 함께 공동으로 번영해 가는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지닌 세대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강해지는 것 또한 미국 내에서의 정치력신장에 못지않게 재미동포들에게는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의 참정권을 가진 사람은 미국에서 참정권을 행사하고 대한민국의 참정권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참정권을 행사하면서 양국의 발전을 고민하고 양국 간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힘과 지혜를 모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책임 지워준 재미동포들의 몫일 것이다.

재미동포 대한민국 국회의원 만들기.. 현 시점에서는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우격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가야할 길이고 우리가 얻어내야 할 몫이지만, 고지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대오정비를 해야만 했고 무기를 점검하고 작전을 세워야만 했다.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우리들의 힘을 한데 모아서 우리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을 때, 우리가 손을 비비지 않더라도 각 정당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한인사회가 하나 됨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올바른 인재들을 대거 발굴하고 영입해야 한다. 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올바로 개선하고 룰을 지키는 훈련을 우리부터 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성과가 없더라도 미래를 준비하는 장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한인사회를 자신의 명예를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의자를 비우게 해야 한다. 명함을 만들기 위해서 단체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인사회가 만만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하며, 그도 안 된다면 그들이 설 땅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줘야만 한다. 적어도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한인사회는 이제는 끝났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추천인 명단을 보지도 않았지만 풍문에 들리는 면면들이 정말이지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개중에는 훌륭한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염불보다는 젯밥에 비중을 두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듣고서, 이런 정도의 어설픈 행정과 정치력을 가지고, 정략으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대한민국의 정당들을 상대하겠다고 나선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의 원로 언론인의 우려도 이런 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동포들을 대변하려면 먼저 한인사회와 동포들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한인사회를 위해서는 한 일도 없으면서 신문에 몇 번 났었는지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중시했던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그런 관점에서 재외동포 언론인들의 역할과 사명은 매우 중요하다. 영세한 자본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이해하면서도 뭔가 있을 텐데.. 히는 아쉬움이 많다. 지금수준으로는 동포사회의 등대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좀 더 노력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맨땅에 헤딩해 가면서 일구어 온 한인사회.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이제는 세련된 모습으로 편하게 갈 수도 있을 텐데... 한국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얻을 것도 많을 텐데...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을 텐데...

미동북부한인회연합회장 (전 뉴욕한인회장) 이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