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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세계로김 2015. 11. 19. 15:26

"두루미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2009년 02월 02일 (월)  유기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1월 29일 전체회의에서 재외국민 투표조항과 관련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공직선거법, 국민투표법, 주민투표법 개정안을 일괄 합의 처리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내에 거소를 정하여 거소신고를 한 재외국민에게 지방선거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고, 국정선거와 지방선거를 실시하는 때마다 선거인명부에 올리도록 하였다.

또한 대통령선거 및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서 재외선거제도를 도입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재외국민 중 외국에 있는 사람은 재외공관을 경유하여 주소를 관할하는 구·시·군의 장 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게 재외선거인 등록을 하고, 현지 재외공관에 설치한 재외투표소에 직접 가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번의 선거법 개정은 헌법재판소가 2007년 6월 재외국민과 선원들의 투표권을 제한한 선거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국회 정개특위의 개정안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재외선거의 방법을 재외투표소에 가서 직접 투표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투표권행사를 한정한 것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외국에 있는 공관의 숫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공관에 설치하는 재외투표소에 가서 직접 적는 방법으로만 투표하도록 하면, 과연 얼마만큼의 재외국민이 투표를 할 것인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투표율이 거의 한 자리수를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선원에 대하여 선박을 정선(停船)하고 가까운 항구에 있는 재외공관에 가서 직접 투표하도록 한 것은 선원에 대한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이 투표를 하기 위해 가까운 국가의 항구에 정박하고, 재외투표소에 가서 직접 투표하도록 한 것은 항해하는 선박이라는 특수성을 무시한 것으로서 전혀 실효성이 없다.

본 의원은 2008년 7월에 재외국민과 어선원들에 대한 참정권 보장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재외국민에 대해서는 우편투표를 인정하고, 어선원에 대해서는 해상부재자투표를 인정하여 팩시밀리를 이용해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그러나 비밀보장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러한 투표방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재외국민과 어선원의 참정권을 형식적으로만 인정하고 실질적인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불편한 제도로 인하여 권리행사가 제한된다면 이는 다시 위헌판결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개특위의 이러한 개정안은 여우집에 초대된 두루미에게 접시에 음식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또한 제철회사의 근로자가 용광로를 일시 정지시키고 투표를 하라는 것과 같다.

선원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항로를 이탈해서 선박을 항구에 정선시키고 투표를 하라는 것인데, 상선의 경우에 정해진 항로를 이탈하는 이로(離路)는 중요한 계약위반으로서 운송인은 면책의 이익을 빼앗기게 되어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과 호주는 이미 선상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00년 5월부터 해상투표제를 도입하였고, 팩시밀리장치를 이용하여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원에 대한 참정권 인정이 본질적인 문제이고, 비밀투표 보장은 이에 수반되는 수단의 문제에 불과하다.
수단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선원에 대한 투표방법은 재고되어야 한다.

국회 정개특위에서 여야가 합의하여 마련한 선거법 개정안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여야가 합의한 것이라 해도,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개정안을 바로 잡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취지에 반하게 되고, 재외국민과 선원들에게는 여우잔치에 초대되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두루미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취지를 존중하고 이에 맞도록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즉, 많은 재외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를 인정해야 하고, 선원들에 대하여는 선상부재자투표를 인정하여 팩시밀리를 이용한 투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서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2009. 2. 2.

한나라당 유기준 국회의원(부산서구)
출처: 한나라당 국회의원발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