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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금융위기 직격탄’ LA 한인타운을 가다

세계로김 2015. 11. 19. 11:48

‘미 금융위기 직격탄’ LA 한인타운을 가다 
“92년 폭동 이후 최악” 교회 헌금까지 반토막
 

 2008년 10월 29일 (수)  한겨레   
 
 

▲ 금융위기의 ‘본토’에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도 경기위축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환율폭등으로 인한 한국 관광객 감소 등으로 이들은 ‘최대의 경기불황’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황의남 독자 제공  
 
한인 상인 매출 반토막 “가겟세도 못낼판”
부동산 개발 붐때 한국 건설사가 매입한 땅
경기침체로 첫삽 못뜨고 빈터만 덩그라니

» 금융위기의 ‘본토’에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도 경기위축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환율폭등으로 인한 한국 관광객 감소 등으로 이들은 ‘최대의 경기불황’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황의남 독자 제공

‘1992년 엘에이(LA) 소요사태 이래 최악!’
지난주 찾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얼어붙은 경기 앞에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태양이 무색해 보였다.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미국 소비시장이 본격적으로 위축되며 그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되냐고요? 지금은 살아남을 수 있냐고 물을 때에요.”

한인타운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가에서 운동화가게를 하고 있는 장마리아씨는 “10월 들면서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100달러짜리 사던 이들이 이젠 50달러짜리 사는 데도 망설인다”고 말했다. 이미 ‘불황 모드’에 들어간 미국 소비시장에서 특히 더 위축된 이들은 유색인 계층, 곧 중남미나 아시아계·흑인계들이다. 경기침체 여파로 구조조정의 우선순위가 이들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다, 건설경기가 추락하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이들의 수익도 당장 줄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요 손님인 한인타운에는 타격이 직접적이다.

여기에 환율폭등으로 유학생들의 씀씀이가 줄고 한국 관광객들이 뚝 끊어지며 한인타운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올림픽가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제이슨 곡은 “18년간 이 장사를 했는데 92년 폭동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며 “우리는 매출이 한 20~30% 줄었지만 40%씩 줄어든 데도 흔하다”고 전했다.

불과 1~2년 전까지 폭등했던 부동산 붐 여파로 한인타운 가게 임대료도 수십프로씩 상승한 터다. 5년 계약을 맺었던 이들은 이제 매출액으로 임대료도 댈 수 없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환율폭등으로 미국 입국 무비자 개시에 대한 기대도 줄어들었다.

상업대출 비중이 높았던 몇몇 한인계 은행들의 주가는 한두 달 사이 반토막이 나 버렸고, 현금 확보에 나선 일부 은행은 한인들의 자동차론마저 막아 버렸다. 한인 교회들의 주말헌금도 50%로 뚝 떨어졌을 정도다. 한 교회의 경우 주말마다 신도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운행하는 버스 대수를 3분의 1로 줄이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한인타운에서 원스톱 쇼핑을’을 내건 캠페인이 시작되는 등 “힘든 시기를 서로 견디고 넘기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사실 미국은 ‘론의 나라’였다. 주택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게 대출로 움직였다. 월가의 금융위기는 바로 이 ‘론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한 한인계 변호사는 “가게주인과 분쟁이 잦아지면서 소송도 많아졌지만, 이들로부터 받은 개인수표를 막상 은행에 확인하면 한도를 넘는 경우가 열에 여섯꼴”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중심상가인 윌셔가 한복판에 있는 빈땅 수천평은 ‘엘에이 개발붐’의 유물처럼 돼 버렸다. 이곳은 2006년 한국의 ㅅ건설사가 40층 주상 복합건물을 짓겠다고 사들인 땅이다. 이 지역 부동산 업자들은 “당시 2300만달러 정도였던 땅인데 한국 업체들 사이에 경쟁이 붙으며 결국 3천만달러를 훨씬 넘겨 사들였다”고 전했다. 지분을 가진 미국 브로커와 소송이 붙으며 공사가 지연되는 사이 부동산값이 떨어지고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투자에 참여하기로 했던 은행은 손을 떼 버렸다. 이젠 착공도 요원해진 셈이다. 버몬과 윌셔 코너에 있던 복합상가 터도 한국 건설회사가 사들였다가 결국 미국 회사에 넘겼다. 남가주한인부동산협회 폴 정 이사장은 “협회 차원에서 올 5월에 한국에서 열린 해외부동산박람회에 나가 큰 계약을 거의 성사시켰는데 환율까지 올라 버리니까 한국 회사가 꼼짝을 않고 있다”고 전했다.

300만달러 이상 부동산 구입이 자유로워지며 슬금슬금 늘어나던 한국인 개인들의 매입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윌셔가나 올림픽가 부동산에는 한국인이나 한국동포를 대상으로 한 콘도미니엄(한국의 고급아파트) 분양이 한때 성황이었다. 윌셔가의 콜드웰 뱅커 부동산 사무실엔 한국인 탤런트가 나오는 광고 등 새로 짓는 콘도 공고방송을 틀어놓는 텔레비전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박필립(필립 박)씨는 “우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콘도도, 지난 6개월 동안 21채 가운데 단 하나도 분양이 안 돼 이번주말에 반짝 세일 행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자녀 조기유학을 위해 건너오는 ‘기러기 가족’ 가운데엔 20만~30만달러면 가능한 투자비자(E2비자)를 받은 이들이 급증했다. 한국의 부동산값이 오르면서 전셋돈로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미에스크로 조익현 대표는 “최근 투자비자 신청도 뜸해졌다”고 전했다.

미국 금융가의 ‘한계 없는 질주’에 대해 박필립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29년 부동산을 했는데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치르면서 경기부양책을 풀어놓는 걸 보며 미쳤다 했어요. ‘노 다운페이, 노 인터레스트, 노 크레딧.’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으로 계약금도 없고 이자도 한없이 미루며 신용도도 따지지 않았던 상황을 일컫는 표현) 이건 망국의 길이에요. 실업률이 이렇게 올라가면 당장 아파트가 30~40%씩 공실이 됩니다. 2004년 이후 엘에이에 부동산 샀던 사람들은 졸도할 일입니다.”

로스앤젤레스/ 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