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변두레마을 기독교장로부부 조선족 죽이기
[기고] 연변두레마을 기독교장로부부 조선족 죽이기
2008년 03월 12일 (수) 리동춘
민들레마을 대표 리동춘씨가 보내온 원고를 게재한다. 리씨는 현재 연변에 민들레마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조선족 몫의 인민대표를 역임한 조선족 사회 지도자중 한명이다. 논란의 다른 한쪽인 두레공동체쪽에서 이견을 보내온다면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게재할 것임을 밝힌다. --편집자
연변두레마을의 형성
연변두레마을은 한국두레공동체운동본부(대표: 김진홍)가 1997년에 연변에 설립한 기업이다. 설립취지는 향후 동북아시대를 대비하는 한민족경제공동체모델을 건설한다는 것, 그리고 본 지역을 생태산업도시 (에코폴리스)로 건설하여 생태문명사회건설과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것, 그 실행 이념으로 생명기본의 땅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거창하면서도 현실성있는 일이라 말하겠다.
하여 두레공동체는 연길시정부로부터 의란진 련화촌의 땅 400헥타르를 50년간 임대하게 되였고, 그 고장에서 살던 조선족농가 40호는 그로 인해 뜻밖의 강제이주가 되여 뜻 대로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모두가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는 신세들이다. 외지에서 떠돌던 이들 이주민들은 죽어서라도 제땅에 묻히고 싶다고 하면서 죽은 후 슬그머니 지금의 연변두레마을에 <빼앗긴> 자신들의 고향인 련화촌 앞뒷산에 묻혀지면서 묘지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연변두레마을의 현실
세상일이 자기의 뜻에 의해 좌우지 되는 법이 없다. 한국두레공동체의 계획은 현명하고 세상을 앞서가는 일이였으나 실제적으로 현장에 파견되는 책임자들은 그 뜻을 받들어 가지 못했다. 이들 책임자들은 그 뜻에 반해 중국정책에 위배되는 선교활동과 탈북자수용활동을 벌리다가 강제출국을 당한 사람도 있고, 본부 몰래 가짜 계약으로 땅을 남에게 넘겨주어 법정 소송에 걸렸다가 현장책임자들의 고의적인 늑장대처로 참패하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대체로 기독교신도들에게 선교하고 휴식하는 공간과 찾아오는 유람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법을 피해 다니는 다단계판매업자들에게 위법활동을 하는 모임 장소로 제공하면서 돈 벌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신도들 앞에 체면을 유지해야 하므로 연변두레마을을 살리기 위해 북한에 묘목 보내는 일을 한다는 명목하에 신도들을 슬득시키면서 한국두레선교회에서 지금도 매월 몇 천딸라의 보조금을 조달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이다.
민들레조선족마을의 형성
두레공동체본부는 지난 과정의 실수를 경험으로 실패의 국면을 타계하고 새로운 시작을 기하여 현지인들과 함께 일을 만들어가면서 조선족사회에도 기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결책을 하게 되였다. 하여 대지 일부를 민족사회활동에 관심있는 조선족기업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칭 조선족발전위원회에 기여하고 조선족기업인을 공동개발위원장으로 위촉하게 되였다. 그로서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라는 조선족 사회적기업체가 설립하게 되였다.
민들레회사는 두레공동체의 취지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취지인 생태경제문화공동체조성과 비슷한 맥락을 하고 있다는데 의미를 두고 공동개발위원장을 승낙하면서 7명의 개척팀을 무어 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공동개척자의 신분으로 민들레는 전체적인 개발계획서를 기획하고 개발도면까지 그려서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 상정하고, 그 사이 복잡하게 엉켰던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연변전통장류단지> 조성사업에 착수하면서 이 지역을 두레본부와 함께 생태경제문화산업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일을 하여 왔다.
민들레마을의 현실
그 구체적인 사업중에 한국두레공동체본부는 경영부진으로 골머리를 앓던 원래 연변두레마을에서 운영하던 된장공장을 민들레회사와 한국순창진미식품주식회사와 합작을 하여 운영권을 민들레회사에 넘겨주는것이 더욱 이롭다는 판단으로 2005년12월23일자 한국순창진미식품주식회사와 민들레회사 등 3자의 합의로 합작경영 약정서를 한국두레공동체사무실에서 공식체결하였다.
약정에 따라 합작 3자는 20일후인 2006년1월14일자로 서로가 대표를 파견하여 현장을 점검하고 공장과 기계설비 및 물품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공장의 열쇄를 바꾸고 <순창두레마을>로 상표를 정하고 경영전체를 민들레생태산업유한회사와 한국순창진미식품주식회사에 인계해 주었다.
일을 준비하고 추진하던 중 두레공동체는 연변두레마을의 현장책임자를 바꾸면서 지금의 박상돈집사. 임명자장로를 파견시켰다. 그들은 부임되자 민들레마을측에 통보도 없이 합작공장의 자물쇠를 뚜드려 부수고 된장공장을 강제로 점령하였다. 말하기를 상부에서 부수라고 해서 부수었다.(그런데 정작 상부에서는 그런 지시를 한적 없다고 한다) 하여 민들레측에서 여러차례 공장을 돌려줄것을 우호적으로 협상했지만 거절만 당하고 민들레측은 그 옆의 2층건물을 창고로 쓰면서 일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이 부임하면서부터 연변두레마을과 민들레마을은 끊임없는 불화속에 모대기게 되고 멀쩡한 민들레마을은 기독교신자들의 올라 지금까지 곤욕을 치루고 있다. 불화의 원인이라면 조선족들이 모여서 만든 민들레마을을 좌우지하고자는 항상 상위위치의 심리적 작간이 있을테고, 나아가서 민들레가 잘 되여 나가면 저들의 무능이 보여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지금 민들레가 두레본부와 만들어가고자는 생태산업도시 (에코폴리스)는 사이비폴리스로 이상주의적이라고 하면서 본부에서 정한 발전방침을 전면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사건건 문제를 만들어 본부에 거짓 보고를 하면 본부에서는 하는수 없이 차비를 팔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현장에 내려와 조사하군했다. 조사하면 오히려 저들이 거짓말한 것이 들통나 멋적게 망신당하기를 밥먹듯했다.
그들은 민들레마을을 비하 하기를 민들레마을이 식당경영을 준비한다고 하면 불문곡직하고 "유흥업술집을 한다"고 떠들고 다녔고, 기독교 지역인데 "민들레상점에서 술과 담배를 판매한다"(사실 자기들 내부에서도 몰래 술 담배를 판매하였다.), 한족에게 경영을 맡기면 "타민족에게 주면 안된다", 중국조선족발전연구회에서 토템문화연구세미나를 한다고 "기독교 취지와 반하는 미신활동을 한다", “한족에게 밭을 도급주면 안되다”.(사실은 자기들이 한족에게 땅을 부치도록 하면서), 민들레마을 내에 장승조각을 세우면 “기독교문화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 길수리를 제안하면 “자기네는 일년에 반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사실 길 사용량이 제일 많으면서)고 하면서 길수리를 거부한다든가, 또한 공공연이 “민들레회사 책임자는 사기군이다”, 고 어수선부분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서 날조하는 등 하여튼 헐뜯고 비방중상하는 일은 골라가면서 직업적으로 하는 것같았다. 마치 기독교 장로는 원래 이런 행위를 하는 직업인가 하도록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민들레회사는 말 싸움에 무기력하고, 더욱이 두레공동체운동본부와의 대의명분과 취지를 지키므로하여 이들이 무어라 하던 맞서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일단 묵묵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만 하여 왔다. 그 중 전통장류단지조성사업은 두레공동체운동본부에서도 아주 아이디어이고 좋은 일이라 평가하면서 심지어 투자까지 끌어줄것이라 격려해주어 왔다.
결국 민들레는 모든 역량과 힘을 모아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적인 전통장류단지(전통장류연합국)을 만들어 내면 연변두레의 현장책임자들이 스스로 슬득되고 화해가 될것이라 기대하여 왔다.
그런데 한창 사업이 이루어지는 찰라에 대지소송사건이 터졌다. 현장책임자가 두레본부를 속이고 땅을 남에게 준 것을 모르고 본부에서 그 땅을 민들레마을에 주었으니, 먼저 땅 받은 임자가 법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에서 두레마을이 패소했다. 2심 상소를 해야 하지만 연변두레마을 책임자들은 상소를 하지 않겠다고 떠벌리면서 법정상소 기한을 고의적으로 넘겨버렸다. 연변두레마을 현장책임자의 속 궁리는 간단했다. 땅은 누구가 가지던 이미 연변두레마을 땅이 아니니 오히려 패소하여 같은 기독교장로인 한국인에게 주고 민들레는 몰아내자는 심산이였다. 결국 2심 상소에서도 두레마을은 패소하였다. 그로하여 민들레는 4년간의 피땀으로 가꾸어 놓은 강산이 물거품으로 되여 버렸다.
이래 저래 민들레회사는 갈곳이 없게 되였다. 그 땅위에 건설하던 신축장류공장도 더 이상 진척시킬수가 없게 되였다. 이를듯 진퇴량난에 빠진 상황에서도 민들레회사의 전통장류제품은 수출이 이루어지고 시중 판매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한국 바이어들과 국내식품회사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업체들과 업무제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갈곳 없는 민들레는 다시 연변두레마을 책임자를 찾아서 지금까지 당신들의 차실과 고의적인 행위로 인하여 우리가 갈곳이 없으니 합작공장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역시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럼 민들레가 한 발짝 물러 설테니 공장을 함께 쓰는 것으로 하자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민들레라 이 참에 짓밟겠다는 심산으로 아예 무자비하게 거절하는 것이였다. 그런데 생산공장과 제품을 확인하려 이미 날짜를 밝히고 바이어들이 찾아오기로 했으니 하는수 없이 민들레회사가 사용하는 창고 건물에 나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손님을 환영하는 프랑카드를 걸고 영접준비를 했다.
한마디 보충 설명을 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업체가 자기 나라의 인민들에게 영양과 기능이 탁월한 된장을 공급하고 싶은 마음에서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여 일차 담판을 하고, 2차로 현지공장을 시찰하기로 했던 것이다.
하여 어느 나라에 가나 조선민족이면 된장을 떠날수 없듯이 조선에서 급히 수요되는 된장을 생산하고 수출 및 지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에 이르러 시찰단이 오기로 했는데 연변두레마을에서 갑자기 참관단이 도착하는 날 새벽에 중국의 국기법을 무시하고 (법규상 중국에서 외국기발은 반드시 중국기발과 함께 걸게 되여 있음) 지금까지 걸지 않던 태극기만 달랑 내다 걸고 대문을 꽁꽁 닫아 채우고 한국 영지에 왜 조선사람이 오는가 하고 현대판 3.8선을 긋는 것이였다. 사실 한 대문을 쓸뿐이지 아무런 업무관계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민들레측은 공장에 안 들어 갈테니 민들레회사 자체의 창고에는 들어가야 되지 않느냐? 대문을 열어 달라고 했으나 결국은 인정사정 없이 거절당하게 되면서 사업시찰은 무산되고 말았다.
소위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기독교신자, 그것도 장로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성토하지 않을수 없다. 남의 밥통을 그것도 북한기업의 어려운 발전에 고의적으로 훼방을 놓는 그 비열한 수단은 천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민들레마을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민들레마을은 여직까지의 공든 탑을 버리고 두레공동체로부터 보상을 받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것인가? 허나 두레에서 과연 언제 얼마의 보상을 줄것인지? 묘연한 상황이다. 아니면 원래의 합작공장을 되돌려 받고 두레마을의 나머지 땅을 받아 새롭게 그리고 함께 전통장류단지를 건설할 것인가? 향후 거취에 대한 고민이 크다. 과연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물론 진가는 양측의 말을 다 들어 봐야지만,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간의 갈등을 단지 문화적인 차이로만 이해해서 될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기독교인의 허울쓰고 성경에 먹칠하고 진정으로 선량한 전체 기독교인들과 한국인들, 그리고 대한민국에 얼굴에 먹칠 하는 불량한 행위를 제발 자제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민들레마을 대표: 리동춘/2008년2월29일/연변민들레마을에서
세계로신문(http://www.toworld.kr)
김영택
2015-01-13 18:36:15
이동춘 선생님을 한 번 만나뵙고 십습니다.
이동춘 선생님을 한 번 만나뵙고 십습니다.
연락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