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국적은 한국인데 참정권 왜 제한하나"
국적은 한국인데 참정권 왜 제한하나"
2002년 03월 08일 (금) 오마이뉴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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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한국인데 참정권 왜 제한하나"
재일동포 5명 선거권 미부여 손배소 제기
황방열 기자 hby@ohmynews.com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을까? 귀국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현행 선거법은 외국근무, 유학 등으로 국외에 거주하는 국민들에게 부재자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국적의 재외국민들 역시 선거기간에 한국에 있더라도,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 이들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한국국적을 고집하고 있지만, 현행 선거법은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사람들에게만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정지석 변호사(왼쪽)와 이건우 씨가 서울지법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황방열
재일동포 2세와 3세 등 5명은 국가가 헌법에 규정된 재일동포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이를 장기간 방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훼손해왔다며 정신적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건우 재일동포 국정선거 헌법소원단 대표 등 재일동포 5명은 8일 오후 서울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원고 당 1천만원씩 모두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공익소송위원회 소속 위원 변호사 13명 전원의 명의(대표 변호사 정지석)로 낸 소장에서 이들은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모든 국민에게 천부인권의 기본권으로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재일동포를 비롯한 재외국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 것은 헌법의 보통선거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선거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건우 씨는 "국가가 당연히 보장해야 할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아, 그동안 선거권도 없이 외국에 살면서 겪은 민족적 자긍심의 훼손 등 정신적 피해를 금전으로 환산한다고 해서 보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온갖 민족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재일 동포들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도록 촉구하고 관련 입법을 서두르게 하기 위해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정지석 변호사는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 등으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해방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현지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후손으로 자발적인 해외이주민과는 달리 자의에 의한 외국거주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며 "국가가 이들 재일동포들을 보호할 의무가 더욱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기본권 침해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재일동포들이 일본에 거주하게 된 특수한 사연이 있긴 하나 상당수의 국가들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대다수 OECD 국가들은 물론 대만, 알제리 등도 재외국민들에게 우편이나 재외공관 투표, 대리투표, 귀국 투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일본도 지난 1998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2000년 6월 실시된 중의원 총선거부터 3개월 이상 국외에 체재하는 모든 재외국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영국 등 영연방 일부 나라를 제외하면 자국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한 외국의 영주권을 갖고 있는 모든 재외국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한편 민변 공익소송위원회는 이번 소송을 공익소송으로 지정해 소송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한편 소속위원 전원 공동으로 소송을 맡기로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단 한번도 참정권 가진 선거를 해보지 못했다."
▲이건우 씨
ⓒ 오마이뉴스 황방열
일본 효고현 산다시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재일동포 2세 이건우 씨.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의 본적은 충남예산이다. 아버지의 고향이다. "어떻게든 고국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대학(고려대학교 법학과)을 한국에서 나왔다. 덕분에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한다.
그는 97년 8월,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재일동포를 비롯한 재외국민들의 참정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헌법 재판소는 "위헌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선거권에 대한 입법은 했으나 그것이 불충분해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므로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또 재일동포들이 참정권을 인정했을 경우 북한 주민이나 조총련 계 동포들의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선거의 공정성확보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기각사유였다.
경제적으로 일본에서 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그는 왜 이렇게 조국의 참정권을 얻고 싶어하는 것일까.
-재일동포의 참정권 회복운동을 벌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95년에 재일 거류민단을 중심으로 일본 정부에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일본의 지방자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고국에서의 참정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일본에서 참정권 행사를 요구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현지 토착화를 위한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대한 의식은 희석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민단의 이런 활동은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95년에 경북대 김영호 교수와 당시 박계동 의원 등과 함께 '재일 국민 선거권회복을 위한 시민연대'(대표 김영호 교수)를 만들어 활동에 나서게 됐다. 이 활동이 이슈가 되면서 당시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공개질의를 했고 후보자 모두 '당선되면 임기중에 선거권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을 했고, 방송에서도 취재했으나 유야무야됐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난 95년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민족차별에 의해 일본 아이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했다. 지금도 상당부분 그렇지만 조총련과 민단이 심하게 분열돼 있었는데 인권이라는 주제로 접근해 '더불어 사는 산다시민의 모임'을 만들어 조총련과 민단이 함께 이 문제에 나서는 계기가 됐고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납세·국방 등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데 권리만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정지석 변호사) 참정권과 같은 기본권은 혜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의무에 대한 반대급부도 아니다. 세금 안 냈다고 투표를 못 하는 국민이 있는가. 또 국가간의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거주 국가에서만 세금을 내면 자국에서는 세금을 안 내게 돼 있다. 박찬호가 한국에서도 세금을 내지는 않는다. 또 국방의 의무는 현행법상 재외국민들에게 부과되지 않고 있다."
-헌법소원을 냈었는데.
"'우리는 아직 광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97년 8월 15일에 맞춰 헌법소원을 냈으나 기각됐고, 이후 우리 활동에 큰 부담이 됐다."
-일본에서 재외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나.
"재일동포 65만명 중 50만명 정도가 해당된다. 15만명은 무국적자다. 정확히는 남도 북도 아닌 조선인으로 남아있다. 물론 여기서 조선은 하나의 기호로만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있는 것은 북한은 이들 15만명의 대표 2명을 북한 의회에 참여시키고 있다.
(정지석 변호사)전 세계적으로 보면 600만 해외동포 중 약 300만 명 정도가 재외국민에 해당된다고 한다. "
-참정권 회복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일본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대한 참정권 확보운동의 열기가 높아 아직 분위기가 약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서 설명하면 '그런 생각조차 못해봤다'는 사람이 많다. 활동여하에 따라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참정권이 회복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여하겠다는 것인가.
"지방자치선거는 주민자치라는 원칙에 따라 일본에서 하는 게 맞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다. 선거 홍보 등의 난점을 얘기하는데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민단 신문도 대부분의 재외국민 가정에 다 들어간다. 이를 활용하면 된다. 투표장은 해외공관들과 각지에 있는 민단 사무실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한국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학교반장 선거 같은 것을 제외하면 참정권에 의한 투표는 한 번도 못해봤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지방선거 투표권도 안 준다. 그나마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우리 동포들의 참정권 요구에 대해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할 사람들에만 투표권을 인정하겠다'며 거부했다. 한국에서는 재외국민이라고 안 된다고 한다.
이제까지 한국은 일본 거주 동포들에 대한 정책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2세, 3세로 갈수록 민족 정체성이 희박해지는 반면, 일본으로의 동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민족의식을 자각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수단이 선거다.
한국입장에서 봐도 수십만 표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정책적인 관점에서 재일 동포들에게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명색이 국가라면 뺏긴 영토와 국민을 되찾는 게 기본인데 재일 동포들은 방치해왔다."
재외국민 관련 선거제도의 변천사
우리 나라에서 부재자투표 제도가 도입된 것은 4.19혁명 직후 실시된 1960년 7월 제5대 민의원 선거부터다. 그 후 재외국민의 수가 적고 민도가 낮아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와 관련한 특정 법률조항이나 정치적 문제제기가 없다가, 1966년 12월 제58회 정기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정된 선거법에서 국내에 주소를 가진 해외부재자의 우편투표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66년 국내 주소 가진 해외부재자에 대한 우편투표제 도입
이에 따라 67년(제7대)과 71년(제8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파월 한국군, 서독파견 광부·간호원들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72년 10월에 공포된 유신헌법에 의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 일반의 직접 선거권이 박탈당했으며, 72년 12월 30일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 부재자신고대상을 '국내거주자'로 한정하는 문구가 삽입됨으로서 단기 해외체류자를 포함한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가 제한되기 시작했다.
12월의 통일주체 국민회의법에서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국내 거주자만 부재자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고, 국회의원선거법에서도 관련내용이 마찬가지로 바뀌었기 때문에 해외부재자는 더 이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같은 해외부재자 투표 제도의 폐지에 대해 국회 정치담당 연구관인 이종훈 박사(정치학)는 지난 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재외국민 참정권 법안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주월 한국군 철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주월 한국군은 이 제도 폐지 직전인 71년 11월 월남 정부와 협정체결을 계기로 단계적 철수를 시작하여 73년까지 철수를 완료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72년 유신 이후, 정치적 목적으로 해외부재자 투표 전면금지
실제로 67년 5월의 제6대 대선과 67년 6월의 7대 총선에서는 각각 4만명이 넘는 주월 한국군이 해외 부재자투표에 참가했다.
이렇게 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이 해외 부재자 투표를 인정한 것은 전체 해외거주 재외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파월 한국군의 표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적으로 볼 때 정권의 적극적인 지지계층인 군인에게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이러한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들이 귀국하게 되자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이 박사는 또 유신체제 구축과 더불어 해외부재자 투표를 신속히 폐지한 배경에는 "민주화의 배후 지원을 담당했던 재미·재일 동포 사회를 포함한 재외국민 사회전체로 투표권을 확대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뒤 현재의 '공직선거 및 공직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직선거법)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친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유관조항이 그대로 유지·존속되고 있다.
95년 재외국민의 수가 5백30만, 단기체류자가 29만명에 이르고, 재외국민 특히 해외 일시체류 재외국민에 대한 참정권 회복요구가 잇따르자 정치권은 지난 97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재외국민에 대한 투표권 문제를 협의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며 교포사회가 여야로 갈려 반목과 갈등을 부추길 우려를 제기해 재도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 97년 이건호 씨등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99년에 헌법재판소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국토 분단현실, 선거의 공정성 확보, 선거기술상의 문제, 납세의무 등 국민의 의무와 선거권의 관계를 고려할 때 입법목적에서 정당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와는 별도로 99년 재외동포법을 제정하면서 국내에 1개월 이상 체류하는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법무부가 국내체류 1개월 이상자에게 국내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초안을 냈으나 기간이 너무 짧다는 비판이 있어 3개월로 연장하는 수정안을 다시 냈다.
그러나 이 수정안도 해외에 거주하는 일시체류 재외국민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3개월 이상 국내체류 재외국민 전체에 대해 투표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는 의견에 따라 국회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2002/03/08 오후 10: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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