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재외국민 참정권 무시는 횡포”
[포커스] “재외국민 참정권 무시는 횡포”
-법안 개정을 위한 공청회 개최…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 기본권 돌려줘야”-
2002년 02월 21일 (목) 뉴스메이커 111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올해는 선거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철이 되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 다. 명백히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투표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해외거 주 국민들이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헌법 제24조가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들에게는 참정권이 없다. 장기체류 이민자는 물론,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 유학 등의 사유로 해외에 단기체류하는 사람들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부재자투표를 할 수 없는 데다가 투표만을 위해 귀국하기 힘든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다. 투표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소수의 문제도 아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한 한겨레네트워크’(공동간사 김제 완·정지석)측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직장과 유학 등을 위해 해외 단기체류하는 국민은 30만 명. 여기에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해외교민 2백60만 명을 합하면 3백만 명에 육박하는 국민들의 소중 한 1표가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거의 계절을 맞아 한 동안 잊혀졌던 재외국민의 참정권 문제가 다시 스포트 라이트를 받 고 있다. 지난 2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공청회가 열렸다.
▲“3백만 명에 육박하는 국민권리 침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집행위원장 서경석 목사)와 한겨레네트워크준 비위 등이 함께 주최한 ‘재외국민 참정권 법안개정을 위한 공청 회’. 국회 연구관으로 있는 이종훈 박사와 재일동포 이건우씨 등이 발제를 맡았다. 1차적으로 올해 말 대선에서부터 해외 단기체류자들 에게 부재자투표의 기회를 주고, 장기적으로는 국적을 갖고 있는 재 외동포 2백60만 명에게까지 참정권 회복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것이 이날 공청회의 목적.
오사카 동포 이건우씨는 발제를 통해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앞에 평등하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면서 “거주국 에서의 생활향상을 위해 영주권을 취득했더라도 마음을 여전히 고국 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 고국을 버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횡 포”라고 주장했다. 이종훈 박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 원국가 가운데 해외부재자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한국 이 유일하다면서 경제 발전과 지속적인 민주화로 선진국 문턱에 들 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우리와 함께 해외부재자투표를 인정하지 않던 일본은 2000년 5월부터 이를 허용하고 있으며 20세 이상 일본 국민으로 해 외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중의원(하원)·참의원(상원)선 거에 모두 투표 기회를 주고 있음을 지적했다.
방청객으로 발언 기회를 요청한 변진학씨는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재외국민의 참정권 회복은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 후 두 차례에 걸쳐 상사 직원으로 오사카에 주재했다는 그는 일본 경제 장기 침체로 인해 재일동포 파친코산업과 은행 등이 잇따라 도 산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교민 네트워크를 구성, 지원해 긍극적 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방치되고 있는 재외국민들의 기본권을 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해외부재자투표의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 려 미국(1975년)이나 독일·영국(1985년) 등 구미 선진국들보다 앞서 도입했다. 1966년 12월 대통령선거법 개정 당시 처음 도입해 1972년 10월유신까지 두 번의 대통령선거와 두 번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실시 한 바 있다. 그러나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왜곡된 제도였다. 월남파병 국군장병들의 여당 몰표를 거둬들이기 위해 도입됐던 부재자투표제는 1971년 11월 파월국군 철 수 결정으로 필요성이 없어졌다.
▲단기체류 부재자투표 부활 움직임
재외국민들의 참정권 회복 요구가 가시화한 것은 1997년. 재일동포 2, 3세와 수출입은행 파리 지사에 근무했던 공두식씨가 각각 투표권 회복을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된 바 있다. 헌법재판 소는 투표과정의 공정성과 비용 문제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해외부재자투표 요구를 기각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규모와 민주 주의 수준이 훨씬 뒤떨어졌던 1960년대 말에 이미 해외부재자투표를 실시했던 경험이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볼 때 설득력이 없는 이유였 다.
갈수록 높아지는 재외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언제까지 묵살할 수만 은 없어 보인다. 최근엔 여야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우선 해외단기체 류자들을 위한 부재자투표제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 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우선 올해 말 대선에서 해외부재자투표 를 허용하기 위해 선거관련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 정”이라고 말했다.
유난히 ‘핏줄’을 중시하면서도 ‘단지 해외에 거주한다는 이유만 으로’ 박탈해온 기본권이 회복될지 주목된다. 〈김진호/국제부 기자 j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