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 at me once(한번만 봐주세요)"
미국은 아니다 KBS 이몽룡 특파원
2011년 06월 27일 (월) 세계로
KBS 이몽룡기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보고 겪은 미국과 미국동포들에 대해서 "미국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여러해전에 나온 책이지만 흥미있는 대목을 소개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미국에 이민왔으니까 모두 영어에 능통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영어한마디 쓰지 않고 살수 있다. 미국의 어지간한 데도시라면 한인타운이 있기때문에 서울에서 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생각처럼 영어기 능숙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능숙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네이티부 스피커의 그 유창한 영어와는 비교할수가 없다.
영어는 절대 쉬운 언어가 아니다. 새계각국의 언어를 짜집기 해놓은 것이라 그만큼 일관성이 없고 예외가 많다. 관사나 시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어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더 어렵다.
미국에 와서도 일에 파묻혀 영어를 쓸기회가 드믈었거나 한국인들과 어울려 살다 영어를 배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10년을 살았어도 겨우 시장보고 길묻는 정도의 말밖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날 한국에서 이민온지 얼마 안되는 부인이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속도위반으로 교통경찰에 걸렸다. 그 아주머니는 경찰관에게 어떻게든 사정하고 이 순간을 모면할까 궁리하다가 이런 콩글리쉬를 떠올렸다.
"Look at me once(한번만 봐주세요)"
말도 안되는 영어였지만, 그 경찰관은 이런 한인들을 많이 상대해봤는지, 아니면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는지 모르지만 웃지도 않고 이렇게 대꾸하며 티켓을 끊었다.
"No soup(국물도 없다)."
언어소통의 어려움을 잘 나타내는 우스갯소리지만 마녕 웃을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언어소통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방법중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무조건 직접 부딛치는 것이러고 한다.
그러나 한인들은 끼리끼리 모여 살아가기를 좋아한다.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 지역의 상인들은 한글간판만 내걸고 장사하는 경우가 많ㅇ다.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보다는 한국인을 상대하겠다는 셈이다. 이런 폐쇄적인 습성 때문에 영어를 배우고 쓸 기회가 없어진다. 46-47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오래 살다보면 영주권을 따고 시민권을 딴다. 그런데 이들중 많은 사람들은 위선적이게도 이세들에게는 한국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떠나온 나라의 정치에 참여하는 투표권이 무슨 필요가 있는냐고 묻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나라에 왔으면 이 나라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찌 된 걸까?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바나나의 비애>
최근 워싱턴포스트지에 한 한국인 이민가정의 이야기가 1면 기사로 소개된 적이 있다. 10년전 이민을 와서 식당업으로 성공한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이민온 후 10년동안 그 한국인 아주머니는 미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했다. 그 결과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됐고, 이제는 은식점을 2개나 갖고 있는 사장님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둘뿐인 남매중에서 아들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한국말을 사용하고 집에 와서도 한국방송 뉴스와 드라마를 시청하며 완전히 한국문화속에서 살아왔다.
반면에 막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에 미국에 와서 이제 열여섯 상이 된 아들은 모든 것이 미국화됐다. 학교의 친구들은 물론이렺니와 먹는 음식, 듣는 음악이나 시청하는 TV프로등 모든 것이 전형적인 미국문ㄹ화에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한다.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큰딸이 중간에 나서서 통역을 해주어애 하는데 그나마 딸의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 제대로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부모는 자식에게 가슴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만 보면 자리를 피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무옷보다 중요한 10대 청소년기에 있어서 아주머니네 가정은 대화의 도구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들의 입장에서도 어머니의엉터리 영어를 이해할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말을 알아듣기는 커녕 오히려 오해만 하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이 아주머니가 이민을 온뒤 어찌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모든 한국부모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자식들으 ㄹ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마음에서 열심히 돈도 벌고 이민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부모와 자식간에 건널수 없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만을 쌓아놓았을 뿐이었다. 50-51
====>조금 극단적인 사례를 들었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일은 이민가정에서 흔히 볼수 있다. 부모중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아이들과 영어로만 소통해서 아이들이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 오히려 영어를 못하는 부모는 한국어 대화룰 고집하다보니 아이가 떠듬거리며 한국어를 하기 마련이다. 부모로부터 한국어를 들으며 살아보니 듣는 능력이 뛰어나고 다음으로 말하는 능력 그다음으로는 읽고 쓰는 능력 순서이다. 위의 사례처럼 아이와 성장기에조차 말을할 시간조차 없어서 중학교에 들어가 대화수단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다. 이 문제의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극적인 상황을 예로 든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