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투표권 갖게 된 교포들
2009년 02월 09일 (월) 조선일보
최병묵 논설위원 bmchoi@chosun.com
미국 시각으로 5일 LA의 한 식당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의 국회에서 재외(在外)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이 통과된 직후였다. 교포신문 보도를 보면 식당에 모인 100여명의 한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식 인정받았다"며 잔을 부딪쳤다. 미주 한인들은 그간 참정권회복위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김승리 미주총연 총회장은 "동포사회 분열을 우려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3월엔 "선거기간과 비용을 따질 때 불가능하고 공정성 확보도 어렵다"며 재외국민 투표에 반대했다. 그랬던 헌재가 2006년 6월 입장을 바꿨다. "인터넷·통신 발달로 어디서든 후보자 정보를 알 수 있다" "수백억 정도 비용은 감당할 수 있다" "공정성 우려로 투표를 못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중앙선관위는 OECD 30개 회원국 중 슬로바키아만 재외국민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그럼에도 '대표 없이 과세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맥락의 반론은 끊이지 않고 있다. 말의 순서를 바꾸면 '납세 없이 대표 없다'는 것이 된다. 재외국민 대다수는 세금도 내지 않고 국방 의무도 지지 않는다. 세금 꼬박 내고 나라 지키는 국내 거주자와 같은 권리를 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한국 국적, 외국 국적을 골라서 들이대는 이중 국적자들은 얄밉기까지 하다. 헌재는 이 문제에 "참정권은 의무 이행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다"고 정리를 했다.
▶재외국민 투표는 오는 4월 8일 경기도교육감 선거 때부터 가능하다. 귀국해서 경기도에 거소(居所)를 신고하면 된다. 아직 해외 공관들의 준비가 안 돼 현지 투표는 불가능하다. 재외국민 가운데 실제 얼마나 투표를 하게 될까. 작년 선관위 여론조사론 총 240만 중 134만명이 투표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15대 대선 때는 39만표, 16대 대선 땐 57만표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법은 통과됐지만 보완할 부분도 많다. 외국에서의 불법 선거운동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큰 문제다. 출신 지역, 지지 정당에 따른 동포사회의 분열도 우려된다. 투표기간에 배를 타고 있는 1만명 정도의 선원들 선상(船上) 투표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준비가 부족해 말썽이라도 나면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준 취지마저 퇴색될 수가 있다.
입력 : 2009.02.08 21:52 / 수정 : 2009.02.10 0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