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93년부터 해외동포 규합
한나라당 ‘대선 후 전략’ 문건 독점공개
2008년 01월 25일 (금) 신동아
▲ 이명박 당선자가 2003년 세계 한인상공인총연합회 주최 한상대회에 보낸 축사.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2007년 12월19일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10년 만에 여야 간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두 번째 수평적 정권교체다. 한국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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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가 2003년 세계 한인상공인총연합회 주최 한상대회에 보낸 축사.
MB, 93년부터 해외동포 규합
대선 정국이 바쁘게 돌아가던 2007년 10월 초, 이 당선자 측은 러시아에 있던 한창우 (사)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이하 한상연합회) 회장에게 면담 의사를 전달했다. 이 당선자와 한 회장의 인연은 깊다. 한창우 회장은 연 매출 1조엔이 넘는 일본 최대 파친코 체인 (주) 마루한을 경영하는 재일동포 사업가다. 한 회장은 중국의 화상(華商)들이 세계적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번성하는 것에 착안해 1993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미 등 전세계 60여 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동포 사업가들을 규합해 한상연합회를 창설했는데, 당시 이명박 당선자는 이 단체의 조직위원장으로 참여한 창업 멤버였다.
이명박 당선자는 ‘현장’과 ‘실적’을 강조한다.
양창영 한상연합회 사무총장(호서대 교수)은 “이 당선자는 단순히 이름만 빌려 준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연합회의 창설 및 운영을 주도했다. 전세계 한민족이 단결하는 좋은 일이라면서 사재(私財)도 많이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상연합회는 이후 매년 국내외에서 세계한상대회를 개최하면서 세계 각지 한인 기업인들과 700만 해외동포의 거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이 된 뒤에도 이 연합회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으며 이명박 후보 선대위의 김덕룡 상임 고문은 현재 이 연합회의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03년 이 연합회가 주최하는 한상 대회에서 “세계 한상 네트워크는 ‘세계일류도시’ 서울의 울타리”라고 축사를 하는 등 이 단체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한 회장은 이 당선자 측의 요청을 받자 서울에 왔다. 10월3일 오전 롯데호텔에서 이 당선자, 한 회장, 김덕룡 고문 등이 조찬을 함께 했다. 대화는 3시간이나 이어졌다. 이 당선자는 배석해 있던 양창영 총장에게 “머릿속에서 생각해두고 있는 것, 이제 좀 내놔보세요”라고 말했다.
이날 대화의 결과는 5일 뒤인 10월8일 나타났다. 이명박 후보 선대위 내에 ‘한민족네트워크위원회’가 구성됐으며 김덕룡 고문이 위원장이 됐다. 그런데 정치권과 거리를 두던 양 총장이 이 위원회 산하 재외국민 참정권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예전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쓰던 방이 양 신임 위원장에게 제공됐다.
양 신임 위원장이 이 당선자에게 제안한 아이디어는 재외 국민의 ‘귀국투표’ 캠페인. 김덕룡 위원장 등 한민족네트워크위원회는 아시아권역을 돌면서 한국에 주민등록을 두면서 외국에 체류 중인 국민을 상대로 대선 귀국투표 운동을 벌였다. 김 위원장 일행은 아시아 수십개 도시를 숨가쁘게 돌았다. 대선 투표일이 임박한 12월 중순에 접어들자 효과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12월16일 하루 동안 중국에 거주하는 5000여 명이 투표를 위해 입국했다. 한나라당 선대위는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선대위에는 아시아 각지에서 온 동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BBK 동영상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이 당선자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양 총장은 “귀국투표 운동에 9만900명의 재외 국민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했다. 12월17일에는 대선 투표를 위해 집단 입국한 재외 국민들이 “해외에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행사를 열었다.
300만표의 막강한 잠재력
이번 대선에서 이들 재외 국민의 투표는 선거의 당락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당선자 측이 재외 국민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향후의 선거를 대비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까지 재외 국민들이 한국의 대선과 총선에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현재 90여 국가가 국외 체류자와 외국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투표권이 새롭게 주어지는 대상은 국내에 주민등록이 있는 국외 체류자 155만명, 19세 이상 외국 영주권자 145만명 등 300여만명에 이른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정비되면 이들은 해외의 거주지역에서 투표할 수 있다(대선은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후보자에게 직접 투표, 총선은 정당 등에 투표). 이 당선자 임기 동안 치러지는 선거 중 2012년 총선 및 대선에서는 이들 재외 국민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국회 의결에 따라서는 2008년 총선, 2010년 전국 지방선거에서도 이들의 참정권 행사가 가능하다.
지난 15, 16대 대선에서 1, 2위 후보자 사이의 표차가 각각 39만표와 57만표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300만표는 대선 등 각종 선거의 판세를 뒤바꿀 엄청난 규모다. 이와 관련, 이 당선자 측은 다음과 같은 정국 운영 전략을 공개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재외 국민의 단합과 번영을 위해 가장 열성적으로 노력해온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 당선자는 대통령이 되면 모국과 전세계 700만 한민족 간 네트워크 구축과 발전에 헌신하고 재외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당장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은 대통령 직속이나 총리 산하로 바꾸는 등 그 위상과 기능을 격상시킬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구여권에서 미온적인 재외 국민 참정권 보장 관련법을 4월 총선 전 처리해 재외 국민들이 4월 총선 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 2008년 내 반드시 처리되도록 할 것이다. ‘외국에 나가 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당선자와 많은 재외 국민은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 이 당선자는 참정권이 부여되는 300만 재외 국민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아 안정적으로 정권의 기반을 확립해 나가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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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