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의 참정권과 기본의무
2006년 09월 18일 (월) 법제처 11
참정권은 정치적 기본권의 중요요소로서 민주주의 이념과 국민주권의 구현에 있어 핵심수단이 된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위헌결정에 이어 국회도 오래 끌어 오던 민법 개정안을 처리하여 호주제를 폐지하였는데, 유교적 전통에 바탕을 둔 가족제도의 수호를 부르짖던 유림측은 물론 대다수 중장년 남성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는데,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오랜 제도가 이처럼 간단히 바뀐 이면에는 여성참정권의 위력이 점점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였음을 새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사실 민주주의의 요람인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부인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갓 100년 남짓하고 이를 얻어내기 위한 투쟁과정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렇듯 빨리 여성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진 것은 산업화 등 사회구조의 격변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이는 세계적 조류이고 시대의 대세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참정권이란 이와 같이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또 국가의 정책방향을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공무담임권)으로 나누어지는 참정권은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은 법률로 정해지는데, 선거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규정한 조항에서 보통선거,직접선거,평등선거,비밀선거의 원칙을 따로 천명하여 이를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법률로 선거권자와 그 행사방법 등이 정해지고,피선거권은 대부분의 사항이 법률에 유보되어 있다.
지난번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대통령이 위험한 지역에서 국익을 위해 땀을 흘리는 젊은 장병들과 감격적인 포옹을 하는 장면이 얼마전까지 청사 1층에 걸려 있었는데 현행 선거법상 이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하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가 오래 전에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어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다는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한 타의에 의하여 끌려간 후 모진 차별을 겪으면서도 귀화를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와 수많은 재외 유학생들과 수출입국의 사명을 띠고 활동중인 상사 주재원들,심지어는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 조차도 선거때면 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37조 제1항에서 선거권에 관하여 거주요건을 두었기 때문인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1972년,그러니까 10월 유신이 있었던 해에 개정된 선거법에 그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1997년에는 당시 야당에서 정치개혁특별법안을 작성하면서 재외국민에게도 부재자 투표를 실시하도록 하려 했으나 당시 집권 여당에서 반대하여 무산된 일이 있다.
그때의 반대이유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교포사회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점이었는데 실상은 진보적 성향을 띤 재외국민들의 투표성향이 야당지지로 나타날까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뒷소문이 있었다.
그후 1999년에는 드디어 재외국민 몇 사람이 헌법재판소에 해당 조항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는데 앞서 말한대로 합헌 결정이 난 것이다.
합헌 사유를 보면 국토가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조총련 등 친북세력의 참정권을 인정하고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경우 안보상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선거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우리 선거법을 외국에 있는 국민들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워 선거과열 등 공정성 보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해외에서 부재자 투표를 실시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선거기술상 곤란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외국에 나가서 거주하는 국민들이 국방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목인데, 아마 유승준인지 하는 어린 가수가 인기 절정에서 병역의무 이행을 놓고 갈등을 겪다가 가수로서의 출세의 길을 접고 미국으로 되돌아 간 일을 생각나게 한다.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외국민에게도 언젠가 어떠한 형태로든 이행을 하여야 하고 납세의 의무는 국제조세법이나 조세협약에 따라 해결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이유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또한 국민의 기본 의무와 기본권 보장은 쌍무관계에 놓여 있지 아니하다. 납세의 의무를 피하기 위하여 해외로 조세피난처를 구하는 선진각국의 기업이나 개인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참정권을 박탈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일이 없다.국방의 의무를 가장 확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해외파병 군인들에도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재외국민의 선거권 보장을 주장하는 측은 OECD 가입 30개국 중 우리나라만 그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고 있으나, 외국 사례를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한다.
최근 야당에서도 중진급 인사들이 재외국민 선거권 부여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위의 헌법재판소 결정이유중 기술적 이유 등은 아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총련의 참정권 제한 주장도 위험성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신중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 .
그렇지만 해외파견 군인이나 유학생, 해외공관 주재원 등에게는 이번 기회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란다.헌법재판소는 불인정도 합헌이라는 것이지 인정이 위헌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제기준에 맞도록 제도가 개선되고 불합리한 점들이 시정되어야 진정한 선진국가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의견1) 해외파견 군인이나 유학생, 해외공관 주재원 등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의견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민으로서의 기본의무인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등을 모두 이행하고 있는 국민이며, 잠정적으로 대한민국 외의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의견2) 참고로, 여성참정권의 인정은 영국이 최초가 아니라 1893년의 뉴질랜드가 최초이며, 오스트레일리아(1902년), 핀란드(1906년), 노르웨이(1913년)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9세기에 일부 자치선거권을 인정한 예가 있지만, 1918년에 가서야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한하여 참정권을 인정하였으며, 남성과 동등하게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28년이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여성 참정권의 요구가 거세어지자 영국 수상이던 글래드 스톤은 "정치란 매우 더럽고 지저분한 것인데, 왜 아름다운 여성들이 더러운 정치판에 끼어들려고 하느냐"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