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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토론회]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토론회]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2005년 03월 31일 (목)  정균희  1111 
 
 
 정 균 희
UCLA 교수
세계한민족공동재단 LA지회장


해외 6-700만이라는 막강한 숫자, 즉 전 국민의 십분의 (남북한 합한 국내거주자) 일에 해당되는 해외 동포를 갖고 있는 국가는 흔치 않다. 이 대부분의 해외 동포가 미국을 위시하여, 중국, CIS,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 또한 한 국가의 인적 자원으로서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 해외 동포는 모두가 지난 당대의 경우는 수십 년이 아니면, 부모나 조부모의 경우는 멀어도 100년을 전후로 대한민국/조선왕조의 국민으로서 한반도 내에 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해외 동포들의 인적, 지적, 국제사회적 자산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더 크게는 한민족 공동체를 위해서 어떻게 유용될 수 있는가 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할 때 당면하는 문제가 국적이 된다. 여기에서는 상호배제 (mutually exclusive)한 사고와 법이 적용되어서 거주국의 국적자이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국적자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중국적이라는 해결책이 있고, 이중국적제의 적용 가능성이 거론 된 것은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즉 한국민 정서상, 국제관계 위치 상 혹은 해외 동포들의 다양한 위치(미국, 일본, 중국, CIS) 등등의 여러 성숙되지 못한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 구체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동포 참정권이란 일단 해외 동포 중에서 일부 한국국적과 자신의 거주국의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함이다. 대부분의 중국 혹은 CIS 거주 동포들이 거주국 국적을 갖고 있는데 반하여 미국이나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을 아직도 상당수가 한국국적을 갖고 있으며, 그 이유도 다양하다.

이중국적에 관여된 문제는 차후에 논의할 기회가 있더라도 일단은 한국 국적자에게 부여된 헌법의 기본권인 참정권 회복이 해외 동포에 관여된 많은 문제를 접근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가치는 대단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참정권은 이미 부여된 헌법의 기본정신에 부합하는 선거법을 개정하는 문제인데, 원칙적인 차원에서는 이들에게 부여하는 참정권에는 아무도 반대할 근거는 없다. 단지 당장이라도 참정권이 회복 됐을 때 해외 동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 혹은 실질적으로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가, 혹은 해외 동포 참정권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국내정치 구도 내지는 해외 동포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역학적인 이슈가 불확정적일 수 있다.

아래와 같이 적은 목소리이지만 참정권에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서 답을 함으로서 토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1. 참정권과 기본의무

해외 거주자들에게 즉 한국국적의 외국 영주권자들이 흔히 이행하지 못하는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병역과 납세의 의무이다. 혹자는 해외 동포들의 경우 국민된 의무인 납세와 병역의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 행세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여기서 많은 한국인에게는 생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헌법에서 정하는 기본권리의 영역은 의무 이행의 여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기본권이라는 것은 의무 이전에 주어지는 무조건적 권리이다. “의무를 행해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 속에 차등 사회를 두는 발상이 된다. 기본권이란 의무 이행 여하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이다. 국내에서도 탈세를 했거나, 혹은 교육의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고, 즉 무식하다고 해서 제한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쉽게는 참정권이 특권이 아니라 기본권리라는 점이다. 아무런 조건이 없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은 성인 남녀의 경우는 누구에게나 부여된다는 점이다. 거주지 여하를 막론하고, 빈부 혹은 교육정도, 인격의 높낮이 여하를 막론하고 주어지는 기본권리이다.

평등사회가 아닌 차등사회라면, 의무를 행한 사람들만이 권리도 있다. 즉 무식해서 문맹이라 피선거인의 이름도 읽을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서 기호를 이름 앞에 부치고 기호 1번을 찍어달라 혹은 2번을 찍어달라는 식의 선거운동을 벌리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것이 바로 선거인의 지식이나, 문맹여부에 관여 없이 주어지는 기본권을 존중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었다.

2. 동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

최근 동포사회에 지식인 중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주권자에게 모국의 참정권을 주면 시민권을 획득해서 미국사회 속에 미국시민으로서 살 생각이 줄어든다. 미국정착과 미국화 되는 목표에 걸림돌이 되니 영주권자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요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출가외인이니 친정 집 재산도 탐내지 말고 친정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전근대적인 발상과 비슷하다. 실은 시집을 가면 친정 집 부모도 시집부모도 다 내 부모요 친정집일도 시집 일도 다 나의 일이 되고 나는 삶의 경계가 풍요해지고 넓어지는 것이 현대적인 발상이다. 영주권자나 혹은 이중국적의 대상자를 상호 배제(mutually exclusive)하게 보는 발상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발상이 더 현실적이고 현대화된 발상이다. 미국에 이민 온 한국계 미국인을 보는 눈이, 전 근대적인 발상으로는, “미국에 속하느냐? 혹은 한국에 속하느냐 하나를 골라라” 하겠지만, 현대적인 발상으로는 한국계 미국인이란 자신인 속한 미국이란 나라에도 기여하고, 떠나온 고국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국의 참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거주지의 시민권 획득을 연기하고, 모국사회에만 눈을 돌리는 사람도 생길 수는 있겠지만, 이런 부작용이 두려워서 한 국가의 헌법이 부여하는 기본권 마져도 무시해 버리라는 발상자체가 노예적인 발상이 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구는 격이 되는 논리 자체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3. 동포사회를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로 분열한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동포사회에는 동포들 간의 분열 내지는 반목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어두운 현실의 측면이 동포 참정권으로 가속화 된다던지 심화된다는 사고 역시, 기우일 뿐이다. 가능성은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많은 선진국에서 해외 거주 동포들의 참정권을 허락하지만, 이로 인해서 반복이 생기고 동포 화합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이런 논리가 바로 반대자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흑백논리이다. 현법이 명시하는 기본권을 재확인하고, 여기에 첨가되는 한민족 공동체의 의미를 도외시 한 체 흑백논리로 보는 세상은 어두움이 더 심화되어 보일 수밖에 없다.

4.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

물론 같은 날 같은 시에 한국에서 하듯이 해외 여러 곳에 투표함을 만드는 일과 관리하는 일, 우송하는 일 등의 많은 해결해야 한 난제가 있고, 운용비도 더 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반대의 이유는 될 수가 없다. 이것은 시행상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원칙을 바꾼다는 뜻인데, 한마디로는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살인자를 잡기 힘드니까 안 잡아도 된다는 법은 생길수가 없는 일다. 법은 원칙에 준해서 만들어야 한다. 실행상의 난제는 현대의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법 제정 상에 실행기간의 여유를 두어가면서 현실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것이 반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해외 동포의 참정권 회복이 주는 의미

1. 대한 민국 국적자를 위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국민에게 줌으로서 해외 동포 (영주권자)는 엄연히 한국의 국민으로서 대우와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되고 나아가서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민으로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초석을 깔게 된다.

2. 한민족을 위한...
큰 울타리 안에 있는 한민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은 확약으로서 앞으로 이중국적 문제라던지 혹은 한민족 공동체로서 국내외 한민족이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 함께 해결해야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작이 된다. 피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민족 공동체로서의 번영을 약속해주는 근거가 된다.

3. 세계를 위한...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이고, 소속감의 확인이 중요한 삶의 근본이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소속감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기여하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유도하는 전기가 된다. 이것은 상호 배제적이 아니라 상호 보안적인 자세를 취할 때에 성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