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꿋꿋이 조국을 부른다
2002년 12월 27일 (금) 한겨레21 1111
참정권 운동 벌여온 재일동포 이건우씨… 자료집 내고 헌재의 기각 결정에도 법정 투쟁 계속
재일동포 2세로 해외동포의 참정권 회복운동을 벌여온 이건우씨가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제시한 자료집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미디어집 펴냄)를 냈다. 참정권 운동의 의미와 활동경과, 헌법소원·손해배상 청구 등 일련의 법률적 대응들, 행정기관과 오간 각종 관련 서류들을 한데 묶었다.
조국참정권과 지방참정권 사이 갈등도
해외동포들의 참정권 문제가 국내에서 처음 이슈화된 것은 1996년 <한겨레21>(2월15일치 96호)이 ‘재일동포에게 조국 참정권을!’이란 머리기사를 실으면서부터다.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단 한번도 투표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재일동포의 상황을 짚고, 이것이 결국 불완전한 전후 처리의 역사적 상징임을 일깨웠다. 이와 함께 잊힌 재일동포의 참정권 문제가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김영호 경북대 교수 등 뜻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재일동포의 조국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민연대’가 활동을 벌여나갔고, 오사카·고베 등지에선 참정권 운동을 알리는 각종 강연회가 잇따랐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97년 8월 이건우씨를 포함한 재일한국인 9명이 ‘공직선거법 및 부정선거방지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나 법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갖는다는 헌법의 취지가, 관할구역에서 주민등록증 있는 사람만 선거권자로 한정해 주민등록증이 없는 재외국민은 선거에서 배제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과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분단상황을 이유로 들어 기각했다. 대법원 판례상 북한 주민이나 총련계 동포도 같은 국민으로 돼 있기 때문에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주면 이들의 선거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또한 기술적으로 공정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하지만 이씨 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법정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3월엔 4명의 재일동포와 연명으로 선거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의 요구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재외선거인 명부 작성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또한 헌법소원을 비슷한 시기에 낸 재불동포들과 ‘한겨레네트워크’라는 조직을 꾸려 연대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씨는 “한국 국적을 꿋꿋이 지키고 사는 동포들에게 아무 권리도 없는 한국 국적을 벗어나 국민으로의 인격을 느끼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것이 “방치로 일관해온 조국의 재외동포 정책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조국참정권 운동은 일본 안에서 조직적인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민단에서 일본 ‘주민’으로서 지방의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지방참정권 획득을, 한국 ‘국민’으로서 조국참정권을 회복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로 놓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조국참정권 운동이 지방참정권 획득에 장애가 된다는 민단의 주장은 옳지 않다. 노선 차이가 있어도 조국에 선거권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억눌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65만명에 이르는 재일동포 가운데 한국 국적자가 약 70%라고 할 때 20살 이상의 유권자는 70%에 이르는 30만명에 이른다. 일본에서의 일상이 ‘현실’인 이들에게 먼 조국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보다는 지방참정권이 먼저 피부로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씨 등은 “역사 청산을 통해 일본에서 재일동포의 입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일본 주민 되기보다 더 급하다”며 지방참정권 요구 일변도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주민등록법이 족쇄가 되다
조국참정권 운동은 추상적인 권리의 요구만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가 가장 중요한 신상정보로 통하는 우리 사회에서 주민등록이 안 돼 겪는 생활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 주민등록법은 해외이주를 포기한 뒤가 아니면 등록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에 지난 9월, 재일동포 3세 유학생 4명은 청와대에 진정서를 보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국내 인터넷에서 이메일 계정을 만들 수 없고, 의료보험도 못 받는 처지를 호소한 것이었다. “재일동포는 외국인이 아닙니다. 여권도 한국 외무부에서 만들어주는 정식 국민입니다. 적어도 제가 조국에 살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해외 이주자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어와 한국어 동시에 출간된 이 자료집은 고려대 구내서점 또는 전화주문 등을 통해 구할 수 있다(문의 02-752-3774 http://www10.ocn.ne.jp/~hankyore).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