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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바

'잃어버린 투표권'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영

'잃어버린 투표권'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영  

 1997년 05월 21일 (수)  오니바  11 
 
 

오니바 지상중계 ▶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싶다"

97년 5월 방영

 

 
최근 한국의 세계화 바람에 따라 학업이나 업무등 여러 이유로 해외체류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떠나오기 전 발급받아야 하는 여권이며 각종 서류문제라던가 또 막상 해외에 도착해서 치러야 하는 체류증등 복잡한 절차에 대해서는 '내 문제'라는 절실한 심정으로 신경을 쓰게 되고 또 여러 통로를 통해 정보도 얻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동안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또 우리 스스로도 인식하려 하지 않았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한국국민들의 박탈당한 참정권문제가 그것이다.

지난 3월23일 mbc- tv는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언론에서 찾아보기 드물었던 이 문제를 13분간 다루었다. 도대체 왜 같은 한국민이면서도 해외에 나와있다는 이유만으로 소중한 주권 행사의 길이 가로막히게 됐는지, 프랑스 독일 등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 및 유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반쪽 국민'의 심경은 어떤지 생생하게 취재했다.
오니바는 '시사매거진...'에서 방송한 내용을 mbc 빠리지국의 자료협조를 받아 전재한다.---편집자

한국국민으로서의 혜택도 없고, 참정권도 없어, 버려진 자식인듯한 심정...
그래도 국적 바꾸기보다는, 불편하더라도 한국국적 지키는 것 자랑스러워

● 홍순관 기자;
우리나라에 와 있는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지만 프랑스에 가 있는 한국사람들은 우리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지난 67년과 71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리도 해외 거주민들의 부재자 투표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유신이후에는 무슨이유 때문인지 해외 부재자 투표가 없어졌습니다. 지금 프랑스에 나가있는 한 은행원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꼭 한 표를 행사하겠다며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해외 거주민들의 박탈된 참정권, 되찾을 방안은 없는지 찾아봤습니다.

모처럼 접하는 한국가락에 넋을 잃은 재독 한인들, 그러나 한국인도 독일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한국인들입니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빠리에 부임해온지 5달쯤되는 수출입은행 공주식 차장 역시 참정권이 거부된 반쪽 국민입니다. 선거법이 부재자 투표 대상자를 국내 거주인으로 한정하고 있어, 상사 주재원, 유학생, 교민할 것없이 국내 투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빠리주재 한국대사도, 영화배우 윤정희씨도 선거에 관한한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세금내고 병역의무도 치른 내가 왜 투표권이 없는가?

공주식 차장이 헌법소원을 낸 이유입니다.

◎ 공주식 차장 (수출입은행 빠리사무소); 개인의 권리인데, 그 권리를 정부가 일단은 부여를 해주지 못하면은 저희들 유권자들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제기해 볼 수 있는 그런게 아니냐 하는 것이 제 생각이였구요.

● 국내 변호사를 통해 낸 헌법소원에서 공차장은 가급적 올 대선에 참여할수 있도록 빨리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해외거주 한국인들에게 투표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건 아닙니다. 비행기타고 한국에 와서 투표하면 됩니다.

"한국에 들어가서 투표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 변정신 (공주식씨 부인); 못하죠. 왜냐면 왕복 비행기값만 해도 둘이서 가도 2백만원이 넘죠, 거기에다 친척들... 그냥 갈 수 있어요, 선물사면 배보다 배꼽이 더 많이 들고, 그리고 갖다오면은 몇백만원 정도가 깨지는데요. 그거는 너무나 경제적 손실이 크죠.

◎ 1967년 대통령선거(자료화면); 베트공 소탕에 여념이 없는 우리의 파월국군도 잠시 총성이 멎은 월남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 해외 부재자 투표제도가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월남과 서독에 국군장병과 광산근로자, 간호사들이 나가있던 시절 67년과 71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해외 부재자 투표가 실시됐습니다.

"71년도에 오시고 나서 혹시 국내 한국에 선거가 있어가지고 투표같은 거 해보셨어요"?

◎ 정점복(71년 독일파견 간호사); 기억은 잘 안나는데, 그해에 대사관에서 왔는지 모르겠는데... 편지로 왔는데 그거 해서 우리가 대사관으로 보냈어요. 그것이 선거같애요 기억에.

● 72년 10월 유신이 선포돼 직접 선거 대신 체육관 선거가 등장하고, 이어 군사정권이 계속 들어서면서 해외 부재자 투표는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 정대일(재불 한인회장); 해외에 나가있는 교포들이 사실은 군정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때문에 해외 부재자가 투표를 할 경우에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나오지 않겠느냐 이런 계산에서 그것이 없어진게 아니냐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 문민정부, 세계화 시대로 접어든 오늘까지도 해외 한국인들에게 참정권은 남의 나라 얘기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헌법소원은 그러니까 부재자 투표제도가 없어진지 26년만에 나라가 돌려주지않는 참정권을 다시 찾아보겠다는 첫 자구책입니다. 헌법소원 제기를 돌출행동으로 치부하기엔 해외에 나가있는 사람들의 국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너무 높습니다.

◎ 최관규 (프랑스유학생); 일단은 방법론적으로 정부가 너무 빠른 시일내에 노동법을 일방적으로 통과를 시켰거든요. 일단을 원칙적인 면에서 국가가 잘못했는데, 노동계가 그렇게...

● 소주가 포도주로 바뀌었지만 대화내용은 국내 여느식당과 다름없습니다. 대화는 부재자 투표 요구로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 전학선 (유학생); 외국에 사는 우리가 이런 권리가 없다면은 우리가 이걸 요구해야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않거든요. 이런 여론형성을 한다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국민 감시단이라든가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게 없거든요, 그러면 여론을 형성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런 여론을 외국에서 형성을 해가지고 자꾸 국내 정치권이라든가 이쪽에 압력을 가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 해외 거주민들의 여론형성의 장이기도한 종교모임에서도 투표 한번 해보고 싶다는 희망은 인터뷰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관심 없으세요?"

◎ 전 안젤라(프랑스 거주); 있죠, 우리딸이 하나는 대학원 졸업하고 대학교 2학년 다니고 그러는데요, 우리도 좀 선거 좀 할 수 없냐, 왜 딴 미국이나 이런데는 이 나라에서 하는데 우리는 안하냐 그래서 저도 하고 싶고 우리애들도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더라구요. 하고 싶죠.

● 국내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투표권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컴퓨터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친구집에 모인 이 유학생들은 한국 신문을 발행당일에 읽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서울의 밤9시 TV뉴스를 같은 시간에 보고듣습니다. 해외 거주기간이 길수록 더 합니다.

◎ 정대일(재불한인회장); 나는 과연 불란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대한민국 국적은 갖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특별히, 여기서 사실 기업을 하는 교민들도 많거든요. 그렇다고해서 한국처럼 중소기업에 특별한 융자혜택을 준다는 그런 것도 없고, 참정권도 없고, 한마디로 속된 표현으로하면은 꼭 버린 자식인 그런 감정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죠.

● 그렇다고해서 선뜻 국적을 바꾸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 한국 국적을 애써 지키고 있습니다.

◎ 윤정희(영화배우); 외국에 살면서 국적을 바꾸면 좀 편리한 점이 있겠죠. 그렇지만은 종이 한장 바꾼다는 의미가 저희들한테는 굉장히 커요. 그래서 저희들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조금 여기서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계속 가지고 있을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자랑스러워요.

● 때문에 해외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이 상태로 방치해둔 정치권에 대해 원망스러움을 감추지 않습니다.

◎ 김태수 (유학생); 정치권이 일단 가장 해야할 일인데 지금까지 안한 것은 전적으로 정치권의 직무유기라고 말씀드리고 싶구요.

● 이런 의견이 비등하면서 한국 대사관도 모른척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대사관 회의에서도 부재자 투표 문제가 논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김창호 (주불대사관 공보관); 과거에 어떻게 됐든 간에 우리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그런의견들이 많이 있습니다.

● 몇년전부터 일부 대사들을 중심으로 부재자 투표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 이시영(주불대사); 공관장들간에는 재외국민중에 원하는 분이 많으니까 줘야되지 않겠느냐, 이런얘기가 나오고 그래서 우리본부는 이 필요성을 상당히 잘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 국내 정치권도 이 문제에 관해 서는 원칙적인 동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 이해찬의원 (국민회의 정책위 의장); 여당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보호해주는데 좀 소극적이라는 그런 인상을 저희가 지금 받고 있어서 이번 선거법 정비할 적에 저희가 이 문제를 제기를 하겠습니다.

"그 시기는?" 6월쯤 저희가 다시 임시국회가 또 소집이 될때 그때 입법제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중위의원 (신한국당 정책위 의장); 현재는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진출 인구도 많아졌고, 대상국가도 많아졌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선거관리가 가능한지는 좀 더 연구를 해봐야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국은 2차 세계대전때부터 부재자 투표를 해오면서 선거때마다 6백만명의 해외 유권자를 관리해왔습니다. 주한미대사관의 공무원을 투표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한마디로 일축했습니다.

◎ 제포리 섹스턴 (미대사관 공보관); 투표권은 기본권이기 때문에 선거비용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 덧붙여 미국은 각종 매체를 통해 해외 거주 국민들에게 투표참여를 적극 권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역시 지난 95년 대통령선거 당시 서울에 나와있던 프랑스 유권자의 90%정도가 부재자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 파스칼 뷔르통 (프랑스대사관);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서울에 사는 프랑스인의 90%정도가 투표한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사관까지 나와야 하기 때문에 투표율이 조금 낮다.

● 해외 부재자 투표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등 선진국들에서는 대부분 실시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이 택하지 않고 있는 점이 눈에 뜁니다. 실재로 부재자 투표가 시행이 된다면 그 표가 얼마나 될까요? 어떤이는 백만표다, 또 어떤이는 백 60만표다 각기 계산이 다릅니다. 정부에서도 아직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선까지 부재자 투표권을 줘야할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학생이나 상사 주재원들 처럼 국내에 주민등록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줄 것이냐, 주민등록은 말소됐더라도 한국국적을 가지로 있으면 모두 줘야 할 것이냐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 이시영 (주불대사); 재외 국민들, 특히 해외공관의 공관원과 가족, 또상사라든가 은행이라든가 이런데 사람들하고 가족, 이런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또 심지어는 여기와서 생업을 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그런 투표의 기회가 주어줘야되겠다 하는 것이 저 개인적인 생각...

● 정치권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 이해찬의원(국민회의); 저희 당의 입장은 지금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유학생, 공무원, 상사원, 여행자, 이런 분에 대해서는 선거권을 주고 이민 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납세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거권을 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해외 부재자 투표가 실시된다면 여당이 유리할까요. 아니면 야당이 유리할까요?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어느 한쪽이 유리하다고 분석이 됐다면 부재자 투표를 주장했을텐데 정치권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표 분석이 안된 때문입니다.

◎ 김선수변호사 (헌법소원대리인); 너무 명백한 것이어서 그동안 오랜 기간동안 방치돼왔다

는 거 그 자체가 좀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부재자 투표가 외국처럼 있는줄 알고"...

◎ 윤정희 (영화배우); 저희들은 당연히 있는 걸로 생각을 했었죠.

● 해외에서 한국인임을 잊지않고 살아가는 국민들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밖에 있다고 해서 그들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까지 국민의 기본권이 방치될지, 헌법재판소와 국회의 올바른 판단을 기다리면서 헌법소원을 낸 공차장 부인의 체념어린 전망이 빗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 변정신 (공주식씨 부인); 직접 참여해서 한번 제 손으로 직접 뽑고 싶은 그런 소망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못하겠죠 뭐...

영상취재: 황성희, 편집: 우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