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의 빼앗긴 '한 표'(4)] 단계적 도입론과 전면적 도입론을 둘러싼 논란
2002년 05월 19일 (일) 오마이뉴스 11
참정권을 어느 범위의 재외국민에까지 부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외국민이 본국정부에 어떠한 법적 존재로 규정돼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민을 떠나는 경우에는 이민자용 여권을 발급하며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그러나 현재 약 27만명으로 추산되는 상사 주재원 공관원 유학생 등은 이같은 변동이 없다.
그러므로 재외국민 참정권 부여대상자는 국내에 주민등록이 살아 있는 사람과 말소돼 있는 사람의 경우등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많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주민등록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이들을 단기체류자와 장기체류자로 구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이 두 가지 신분자에 대해 각각 나와 있다. 하나는 99년 1월 재일교포 이건우 씨 등 9명의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고 또하나는 99년 3월 수출입은행 프랑스 주재원 공주식 씨와 유학생 김영정 씨가 제출한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다.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체류자부터 참정권을 부여하고 추후에 장기체류자까지 부여하자는 주장이 소위 단계론이다. 이에 반해 단기 장기 체류자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모두 부여해야한다는 것이 전면도입론이다.
헌재의 기각 판결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해외파견군인과 공무원등에 대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언급은 단계론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다만 해외거주자 중 해외파견군인과 공무원은 국가의 명령에 의하여 해외에 근무하고 있으며 그들 임의로 귀국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다른 해외거주자에 비하여 이 사건 기본권의 제한의 정도가 무겁다고 보여지므로 향후 입법자가 이 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부영 의원이 마련한 선거법 개정안은 일률적으로 외국에 나간 지 5년이 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해 단계론적인 입장을 담고 있다. 동시에 제출할 예정인 정범구의원의 개정안은 3월 하순 현재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정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 www.bumgoo.net에는 어느 범위까지의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할 것인지를 묻는 설문조사가 올라 있다. 정의원이 얼마나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힘을 더 얻고 있는 단계적 도입론이 최종적으로 채택된다면 동포사회에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 우선 오랜 세월 동안 갖가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귀화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60만 재일동포들은 여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이 만만치 않다.
재일동포사회는 매년 1만명 정도가 귀화하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조건에서 이를 제어할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조국 선거에 대한 참정권은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재일동포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이같은 점을 지적하며 그 동안 참정권 회복을 주장해왔다. 그런데도 주재원 유학생들에게만 주어진다면 재일동포들은 또 한번 조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이 각각 본국을 떠난 지 20년, 10년, 5년, 3년 이하인 자에게만 부여하는 차등을 두고 있을 뿐 OECD 가입국가들 대부분은 장 단기 체류자에 대한 구별이 없다.
김제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