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동포신문 오니바 13년 기록(3)
2011년 11월 27일 (일) 김제완
<그외에>
오니바신문은 부설 오니바 갤러리를 만들어 운영했다. 발행인의 부인인 서수연씨가 담당했으며 97년부터 2006년까지 약 10년동안 운영하며 약 100번에 가까운 전시를 했다. 갤러리는 빠리3구 뒤쁘띠 뚜아르 가에 위치한 오니바 사옥 일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재불 화가들의 전시회가 많았으나 후기에는 한국작가들의 유럽 진출 교두보 역할을 했다.
오니바는 2003년 12월 창간 10주년을 맞아 파리의 주불한국문화원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주철기 재 프랑스 대사를 비롯해서 손우현 문화원장, 김영애 한글학교 교장등 재불한인사회 인사들이 참석했다. 조르주 르므완느 한불협회회장 등 프랑스 인사들도 참석해서 “오니바” 창간 10주년 축하행사에 자리를 빛내주었다. 소프라노 송정현씨가 노선미씨의 반주로 그리운 금강산을 그리고, 김현지씨가 플룻연주를 선사했다. 창간 10주년 기념호에는 재미화가 강익중씨가 축하작품이 게재됐으며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김성조 카차흐스탄 고려일보 편집국장, 소설가 권지예씨등의 축하글이 게재됐다.
동포사회의 광고에 의존하다 보니 경영상의 한계로 인해 발전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1999년 한불협회 회장 파스칼 테라스 하원의원을 통해서 프랑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몇 달후 총리실에서 완곡히 거절하는 회신을 받았다. 97년 월2회 발행하기도 했으나 98년 한국경제위기로 인해 월간발행으로 돌아왔다. 12-16쪽의 타블로이드 판형이었다. (21.2매)
<오니바 발행인 김제완 소개글>
57년생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출판인으로 일했다. 출판계 데뷔작품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살아남은자의 슬픔”(85년)이다. 그후 도서출판 오월을 운영하면서 88년 북한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발행한 ‘조선통사’를 펴냈다. 이로 인해 다음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뤘다. 북한서적 출간의 물꼬를 튼 공적을 인정받아 89년12월 한겨레신문에 의해 80년대의 출판인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2007년 9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는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선정했다.
91년 도불하여 빠리사회과학대학원 박사준비과정에서 알랭 뚜렌 교수의 지도로 80년대 한국사회운동을 주제로 논문을 썼으나 마치지 못했다. 93년 12월 오니바를 창간했다. 2001년 프랑스 영주권 취득. 이후 빠리와 서울을 오가며 재외국민 참정권 되찾기 운동에 매진했다. 현재 2007년 1월 창간한 세계로신문 대표와 같은해 5월 발족한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