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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사회 참정권 때문에 ‘이상 과열’

교포사회 참정권 때문에 ‘이상 과열’ 
재미 한인회 2012년 총선 비례대표 공천 노리고 대립·반목 늘어
 

 2009년 11월 24일 (화)  위클리경향  
 
 
2009 11/24 위클리경향 851호 

 

 ▲ 지난 6월 전 세계 65개국 한인회장단 등이 참석한 제10회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이게 얼마짜리든 말이 됩니까.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은 국내정치 사정에 밝지 못한 편입니다.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런 거 받았다, 이렇게 신분 과시용으로 사용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11월 초에 기자는 한 해외교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지난 10월 말에 국회에서 열린 한 행사의 참석자들에게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있는 시계를 뿌렸다는 것이다. 제보자에 따르면 이날 배포된 ‘이명박 시계’는 200여 개. 확인 결과 이 행사는 10월 26일 국회 해외동포무역경제포럼 추계세미나였다. 시계는 국내 업체인 로렌스시계공업이 제작한 ‘이명박시계’였다. 이 제보자는 이번 행사의 분위기가 예전과 상당히 달랐다고 주장했다. “원래 동포 무역에 관심이 있는 여야 의원들이 참여해 왔고, 기념품이라고 해 봐야 수건 같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그쪽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명박 시계’ 뿌려진 까닭은
아닌 게 아니라 변화가 있었다. 한나라당의 재외국민특위는 지난 10월 전 세계를 8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지역별로 최대 15명의 국회의원을 투입하는 ‘대륙별 위원회 구성안’을 확정했다. 북미는 공성진 의원, 중미와 남미는 나경원 의원, 일본은 김태환 의원, 중국은 이병석 의원, 기타 아시아는 정병국 의원이 각각 맡는 식이다. 정몽준 대표나 안상수 원내대표, 박근혜 전 대표 등 12명은 고문직을 맡았다. 민주당이 동포 출신 원외 인사들을 중심으로 ‘재외동포위원장’을 둔 것에 비하면 상당히 공세적이다. 재외동포참정권 운동에 깊숙이 개입해 온 A씨는 “동포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당 차원의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표명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냐”고 평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11월6일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재외동포를 상대로 한 한나라당의 표 구걸 행위가 도를 넘어섰다”고 성토했다. 당 차원의 여러 재외동포 관련 기구 등 사실상의 해외조직을 결성해 왔을 뿐만 아니라 모국 방문 해외인사들에게 고가의 선물이나 향응을 베푸는 등 선거법 위반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정 총리는 “지난 2월 선거법 개정 후 정당법 개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국회 정치개혁 특위에서 정당 해외조직 관련 내용을 개정해 주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한나라당이 재외동포 조직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7년 헌재의 위헌 결정에 이어 재외동포 참정권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재외동포도 투표권을 행사하게 됐다. ‘재외동포표’는 총 230여 만 표로 추산된다. 현행법 상 총선에는 비례대표(정당투표)만 하게 되어 있지만 대선에서는 대선후보에 대한 투표가 가능하다. 여야간 접전이 벌어질 경우 캐스팅보드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나라당이 치고 나가는 것에 대해 별다른 대응책을 못 내놓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 일단 제동을 걸겠다는 뜻 아니겠느냐.” 앞의 재외동포참정권운동 관계자 A씨의 풀이다.

실제 교포사회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자 조직은 일찌감치 앞서가는 모양새다. 올해 1월에 결성된 US한나라포럼이 단적인 예다. 출범 당시 이 단체는 주요 한인단체의 대표급 인사를 망라해 1000여 명의 회원을 모았다. 그러나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US한나라포럼은 결국 실패했다.” 미주 지역에서 꾸준히 재외동포참정권 문제를 취재해 온 김석하 LA미주중앙일보 부장의 평이다. US한나라포럼은 미국 내 보수세력을 망라했지만 출범 한 달 만에 ‘당’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내분에 휩싸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는 40여 만명의 투표권 자격이 있는 한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전체 교포사회의 ‘풍향계’와 같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이용태 전 LA한인회장이 애초에 추진한 조직은 ‘한나라당 해외동포 미주본부’였다. 그러나 김진형 회장(전 LA도시축제위원장) 쪽은 “미국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정당 지부 자체가 용인되지 않는다”고 반박했고, 결국 쪼개졌다. 떨어져 나온 쪽이 만든 단체가 ‘미주한인참정권실천연합회’(참실련)다. 김석하 부장은 “한 조직이 참정권 관련 기자회견을 오전 11시에 한다고 공지하면 다른 단체가 오전 10시에 먼저 기자회견을 갖는 등 감정싸움이 심각했다”라고 전했다.

대외적 명분과 달리 실제 대립 구도는 계파 싸움이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재외동포 참정권운동 관계자 B씨는 내분의 원인으로 김재수씨의 LA총영사 지명 문제를 지적했다. 현지에서는 동포 출신을 현지 공관장으로 임명한 첫 번째 케이스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미국변호사 출신인 김 영사 자신이 지난 대선 당시 BBK대책팀에서 활약한 데 대한 보상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B씨는 “공관장이기 이전에 한나라당을 위해 일해 온 김 영사가 과연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총영사로 임명되기 전에 김재수 변호사는 배희철씨 등과 함께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단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인의 날 행사 때 배씨가 훈장을 받은 것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한 사람은 공관장을 주고 또 한 사람은 상을 주고…. 결국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말이냐.” ‘실세를 등에 업은 신흥 세력’이 치고 나와 분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 지지단체 내홍
교포사회가 과열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결국 전·현직 한인회장들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공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통된 진단이다. 여야 정당들이 230만표를 의식해 2, 3석을 재외동포 몫으로 배려할 것이고, ‘전·현직 한인회장’이라는 감투는 교포사회의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공천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과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열 양상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석하 부장은 “언론에서 거론된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오래 살고 돈을 번 사람들로서 시민권자”라면서 “이들은 2012년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고 투표권도 없다”라고 말했다. 오재범 재외동포신문 기자는 “알려진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실제 지역 한국인들을 얼마나 포괄하고 대표성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와 별개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 기자는 “잡음이 끊이지 않은 미주사회보다 일본 민단 쪽이 의외로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더 많이 투표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투표 참여문화가 발달한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라는 지적이다.

김제완 재외동포참정권연대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욕을 먹든 말든 ‘선만 잘 잡고 줄만 잘 서면 된다’는 생각은 구시대적 사고”라면서 “결국 지금 각축을 벌이는 사람들이 동포 대표성을 얼마나 더 가지고 들어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시계 배포’ 논란과 관련해 한나라당 재외국민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경률 의원 측은 “여야 의원이 모두 참여하는 포럼이고 1년에 한 번 만나는 자리이다”면서 “그냥 맨손으로 보내는 것이 뭐해서 시계를 나눠 준 것일 뿐 어떤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애써 부인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