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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개혁과제 대선후보들이 풀어라


아주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비리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가 그런 경우이다. 비리의 주체인 입주자대표와 공사업체의 유착사례를 보면 양자가 요철처럼 물고물리는 조건에 놓여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072119045&code=990304


아파트 입주자대표들은 수억에서 수십억에 이르는 공사의 시공자를 선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그에 비해 사실상 자원봉사자여서 급여도 없고 회의 참석수당 정도를 받는다. 건설업계에는 공사입찰과정에서 발주자에게 뒷돈을 챙겨주는 리베이트라는 나쁜 관행이 있다. 이런 두가지 조건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의 선한 의지를 믿어보자는 의견은 점점 줄어드는 것같다. 비리를 막으려면 이 조건과 맞서야 한다. 오래된 비리 생태계를 해체해야 한다.


아파트 비리 찾기의 열쇠는 공사계약서이다. 보물섬 지도처럼 연구하면 답이 나온다. 철근가격이 9천만원인데 1억원으로 기입하고 1천만원은 뒷돈으로 챙겨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 돈은 건설업체의 비자금 장부에서 나와 현금으로 오간다. 걸리면 다같이 죽기때문에 비밀이 아주 잘 유지된다. 공식 회계장부상에 이런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몇해전부터 공동주택 외부회계감사의무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회계사가 여간해서 비리를 적발해내지 못한다.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고심 끝에 방법을 찾아냈다. 민간아파트의 모든 공사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해서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민간아파트 계약원가 심사제이다. 전문가들이 들여다보고 시세보다 부풀려진 자재가격을 찾아내 이를 근거로 부정 거래를 추궁한다. 이런 제도는 비리당사자들에게 심대한 위협이 된다. 예방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몇해전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이런 정책은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투명한 아파트 만들기 시민연합 준비위원회가 지난달 회원들의 투표를 거쳐서 “아파트 개혁과제 열가지”를 선정했다. 열가지중에 위의 제도는 네번째에 올라있다. 가장 표를 많이 받은 상위 순위에 공공의 개입을 요구하는 방안들이 올라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간아파트 계약원가 심사제 뿐아니라 공동주택관리청 신설, 공공관리소장제도 확대 시행,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활성화등이 올랐다. 


이중에 공공관리소장제도는 분규중인 아파트의 주민들이 원하면 서울시에서 도덕성과 능력을 보증하는 관리소장을 파견해주는 것이다. 이미 관악구의 아파트단지에 1호 소장이 일하고 있는데 성공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아파트 개혁과제 열가지에는 이외에도 아파트 비리신고 포상금제 일명 '아파라치'와 비리업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등이 담겨있다. 비리에 대한 실효있는 적발과 강력한 처벌을 제도화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동대표회장 6개월 순환근무제와 작은 단지 차별폐지, 내부고발자 보호 특별법 제정등을 요구했다. 세입자에게 동대표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안은 치열한 토론끝에 채택되지 못했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5월에 새정부가 들어선다. 온국민을 수렁에 빠뜨렸던 헬조선 시대도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의 헬조선 탈출은 쉽지 않아보인다. 겉보기에 번듯해보이지만 그 안은 우리 사회의 막장중에 막장이다. 현재 비리문제로 분규중인 아파트단지가 전체의 4분의1에 이른다. 사회문제가 있는 곳에 사회운동이 싹트기 마련이지만 아파트 문제는 사회적 관심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각후보들이 공약을 내고 있지만 아파트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파트 비리 척결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보수적인 구청장이 당선돼온 강남구에서 진보적인 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을 눈여겨보라. 지난 정부는 주민자치 또는 사적 자치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방치해서 지금과 같은 혼돈을 낳았다. 새정부는 공동주택 정책방향을 공공의 개입으로 전환해야 한다. 말로만 생활정치 하겠다고 큰소리 치지 말고 대선후보들이 먼저 아파트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아파트 개혁과제가 논의 주제로 오른다면 시청율이 많이 올라갈 것이다. 


김제완 투명한 아파트 만들기 시민연합 준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