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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투명한 아파트를 만드는 네 가지 방법



‘난방열사’ 김부선씨가 아프다. 그는 카톡 친구들에게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말한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외부 회계감사 동대표 선출 문제 등으로 지금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은 싸움꾼 이미지 때문에 영화 출연요청도 뚝 끊어졌다고 한다. 배우인 그는 왜 자신의 본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에 온몸을 던지는 것일까.


전 국민의 65%가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고 관리비가 연간 12조원에 이르러 웬만한 대기업 매출 못지않다. 전국 아파트 중에 일정 규모 이상인 의무관리단지가 1만5000여개이고 그중에서 4분의 1은 지금도 분쟁 중이다. 아파트 분쟁이 계속되는 이유를 찾다보면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일반 회사에서 직원이 몇 천만원을 횡령하면 곧 공권력이 개입해 구속할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더 큰 비리가 있어도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파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본 입장이 주민 자치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거주지 구청 공동주택과 직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파트단지는 사적인 공간이며 커다란 가정과 같다. 가정 내 싸움에 공권력이 함부로 개입할 수 있겠나. 아파트단지 안의 문제는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곳이 논란의 발화 지점이다. 그는 민주주의 원칙인 자율성을 말하지만 민주주의의 조건인 주민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생업에 쫓기며 사는 사람들은 관리비에까지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결국 주민 자치는 빛 좋은 개살구다. 공권력은 미치지 않고 주민 참여도 이뤄지지 않는 비어 있는 공간은 욕심 많은 사람들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곳이 된다.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관리비 비리에 맞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소수의 주민들이 있다. 일종의 내부고발자들이다. 이제는 그들의 짐을 덜어주고 공공의 개입을 늘려 나가야 한다. 여기서 그 방안 몇 가지를 제시한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는 대부분 회계부정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아파트 외부회계감사제를 도입했지만 감사 회피나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제도가 무력화되고 있다. 본래 취지에 맞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번 작성된 회계서류는 일정 기간 임의정정을 금지하고, 관리비 비리 신고포상금제, 일명 ‘아파라치’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전·월세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세입자도 동대표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자.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아파트관리소 직원노조가 생기면 비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서울시가 며칠 전 비리 아파트에 ‘공공 관리소장’을 보내 위탁관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방향을 잘 잡았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의 활성화이다.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주체 등과 주민들 간의 힘겨운 싸움을 공적 기구가 대행하자는 취지다. 김부선씨 거주지 구청에도 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유명무실한 위원회를 되살리기 위해 지자체장이 직권 개입할 길을 열어주자. 언론중재위원회처럼 위원장을 현직 법관이 맡도록 해서 권위와 함께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조정안이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김부선씨가 아파트 비리를 큰소리로 고발했을 때 가수 방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부선이는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연예인으로 살아간다면 싫어도 억울해도 좀 더 조용히 일처리 하면 안될까.” 필자는 그의 말을 “남 걱정 말고 너나 잘해”라고 해석한다. 그는 실제로 미국에서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니 남 걱정할 시간에 자기 일을 열심히 한 것 같다. 그러나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가. 투명한 아파트 만들기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민단체를 발족하기로 하고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제정된 공동주택관리법이 8월12일부터 시행돼 시기도 적절하다. 이를 계기로 아파트 비리와 맞서 싸우는 ‘김부선 키즈’가 여기저기서 독립군처럼 나타나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제도 개선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김제완 투명한 아파트 만들기 시민연합 준비위원>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72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