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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신문

화해와 협력이 ‘통일시대’ 앞당긴다


화해와 협력이 ‘통일시대’ 앞당긴다

해외통일운동가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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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8.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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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여건은 각계 각층의  협력 성숙도에 달려”
“운동가들 한인회에 통일기구 만들어 참여하자”

본지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8월14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참석차 고국을 방문한 해외통일운동가들을 초청, 지난달 20일 긴급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엔 그간 입국이 불허됐던 해외민주인사중 이영빈목사와 이용선생등도 참석했다. 유럽 미국 대표들 외에 일본 대표들은 서울 체류 일정이 짧아서 초청할 수 없었음을 밝힌다. 참석자들은 이번 8·15축전이 6·15공동선언 이후 민족 화합을 이룬 최대의 사건이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통일시대를 이끌기 위해 남과 북, 해외의 긴밀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편집자주>

 


     
 
▲ 왼쪽부터 좌담회에 참석한 이영빈(독일), 이용(스웨덴), 이재수(미국), 김제완(편집국장), 노길남(미국)
 
사회=광복 60돌을 맞아 분단시대를  뛰어넘는 뜻깊은 남북 공동행사를 서울에서 치러냈다. 먼저 이번 8·15축전을 평가한다면.


이영빈=해외대표들이 남북 정부 당국자들과 함께 통일축제를 연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할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평생 통일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깊은 감회를 느낀다. 유럽에서는 평양축전 이전부터 6·15공준위와 독일의 지역 한인회가 만나서 함께 하기로 했었다. 통일운동가들이 동포들을 포용해 함께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이용=그동안의 통일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통일의 문이 곧열릴 것같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본다. 문제는  이 분위기를 앞으로 잘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길남=그동안 남북해외가 참여한  행사에 매년 참여했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때는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부분적인 미숙함이 있었으나 내용적으로 모든 것이 성공적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평가는 일정 기간 후에 해야할 것이다.


이재수=서로 양보하고 협의해 이뤄낸 6·15정신에 걸맞은 행사로 남북의 신뢰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올해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합의하고 결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사회=문제점도 지적해야겠다. 이번 행사는 8·15민족대축전인데 주최측은 6·15공동준비위였다. 6·15에 참석한 해외대표들이 8·15대회를 준비함에 따라 평통과 한인회장들이 소외됐다. 이때문에 지난 7월 한인회장대회에서 해외대표성 인정문제를 두고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노길남=미주동포사회의 경우 한인회 교회협의회 상공회의소등 세단체의 영향력이 크다. 미주지역은 두차례의 회의에서 뉴욕 시카고 LA의 관련단체들과 대화의 창구를 열고 이들을 포함시키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한인사회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6·15 정신에 입각해 함께 가자고 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통일운동에 대한 인식의 차가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본의 경우 한통련도 민단과 협력 노력을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우리가 처음부터 그들을 제외시킨 것처럼 왜곡돼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이용=이번 축전에 참석한 일부 한인회장 평통 사람들이 "들러리섰다" "우리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60년동안의 조국 분열 상황은 이념적 문제뿐 아니라 감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기술적 능력이 시급하다.

가령 일본의 경우 소수파인 한통련이 주도할 때 재일동포 다수가 소속된 재일민단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럽은 같은 지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뭉치지 못했는데 하물며 상반된 이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있기 마련인 감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영빈=한인회는 구조적으로 한국정부의 영향을 받는 것같다. 지난번 베를린 공조의 경우 한국공관에서  6·15에 한인회가 나서야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적극 협조해 왔다.


사회=과거 80년대에 평통이나 한인회는 통일운동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한인사회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런데 6·15선언 후부터 이런 관계가 급격히 바뀌고 있지 않은가.


이재수=한인회는 한인을 대표하는 기구로서 권익증진등 고유 업무가 있다. 통일운동과는 길이 다른데  한인회를 자꾸 언급하는 것은 적당치가 않다고 본다.


이영빈=그러나 통일시대는 ‘화해와 협력’이라는 명제와 함께 가야한다. 남과 북처럼 동포사회에서도 통일 반통일, 보수 진보 등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문을 열어둔다고 해서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인회 안에 통일관련 기구 예를 들어 통일위원회를 만들도록 해서 참여하는 것은 어떨까.


이용=좋은 방법이다. 운동이란 근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문제이다. 함께 한다는 것이 있어야 의미가 깊어진다. 앞으로 추진해야할 과제이다.


노길남=재외동포법 개정등 한인사회 현안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 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목사님이 신도를 대하듯 설득하면 잘 되지
 않겠나.   

사회=유럽에서는 대표단 구성과정에 내부적인 갈등이 있었는데.


이영빈=유럽공준위 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한 식구로 나오지 못해 남북 동포들에게 미안하고 아쉽다.
(이어서 노길남대표는 남측민화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용선생은 해외본부 동경사무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에 대한 언급은 신문에 개재하지 말라고 요청해 이에 따르기로 했다.-편집자주)


사회=통일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어떤 형태의 통일로 나가야 하는가.


노길남=통일 개념은 현재 상황에서는 ‘과정’이다.  과정을 극복해나가는데 객관적 주관적 두가지 조건이 맞물려 가야한다.

주관적인 조건이 성숙되려면 분단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해야한다. 분단상황을 우리민족 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는 외세의 대립으로 보는 인식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에 서게 할 것이다. 

객관적 조건은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미국 중국이 아니라 열쇠는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통일은 이러한 주관적 객관적 조건이 성숙해야 이뤄질 것이다.

이용=6·15공동선언에서 내놓은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현실적으로 전쟁의 위험없이 통일을 이룰 최선의 방법이다.


이재수=말씀하신 방안이 옳다고 본다. 어떤 특정한 ‘주의’로 가는 것보다 1국가 2체제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단일체제의 통일국가로 가는 합일점에 이를 것이다. 그때 가서 상황에 맞게 세부사항 을 논의하면 된다.


노길남=통일을 위해 남측과 해외가 특히 언론이 해야 할일은 단계적 통일론에 대한 계몽이다. 현정부의 통일방안을 좌파적 통일, 북쪽의 통일은 무조건 적화통일로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만큼 통일이 늦어질 것이다.


이영빈=동포사회에서 통일논의가 이뤄진다면 이미 한단계 높아진 것이다. 남과 북의 통일안에 대해 먼저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길남=세가지로 정리해보겠다. 첫째 남북 학자들이 연합 연방 통일을 위한 헌장과 헌법등을 정리하고 세미나등 계몽사업을 해내외에서 펼쳐서 대중들의 사고전환을 도와야 한다. 둘째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범민족회의를 결성해야 한다. 경제 정치 문화등  분야별 논의가 이어져야한다. 셋째 통일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통일헌법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이같은 논의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


사회=귀한 시간 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좌담회 참석인사 약력

◇이영빈 : 1926년 함경도 원산 출생 △목사△74년‘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결성 △80년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 발족해 활동 △81년 북한 방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선기독교도연맹 조선사회민주당 지도자들과 회담 △89년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에 관여

◇이용 : 1935년 함경도 북청 출생 △54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민단 산하 재일한국학생동맹에서 활동 △와세다대 경제학부 졸 업 △70년 스웨덴 이주 △81~98년 유럽민주화운동 지원 위해 월간지 ‘자주’지 발행

◇노길남 : 1944년 강원도 강릉 출생 △연세대 졸업 △한일국교정상화 반대등 학생운동 △75년 미국 유학 후 신문기자로 활동 △범민족대회준비위원으로 조국통일범민련 결성 △현 인터넷신문 민족통신 대표 6·15공동위원회 재미준비위원회 공동대표

◇이재수 : △1958년생 △85년 도미 △86년 청년 풍물패 ‘아리랑’ 결성 문화운동 △94년 조국통일동포회의 결성 △현 민주노동당 동부위원회 사무국장 △6·15공동위원회 재미준비위 부사무국장